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요일 밤 유명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뚱뚱한 개그맨이 16주 동안 체중을 70㎏을 감량하여 100㎏대 이하로 진입한 것을 방송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눈물을 흘리며 마무리되었다. 개그 프로그램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눈물이 편집없이 방송되었다.
그의 눈물에는 많은 것이 포함돼 있어 보였다. 그의 눈물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우선 혹독한 트레이닝과 먹고 싶은 식욕을 절제한 것이 가장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은 자신이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표를 달성한 것에 대한 감동이다. 그리고 체중감량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며, 또 감량 후에 상실될 캐릭터를 극복해야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개그맨들이 한 코너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녹화를 하고도 통 편집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닌 경쟁력은 타인이 따라올 수 없는, 200kg에 육박하는 독보적인 체중에 있었다. 목이 없고 허리가 없는 것이 그의 장기였다. 많은 대사가 없어도 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결국 자신 최고의 경쟁력인 체중감량을 시도하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고도비만으로 인한 질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비만 개그맨의 딜레마이다. 이미 과거 체중감량에
성공한 선배 개그맨들이 캐릭터 변신에 실패하여 코너에서 사라진 이들이 많다. 아니 성공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이런 상황을 심리학에서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한다. 사랑하는 관계의 고슴도치가 서로 다가가서 안으면 찔리는 고통이 있고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면 떨어져야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는 결국 이런 딜레마를 알고도 체중감량을 시도하였다. 건강을 담보로 하는 직업의 한계이다. 그는 이제부터 체중감량 때보다 더 혹독한 현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포기하고 이미 선점한 최고의 전문가들과 경쟁하여야 한다. 더구나 경쟁에서 실패하여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려하면 이미 그곳에도 다른 후배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제부터가 더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공직에 있던 후배가 개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같이 혹독한 빙하기의 개원 치과계에 들어오는 후배가 무슨 생각을 지녔는지가 궁금하였다. 빙하기를 알고 준비는 하였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어보았다. 그런데 후배가 그 지역에서 가장 잘된다는 치과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걱정이 더욱 앞섰다. 들리고 보이는 것과 현실이 다른 것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지만 이제 막 큰 꿈을 안고 시작하는 후배에게 덕담과 응원을 해주었다. 어차피 개원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을 미리 알 필요도 없고 또 이미 모든 치과 관련 신문지상에서 셀 수 없이 나온 이야기들이다. 최근에도 작년에 620개의 치과의원이 폐업한 사실이 기사에 실렸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고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한국식의 공부 잘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목표를 위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매진하는 습성이 있다. 그 방법으로 살면서 경쟁에서 항상 이겨왔기 때문에 반복 학습되어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또 ‘하면 된다’는 자신에 대한 학습된 믿음이 또 그렇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개그맨의 눈물보다 후배의 말이 더욱 불안하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빙하가 사라져 슬픈 남극 곰의 사진을 볼 때마다 이 시대 개원의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을 그 후배는 모르는 듯하였다. 아니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못 느낄 것이다.
논어의 자로편에 공자님이 ‘욕속부달(欲速不達)욕교반졸(欲巧反拙)’이라 하였다.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고, 너무 잘하려 하면 망친다’는 뜻이다. 새로 시작하는 개그맨과 후배 두 사람에게 늦더라도 천천히 가는 지혜가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