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적인 새해인사는 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이지만 올해는 영어에서 말하는 ‘Happy New Year’와 같이 “행복한 한해가 되십시오”로 새해 첫 인사를 시작한다. 새해인사를 생각해보니 참 다양하다. “새해엔 좋은 일만 가득 하십시오”, “새해엔 바라는 일을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십시오” 등등이 있다. 한자어로는 送舊迎新, 謹賀新年 등이 많이 사용된다. 10여년 전에는 모 카드사의 광고에서 “새해엔 부자되세요!”라는 문구가 인기를 얻은 바 있었다. 그 이후에는 “새해엔 대박나세요!”가 한 동안 많이 애용되었다. 새해인사도 시절에 따라서 변한다. 이에 필자는 올해의 인사를 “행복하십시오!”로 하였다.
두가 ‘복’ 중에서 특히 ‘행복’을 받기 원한다. ‘복’은 일반적으로 오복을 이야기한다. 오복을 서경(書經)에서는 (1) 수(壽) : 장수하는 것, (2) 부(富) :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3) 강령(康寧) :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4) 유호덕(攸好德) : 도덕 지키기를 좋아하는 것, (5) 고종명(考終命) :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양반들의 오복이었다면 서민들의 오복은 <통속편(通俗編)>에 수·부·귀·강녕·자손중다(子孫衆多)로 적혀있다. 즉 서민층이 바라는 오복은 남에게 덕을 베푼다는 유호덕보다는 귀가 낫고, 자기의 천수(天壽)대로 사는 고종명보다는 자손이 많은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오복과는 다르지만 또 하나의 복이 있다. ‘행복’이다. 비록 ‘부’하지 않아도, ‘귀’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이루어야 하는 것에 너무 많이 집착하고 살아온 듯하다. 그래서 복도 많이 받아야 했고 또 소원도 성취해야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소원성취와 행복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또 부귀영화라는 ‘복’도 행복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을미년의 새해인사를 “행복한 한해가 되십시오”로 정하게 되었다. 세상일이 어찌 항상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는가. 물론 골프처럼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가다보면 쉬었다 가야하는 것도 이치이다. 그래서 안식년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올해 을미년은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하여 본다.
을미년의 을(乙)은 작은 새싹을 의미한다. 미(未)는 땅을 의미한다. 그런데 未월은 양력 8월경이므로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의 뜨거운 대지이다. 조심하여 잘 관리하면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지만 물이 부족하거나 환경이 불균형하면 쉬 말라죽을 수 있는 것이 여린 새싹이다. 그런 을미년이기에 대박을 구하러 나서기보다는 작은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옛말에 천지인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다’란 뜻이며 ‘하늘과 땅이 인간에게 베풀었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그 말 속에는 인간의 노력이 전제되어 있다. 즉 하늘은 태양을 주고 땅은 곡식을 길러주지만 씨앗을 뿌리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완성된다. 그래서 인간은 노력하여야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을 넘어 욕심이 되면 화가된다. 자연의 공평성은 가혹하게 혹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수를 넘으면 화를 당한다. 따라서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 순리이고 이에 만족하면 행복할 수 있다. 을미년은 그런 해이다. 새로운 무엇인가의 작은 싹을 키우는 때이다. 올해 잘 가꾸어진 싹은 후년인 병신년에 병(丙)이라는 태양 볕을 받아서 큰 나무로 잘 크게 된다. 올해인 을미년 새해는 그렇게 새로운 무엇인가의 희망을 키우기 좋은 해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새로운 것을 처음 시작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스러움과 감내하여야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더불어 새로운 것이 작은 새싹이기에 아주 작게 조그마하게 시작하여야 한다. 크고 거창하다면 을미년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을미년을 처음 시작하며 ‘행복’이란 화두를 던져본다. 부귀영화나 대박처럼 행복도 우리가 추구해야 될 가치이다. 아니 행복이 더 소중한 가치이다. 내가 행복하고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새해 첫날 기원하며 인사드린다. “모두 행복한 한해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