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용 선생은 돌아가셨을 때 장사지낼 비용이 없어서 이웃이 도와줄 정도로 청렴하기로 유명한 학자이셨다. 또한 이순신을 천거하는 등 역사 속에서 많은 일을 하신 위대한 선조이시다.
요즘 치과계 신문에서 서애 선생의 유사 호칭이 좋지 않은 의미로 자주 등장할 때마다 필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부디 신문과 관련 있는 분들이나 치과선생님들은 순서를 바꾸어 호칭에 변화를 주면 좋겠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1969년에 동일한 기종의 A자동차를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 한 대를 세워놓고 B자동차는 번호판 없이 뉴욕에 세워놓는 실험을 하였다.
A자동차는 1주일 동안 무사하였지만 B자동차는 하루만에 도난당하였다. 그 후 A자동차의 뒤쪽 유리를 조금 부수어 놓았더니 불과 몇 시간 만에 차량을 도난당하였다. 이 실험을 토대로 미국의 정치학자 윌슨과 범죄학자 켈링이 “깨진 유리창 효과”를 발표했다.
이는 누군가가 건물의 유리창을 깨뜨렸을 때, 이를 즉시 수리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암묵적인 방임을 암시하게 돼 더 많은 사람들이 유리창을 파손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무질서를 조장하게 되고 무질서에 무감각해진 사회는 각종 범죄가 잇따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필자의 사견으로 치과계를 돌아보면 의료계에서 의료인으로서의 자질과 실력, 양심 등을 경쟁의 도구로 삼지 않고 환자를 고객으로 분류하며 서비스를 경쟁의 도구로 삼으면서 첫 유리창 하나가 깨졌다.
결국 성실히 환자를 돌보는 무뚝뚝한 의사보다 성실하지 않아도 상냥한 의사가 각광받는 세상이 되었다. 얼마나 정성껏 양질의 치료를 하고 후유증을 막을까가 화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환자를 유치해 볼까가 발전하여 저수가 의료로 진행되었다. 두 번째 유리창이 깨진 것이다.
처음 유리창이 깨졌을 때는 모두가 주목했다. 그리고 대세라고 착각하고 모두가 동참하려 하였다.
두 번째 유리창이 깨졌을 때는 소수라고 무시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수도 없이 깨지고 있는 유리창 기사가 온통 치과계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처음 유리창이 깨지면서 두 번째 유리창이 쉽게 깨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야 문제성을 인식하고 진화작업에 착수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유리창이 깨져서 실기를 하지 않았나하는 우려와 함께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리되어도 후유증은 심각하리라 생각이 든다.
아마도 치과의사회에 등록하지 않는 무적 회원이 처음으로 생기기 시작했던 10년 전 쯤에 좀 더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많은 정보가 필요 없고 그냥 나만 잘하고 살면 되지 하고 살던 치과의사의 사고와 생활 패턴이 만든 필연적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변화기에 적절한 조절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생물학자의 실험에서 송충이를 일렬로 원을 그리며 기게 해 놓고 1미터 떨어진 곳에 먹이를 놓아주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송충이는 앞의 송충이를 따라가는 추적자적 본능에 의해 결국 앞만 쫓아 원만 돌다가 옆에 놓인 먹이를 못 찾고 굶어죽었다. 이를 ‘송충이 습성’이라 했다. 과거의 우리가 송충이처럼 옆도 보지 않고 생각도 없이 따라만 가지 않았나 싶다.
문제 병원에 근무하는 분들도 치과의사들이고 본인들도 문제점을 인식하지만 무슨 사연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적 방어기전에 의하여 나름대로의 타당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고 수가로 움직이는 진료행위에 대한 대가는 크게 지불하게 될 것이다.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서 더욱더 진료여건을 나쁘게 만들 것이다. 갈증에 소금물을 마시듯이… 모든 치과의사들의 자성적 판단이 너무도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부디 또 기회를 잃지 않길 희망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