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시작의 문을 야누스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흔히들 일상에서 표리가 다르거나 양면성을 지닌 경우 ‘야누스 같다’고 부정적 의미로 ‘야누스’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야누스의 동상은 항상 두 개의 얼굴로 표현돼 있으며 일명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한다. 야누스는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문의 신(god of gates)이며, 시작의 신(god of beginnings)인 동시에 끝의 신(god of endings)이다.
그래서 한해가 끝나며, 새해가 시작하는 첫 달인 1월을 그의 이름을 따라 January라고 하였다. 과거의 문을 닫고 새로운 해의 문을 연다는 의미이며, 과거의 힘들었던 모든 것을 닫아버려서 잊어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야누스는 전쟁과 평화의 신이다. 신화에서 문이 열리면 전쟁이 시작됨을 의미하고, 문이 닫히면 평화가 온다. 즉 과거의 문이 닫히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다는 의미일 것이고, 새해의 문이 열리는 것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됨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서양의 새해 의미이다.
우리 선조들은 태양력이 아닌 달의 변화에 따른 음력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음력 정월 초 하루를 한해의 시작으로 ‘설’이라 하고, 근신·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한문으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썼다. 그리고 이 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 하였다. 즉 한해의 시작을 우리 선조들이 조상에 대한 공경으로 시작하였기에 음력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은 정신적 의미의 한해의 시작이다.
설이 지나면 얼마 되지 않아 곧 입춘이 온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일 때이며, 이날부터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24절기는 농사를 짓기 위하여 사용되는 태양력인 셈이다. 이와 같이 정신적인 음력의 사용과 실제 현실세계에서의 태양력을 모두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에 그저 놀랄 뿐이다. 동양철학 또한 24절기를 사용한다. 따라서 동양철학에서 한해의 시작은 봄이 시작되는 입춘부터이다. 느낄 수 있을 만큼 봄의 기운이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동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동지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며, 그 때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동양에서의 야누스는 동지인 것이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였음에 동지는 처음으로 희망이 싹 트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 희망이 입춘에 비로소 싹이 나올 준비를 하고 우수에 싹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입춘은 확실한 봄의 시작이기에 ‘입춘대길’이란 글을 써서 한해의 행복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임진년 설에 1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치과계에 지난 몇십년 동안 일어났던 일보다도 더 많은 일들이 있었던 작년 한해의 문을 야누스의 힘으로 닫고자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야누스의 얼굴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세상만사에는 장단점이 있다.
즉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그러기에 로마인들은 신화에 야누스를 등장시켰으리라. 또한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다. 그러기에 처음 시작하는 모든 것은 희망을 지니는 반면 야누스의 얼굴로 실패라는 위험도 안고 있는 것이다. 치과의사란 직업도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환자도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한해가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다. 그것이 세상사다.
야누스의 장난이 아니라 원래 그러한 것을 세상사라고 한다. 그러기에 좋은 얼굴을 보려고 노력함이 좋겠다. 환자가 없으면 초조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쉬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야누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임진년 올해는 陽의 해이다. 새로운 수(水:壬)의 기운과 시대적으로 봄(辰)이 시작되는 해이다. 입춘에는 태백산에 올라보려 한다. 새로이 시작되는 시대적 봄기운과 입춘의 기운을 느껴보고자 한다. 더불어 올 한해 동안의 평안과 모든 이의 행복을 기원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