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을 관람하고 독립운동가의 희생에 국민의 일원으로서 죄송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특히 영감(오달수)이 안옥윤(전지현)에게 다짐을 요구하는듯한 대사 ‘삼천불, 우리 잊지마?’는 지금도 귓속에 맴돈다. 대한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분들께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그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필자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팔에 총을 맞은 안옥윤을 치과에 데려가 치료받는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선명하게 비춰진 ‘자애병원(慈愛病院)’ 간판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왜 총상 치료를 외과가 아닌 치과에서 받는 모습으로 묘사했을까? 총알을 꺼낸 후 못이 박혀있었다고 설명하는 치과의사는 국적이 한국일까? 일본일까? 선학들이 정리하신 치과의사학 자료들을 바탕으로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한다.
안옥윤, 하와이피스톨, 염석진(이정재), 강인국(이경영)은 허구 인물이지만, 그들의 스토리를 통해서 떠오르는 실존 인물이 있다. 비슷한 이치로 자애병원은 ‘자혜의원’을 연상시킨다. 국어사전은 자혜의원을 대한제국 융희 3년(1909년)에 가난한 백성의 질병을 고쳐 주려고 세웠던 근대식 국립 의료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애로운 은혜를 베푼다는 박애정신이 깃든 병원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인 오류가 있다. 프랑스 애국자 파스퇴르의 명언을 빌려 말하면 “진료에는 국경이 없지만, 진료기관에는 국경이 있다”. 즉 자혜의원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후지다 군의감은 제2대 조선통감인 소네에게 의료기관 설립을 요청하여 1909년 전주, 청주, 함흥에 자혜의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도 전혀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며, 설립 목적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선주둔군 창고에 보관중인 의약품, 의료 기구를 활용하고, 일본 군의관들을 재배치하기 위함이었다. 1910년 일본은 강제병합이후 전국(광주, 대구, 수원 등)에 식민지 지배체제를 공고히하기 위해 추가로 10개 의원을 개설하였다. ‘자혜’ 가면을 쓴 의원 수는 계속 증가하여 1942년에는 전국에 46곳이 되었다.
영화감독은 의료혜택을 명분삼아 한일강제 병합 후 민심 수습용 기만정책 중 하나인 자혜의원의 정체를 알리고자 한 것 같다. 그러나 자혜의원은 지방에만 세워졌고, 경성에는 초대 통감인 이토히로부미의 주도하에 식민지 체제로 전환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대한의원이 1907년에 개설되었다. 따라서 1933년 경성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에 나온 ‘자애병원’은 굳이 따지자면 ‘대한의원’이라 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라 할 수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총상 환자 때문에 치과 진료실이 어수선해 지고, 진료를 받던 환자는 개구기를 문채로 손들고 서 있는 모습이 영화에 나온다. 감독은 특별한 의미 없이 영화의 코믹한 장면중 하나로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1910년 전국의 자혜의원 중 몇 군데에는 치과가 개설되어 있었고 무자격자 즉 입치영업자(入齒營業者)가 치료를 담당했다. 대구 자혜의원에는 동경치과대학을 졸업한 가네고가 1911년 첫 번째 치과의사로 근무하였고 제주, 전주, 군산에 있는 자혜의원에도 치과의사가 있었는데 모두 일본인이었다.
1930년대 전국 10곳의 자혜의원에도 치과의사가 근무했는데 대부분 일본인 치과의사였다. 1933년에 발행된 조선도립의원 현황에 의하면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제2회 치과의사 시험에 합격한 배진극은 해주자혜의원에, 이성모는 강릉자혜의원에 근무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따라서 영화에서 안옥윤의 총상을 치료한 치과의사 국적은 일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원봉(조승우)은 술잔에 불을 붙이면서 독립군 박재혁, 채수봉, 김익상, 김상옥, 김지섭, 나석주의 이름을 독백하듯이 부른다. 그리고 “우리도 다 잊혀지겠지요”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기억해달라는 부탁이 담겨있다. 아울러 필자의 부탁도 들어주길 바란다. 일제 강점기 자혜의원의 본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