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아쉬움을 많이 남기기는 하였으나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메르스가 끝나가면서 필자의 관심은 다시 그리스로 갔다. 그리스의 디폴트가 환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학중인 자식이 있거나 주식하는 사람들이라면 같을 것이다. 메르스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이고 그리스는 국가라는 조직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런 전혀 다른 두 개의 공통점은 필자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메르스는 필자 생활의 패턴을 바꿨고, 그리스는 필자의 송금비용에 영향을 미쳤다.
메르스는 나타난 지 불과 3년인 반면 그리스는 수 천 년이다. 메르스는 생존에 대한 강인한 의지로 숙주를 떠나 신천지인 인간에게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둔 반면에 철학과 문화의 시작인 그리스는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은 세계적인 민폐국가로 전락한 것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바이러스와 인간의 차이란 생각이 든다. 메르스는 생존에 대한 끊임 없는 본능만이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이고 집약적인 생명체라면 인간은 그것에 생각하는 사유가 있다. 즉 선악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다. 인간은 신에게 받은 자유의지로 선도 악도 선택할 수 있다. 그리스는 욕심으로 인하여 몰락의 길로 왔다. 자신의 나라가 망하면 너희들도 같이 망한다고 협박하는 망나니 같은 총리의 모습이 현재의 그리스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양철학의 본고장에서 그런 개념의 사람이 총리가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한국에 단군신화가 있듯이 그리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손자, 헬렌이 조상인 나라이다. 그런 신화적인 자부심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위대한 철학자를 지닌 문화철학적인 자부심이 강해야 할 나라의 총리가 시골 장터에서 술 먹고 주정하는 양아치들의 BJR(배쩨라)을 국민들에게 독려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슬픔에 잠긴다. 마치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동산이 유흥가로 바뀐 모습을 본다면 그런 슬픔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나코마코스 윤리학을 공부하며 지녔던 찬란한 고대 그리스철학에 대한 동경에 찬물을 끼얹는 슬픔이다.
그리스는 현재 필자에게 두 가지의 영향을 주고 있다. 환율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서양철학의 본 고장에 대한 향수가 상처받는 아픔이다. 똥이 더러우면 피하라고 말하는 총리가 모르는 것이 하나있다. 몇 번은 피하지만 언젠가는 냄새나는 것을 참고 한번은 치운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생존본능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렇게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해 갈 것이다. 이것은 메르스바이러스가 인간으로 숙주를 바꾸어 갈아타며 발전하는 것과 같다. 메르스가 중동지역 본토에서는 폐와 신장에 치명적이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폐에서만 문제를 유발시키고 신장은 공격하지 않았다.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을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생각하면 독성이 작아진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절대로 숙주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속성 때문일 것이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으면 같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숙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독성을 낮추어야 한다.
메르스는 숙주에 기생을 하지만 충실하게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변화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스는 고대엔 철학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살다가 그 이후로는 조상들이 물려준 유물로 관광에 의존하고 살아왔다. 그러다 EU 통합 후에는 기생(빚)으로 살아왔다. 이제 숙주(EU)가 기생(빚)을 청산하려 한다. 숙주가 기생으로 인한 출혈이 커지면 제거하려 노력한다. 이 또한 자연의 법칙이다. 뱀의 유혹에 신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선악과를 먹는데 사용된 자유의지는 이제 또 그리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자유의지로 악을 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품성적인 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 올바른 선을 항상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메르스는 독성 약화라는 선택을 하였다. 2,300년 전에 그들의 선조가 말한 자유의지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