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 가장 연약함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하지만 장자는 태풍이 불면 뿌리가 뽑히는 존재가 큰 나무이고 풀잎은 바람에 순응하여 살아남는다고 하였다. 요즘 우리들의 마음속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쌓여온 수많은 비리와 사건들을 ‘세월호’라는 태풍으로 한번에 날려 보내고 있다. 우리 한국 사회가 그 태풍 속에서 사회적, 심리적으로 심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각자 개개인들은 노란 리본을 묶으며 반성이라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태풍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부정, 부패, 비리와 같은 고질적인 사회병폐를 모두 쓸어버렸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더불어 태풍 앞에 풀잎 같은 우리 개개인들도 태풍이 지난 후에 좀 더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삶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풀잎처럼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다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주기를 바란다. ‘풀잎’이란 단어는 지나온 한민족의 역사와 애환과 같은 단어이다. 굳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단어가 주는 의미는 이미 우리의 피와 정서 속에 있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풀잎을 이야기하였다. 필자가 힐링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풀잎이란 단어 속에 들어있는 정서가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해 줄 것이다. 오늘은 상처받은 모든 이들을 위하여 풀잎이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치유 그리고 통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잎-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속에서는 푸른 휘파람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마음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박성룡, 풀잎-
풀잎 앞에 쓰러져, 울어준 것들만의 힘으로, 풀잎이 초록은 아니다. 풀잎이 가진 초록이란, 일생을 달리고도 벗어날 수 없는, 오랑캐들판, 그 넓이만큼 죽음이나 여름을 만난다. 풀잎이 지는 해를 위해, 수평선의 고요를 아꼈던 것, 초록이 운명에 휩쓸릴 때, 초록은 그곳까지 한달음에 도착하기도 한다. 풀잎 속이라면, 초록은 일제히 일어나야 할 때를 알고 있다.
-송재학, 풀잎-
우리 아름답게 일어서는 풀잎이 되어요. 바람찬 날 강 언덕 아래 웅크려, 세월의 모가지 바람 앞에 내밀고, 서럽게 울다가도, 때로는 강물 소리 듣고, 모질게 일어서는 풀잎이 되어요. 누가 우리들 허리 꼭꼭 밟고 가도, 넘어진 김에 한 번 더, 서럽게 껴안고 일어서는, 아니면 내 한 몸 꺾어 겨울의 양식 되었다가, 다시 새 봄에 푸른 칼날로 서는, 우리 예쁘게 살아가는 풀잎이 되어요.
-공광규, 예쁘게 살아가는 풀잎이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