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이 울긋불긋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문턱이다. 울긋불긋한 고운 단풍을 보면 아름다움과 따스함이 느껴지다가도, 뒹구는 낙엽을 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요즘 지인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서울시민대학 주최의 강좌를 듣고 있다. 영화로 풀어보는 사랑이야기이다. 또한 사랑하는 후배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 고전문학책을 읽으며 올 겨울을 보내기로 했다. 그 중 하나 선택하여 읽은 책이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이다.
오만과 편견은 1813년 여류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발표한 유명한 고전문학작품이다. 남녀간의 사랑의 과정을 예리한 인간관찰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계급구조가 남아 있던 중세시대의 지주계급의 허영과 사치, 위선을 묘사하면서 남녀간의 진실한 사랑을 이루어가는 여정이 꽤 흥미진지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오해와 편견을 뛰어 넘어서 서로의 진심을 알고 확인하게 되는 사랑의 해피엔딩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만과 편견은 영화로도 다뤄졌다. 감독은 유명한 조 라이트, 키이라 나이틀리가 엘리자베스 베넷의 역으로 나온다. 대사가 압권이다. 다아시 역의 매튜 맥퍼딘이 엘리자베스 역의 키이라에게 “내가 했던 모든 것은 다 당신을 위한 것이었소,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오”라고 말한다. “당신은 내 몸과 영혼을 매료시켰소. 당신을 사랑합니다.” 모든 여성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사이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역의 키이라도 첫 사랑의 고백에서 “I love you. most ardently(사랑합니다. 정열과 열정으로서)”라고 말한다. “일요일에는 나의 진주, 아주 특별한 날에는 나의 여신, 가장 기쁘고 완벽할 정도로 행복할 때는 다아시 부인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는 부분도 명대사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다아시는 ‘오만’의 결정체다. 친절한 구석은 없고, 무뚝뚝한 남자, 모든 여인들로부터 떠받들림에 익숙한 남자, 거기에 자존심도 강하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 나타나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오만함 속에 나타나기에 그의 진심은 드러나지도 않고 알기도 힘들다.
엘리자베스도 다아시에 대해 기분 나쁜 첫인상의 ‘편견’을 갖고 있다. 자기 집안을 무시하는 말을 들은 후엔 그가 하는 행동은 모두 오만하며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관심이 가고 사랑에 끌리지만 돈만 가지고 허세를 떤다고 하는 편견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 편견으로 인해 그의 진실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네 동네치과원장들의 삶은 어떠한가? 예전엔 존경받고 신뢰받는 이웃집 의사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천민자본주의 가치관이 의료계에도 스며들어 일부 원장들의 양심을 판, 돈만 추구하는 진료행태로 환자들로 하여금 대다수의 동네 치과에 대해 불신의 벽을 쌓게 만들었다.
원래 의료인은 생명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의 바탕 위에 전문성을 함양하는 직업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인간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자.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의료인의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우리 동네치과들이 속해 있는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갖자. 우리들이 혹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오만’을 벗고, 지역주민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자.
우리를 힘들게 한 소수의 환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다른 환자들을 대하지 말고, 동네주치의가 되어서 주민들과 소통하고 사랑하여 존경받는 의료인이 되자. 다아시가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위해 모든 것을 했듯이, 지역주민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은밀하게 돕자. 그러다보면 ‘의료기관 1인 1개소법’이 돈보다 의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의료인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임을 알아줄 것이다. 지역주민들로부터 “I love you. most ardently”라는 엘리자베스의 고백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