칼 마르크스가 헤겔의 관념론적인 방법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고 비꼬아서 설명한 것은 유명하다. 관념이라는 비현실적이며 초월적인 기준에 현실을 맞추려고 한다는 의미였다. 프로크루테스는 고대 그리스 설화에 나오는 ‘잡아 늘리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전설적인 강도이다. 그는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특수하게 설계된 침대에 자게 하였다. 그리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늘려서 맞추고, 침대보다 크면 잘라서 맞추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반적으로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맞추게 하는 것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고 말한다.
요즘 치과 데스크는 10년 전에 비하여 늘어난 잡무가 너무도 많다. 사회에서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업무가 하나씩 늘어난다. 성추행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직원들이 1년에 한 번이상 성희롱예방 강의를 인터넷으로 듣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비치하여야 하고, 또 의료인을 고용할 때에는 경찰서에서 성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아서 비치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또 통지를 받았다. 개인정보보호 담당자를 정하고 직원들 모두 1년에 한번 교육을 받고 그것을 기록으로 비치하라고 한다. 더불어 환자로부터 취득한 주민등록번호는 1년 이내에 모두 파기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의무기록부의 보관이 10년이니까 그것을 감안하여도 최소한 10년 전 차트까지 모두 찾아서 번호를 지우지 않으면 불법이다. 이것 또한 금융기관이 해킹을 당하고 나서 만들어낸 법으로 죄는 금융당국에 있는데 그것에 의한 여파가 치과 데스크로 불똥이 튄 것이다. 세무에서도 부가가치세를 치아미백치료에 부가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치과는 부가가치세를 내는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복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치아미백치료를 포기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는 위와 같은 잡무는 전시 행정의 산물일 것이다. 결국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이다.
모든 것을 획일적인 기준에 예외 없이 짜맞추려 한다. 세상일이란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서 생기지 편안한 곳에서 발생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위정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은 그것을 모두의 일인 양하고 전체로 확대하여 시행한다. 어떤 정신나간 해커가 환자 명단이 몇 명이나 된다고 치과의원 컴퓨터를 해킹하겠는가? 필요성이 소멸되면 가치성이 떨어지면서 자연히 없어지는 것인데 그것을 항상 모두의 책임으로 돌린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하여 전 직원이 모여서 인터넷 교육용 동영상을 보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비치하란다. 무슨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북한 실상의 한 장면을 보면서 웃던 일이 떠오른다. 사회에 이슈가 되는 사건만 터지면 개인의원에는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홍보교육용 동영상을 1년에 한번씩 보고 기록에 남겨야한다. 재미있는 나라다. 이 꼴 저 꼴이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지만 하려면 따라야하는 것이 전시행정이다.
그런데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던 프로크루테스는 어느 날 테세우스라는 영웅을 만난다. 그리고 그 영웅에게 잡혀서 자신이 만든 그 침대에서 같은 방법으로 죽음을 당한다. 지금 수없이 만들어지는 현실속의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대한 경종이다. 옛 성현들은 법의 종류가 많아지고 강해질수록 범죄가 늘어나고 흉폭해진다고 경계하였다. 유방이 항우보다 먼저 함양에 입성하고 제일 먼저 법을 단순화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이젠 조그만 치과의원 하나를 운영하는 데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다뤄야 한다. 침대 장사를 따로 차릴 만도 하다. 아니 이젠 정말로 누군가로부터 1년 동안 데스크에서 행하여야 할 이런 유사 업무를 정리된 강의로 들어야 할 때가 된듯하다.
요즘 잘나가는 개그 방송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아~ 의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