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환자를 진료하던 중 환자가 치료 중간에 할 말이 있다고 하며 오른쪽부터 치료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필자는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끝나든,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에서 끝내든 결과는 똑같다라고 원리적인 설명을 하였지만 끝까지 오른쪽부터 치료해주길 원하여 원하는 대로 해드렸더니 나름대로 만족하고 문을 나섰다. 아마도 의사들이 생각할 수 없는 환자들만의 세계가 있는 듯하다.
필자가 살면서 경험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세 부류가 있다면, 아이, 여자, 환자였다. 이들에게는 전혀 예측 하지 못하는 생각과 철학의 세계가 있는 듯하다. 그 중 아이들과 여성의 심리에 대하여서는 많은 부분이 학문적으로 밝혀져 있다. 하지만 환자는 여성이기도 하고 아이이기도 하니 그 다양성이 너무 많아 단편적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사례를 생각해 보자.
일단 환자는 깊이 생각해 보고 오른쪽에서 건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서 믿음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약간의 편집성과 강박성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필자도 자주 경험하는 일 중 하나로 출근할 때 아파트 현관까지 오면 그때서야 가스밸브를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가 궁금해지고 결국은 다시 올라가서 확인하고 내려오는 일이다. 일종의 강박증세인 것이다.
두 번째는 주술과 같은 믿음일 것이다.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것일 수 있다. 출근하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오른쪽 길로 갔을 때 좋은 일이 발생했던 경험과 왼쪽 길로 갔을 때의 나쁜 경험이 겹치면 마음속에서는 무의적으로 강화가 일어나고 그것을 우리는 징크스라고 표현을 하게 되니 그것 또한 무의식의 장난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생각과 논리에 의거한 주장을 하며 전혀 타인의 말을 들으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 해리성 장애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필자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신경이 쓰인다. 집을 나선 뒤 가스불이, 형광등이 궁금한 것이 그렇고, 겨울에 병원을 나선 뒤 전기난로를 껐는지 궁금해서 다시 확인하는 날들이 부쩍 많아졌다. 물건을 사고 와서도 뭔가 잘 안되면 불량품을 사온 것이 아닌가 하고 노심초사하다가 다음날 점원들의 설명을 듣고 안심하며 멋쩍은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은 맥락이지만 조금 다른 경우가 있다.
얼마 전이다. 환자가 “지난 번 치료에 퍼미스로 폴리싱 한 뒤에 이가 시려서 집에 가서 보니 이가 깨져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깨진 것이 아니고 전치부 총생에 의한 교모현상이었는데 열심히 거울을 보고 발견한 것이었다. 초진 모델을 보여주며 교모임을 설명하여도 닫히고 의심하는 마음엔 마치 사고치고 덮으려는 변명으로만 들리는지 닫힌 마음을 풀지 않아서 결국엔 발치한 치아를 직접 가져다가 환자 눈앞에서 직접 시연하였다.
그리고 모든 유니트 체어에 하이스피드가 꽂혀 있지 않은 것까지 확인시켜주고서야 의심을 풀었다. 필자는 이런 의심 환자들이 종종 있어서 유니트에서 하이스피드 핸드피스를 항상 제거해 놓고 있다.
그리고 차분히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전에 치료받고 난 뒤에 골드인레이에 스크래치가 난 것을 보고 치아가 상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하였다. 이에 치아는 더 강하여 손상되지 않으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설명하고 일단락됐다.
이 경우는 피해의식이 강화되고 확대된 경우였다. 이상의 경우들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변덕일 수 있다. 그러므로 비단 치과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것이다. 결국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느냐는 우리들의 몫이다. 어렵지만 여유를 갖고 한발 물러선 관찰적 입장에서의 판단과 대처가 요구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그 날 저녁엔 소주 한 잔보다는 난타공연을 구경 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