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로부터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니 인강을 수강하고 보고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2항에 의해 의료인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다.
근래 생각하기조차 싫어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뤄왔던 주제가 하나 있다. 아동학대이다. 최근 발생한 창녕 아동학대 사건과 천안 아동학대 치사사건은 학대를 넘어 잔혹함에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뉴스에 접하는 실상이 너무 참혹해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사건은 이유가 있고 동시에 발생하는 데에는 사회적인 문제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범죄 문제로만 넘기면 안 된다.
창녕과 천안 아이는 모두 아홉 살이다. 창녕 아이 엄마는 27세 친모이고, 천안 아이 엄마는 43세 동거모이다. 창녕 계부는 35세로 친모보다 여덟 살 많았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천안 친부는 아이가 9세인 것으로 미뤄보아 동거모보다는 상당히 어릴 것으로 유추된다. 아마도 이 두 가정에서 지배적인 권력(경제력, 나이 차 등)을 지닌 사람에 다른 사람은 방임하거나 동조한 형태라고 생각된다.
심리학에서 아동학대를 개인적인 정신병리적인 문제와 사회적으로 사회심리학적, 생태학적, 문화적인 요인 등으로 원인을 파악한다. 심리적인 면에서 Merrill은 부모의 문제로 생각했고, Faller는 아동이 특별한 신체 조건이나 만성질환 등으로 원인 제공을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Merrill은 아동학대 부모를 4가지 유형으로 보았다. 우선 일반적이고 가장 많은 형태가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개심과 공격성이 높아져 있는 부모이다. 두 번째는 강박적으로 엄격해 합리성이 결여된 부모이다. 셋째는 높은 의존성과 수동성을 지녀 미성숙하고 우울하며 무반응적인 사람이다. 상기 두 사건에서 종속적으로 동조한 부모의 상태로 생각된다. 넷째는 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없어 극단적인 좌절을 가진 부모이다.
두 사건의 가정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4가지 유형이 여러 가지로 겹쳐있는 듯하다. 창녕 27세 친모는 4명의 아이가 있고 첫째가 피해 아동이다. 2년에 한 번 출산한 것으로 생각하면 대략 19~20세에 출생한 것으로 유추된다. 고3이거나 막 졸업하고 출산했다는 것은 부모 도움을 받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친부와 헤어지고 계부를 만나 행복해졌다면, 친부와 관련된 모든 것이 악몽이고 불행의 근본이라 생각해 자신의 딸이기보다 친부의 분신이란 생각으로 학대했을 것이다. 거기에 학대를 합리화할 우연이 겹치면서 강화됐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밥 한 끼를 안 주었는데 우연히 그날 돈이 많이 들어왔다면, 그런 학대행위를 합리화하며 타당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옆집으로 탈출한 것을 보면 아이는 정신적으로 강하다고 판단되며 원인 제공자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천안 43세 동거모는 거짓말을 했다고 여행가방에 가두고, 오줌을 쌌다고 더 작은 가방에 가두는 것은 강박적 엄격함에 합리성이 결여된 전형적인 두 번째 유형으로 판단된다. 이런 동거모를 만나 고인이 된 아이의 명복을 빈다. 사건 내용을 보면서 순간순간 분노를 넘어 가슴이 탁 막히고 먹먹해 글을 쓰면서도 자주 멈춘다.
이런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들의 축약된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20대, 살기 힘든 40대, 분노조절 장애 시대, 금전 만능주의, 한탕주의 등으로 모두가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 스트레스가 사회적·신체적으로 가장 약한 자에게 표출된다. 아동학대와 노인학대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첫 장에 실린 글이다. 요즘 그의 글귀가 자주 생각나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