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의 어떤 의사가 보건소에 신고를 하였다. 비정상적으로 C형 감염이 많아진 것을 발견한 의사가 역학조사의 필요성을 보건소에 알렸다. 조사결과에서 다나의원이 일회용 주사기를 반복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다나의원을 다닌 환자 787명을 조사하여 현재까지 매독 항체 양성반응 4건, 말라리아 항체 양성 18건, B형 간염 양성반응 23건, C형간염 감염자는 78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중에서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양성을 보인 55명이 현재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다.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충격을 넘어 납득가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7년 전인 2008년에 개원할 당시부터 주사기를 재사용하였으며 2012년에는 원장이 교통사고로 장애2급에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고 조사되었다. 대부분의 진료는 간호조무사 출신인 부인이 행하였다는 기사도 보인다.
다나의원의 사태는 의료인의 윤리나 도덕성을 논하는 수위를 넘었다. 이는 청부살인과 같은 정도의 간접살인에 해당될 수 있다. 이 사건은 의료인의 도덕성을 넘어서는 중대한 범죄사건이다. 모든 범죄에는 이유가 있다. 과연 그들 부부에게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가장 궁금한 것은 원장의 나이이다. 인터넷상에서 원장의 나이가 검색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련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50대에서 60대라고 추론된다. 원장은 다나의원을 개원하기 전에 다른 병원을 운영하였으며 그 당시 과로로 몇 번 쓰러져 병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후 다시 개원한 것이 다나의원이라는 기사가 보인다.
필자가 가장 궁금한 것은 장애2급에 뇌병변3급으로 판정받은 원장은 본인 스스로가 환자이건만 왜 병원에 출근하며 환자를 진료하였을까하는 부분이다. 같은 의료인 입장에서 만약 필자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공기 좋은 시골에 내려가 요양을 하면서 지낼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환자인 원장이 그런 몸을 이끌고 출근하여 환자를 보았다는 사실이 필자를 슬프게 한다. 인생이라는 것과 삶이라는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원장에게 인생과 삶은 무엇이었을까. 만약에 돈을 벌어야만 하는 타의적 상황이었다면 그가 처한 현실은 불가항력적인 불행한 상황으로 안타까운 처지였을 것이다. 반면 자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는 인생이나 삶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더욱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만약 그가 몇 번을 쓰러지고 휴식을 취하고 다나의원을 다시 개원하기 전에 인생과 삶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생각해보았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필자도 하루하루 출근을 하고 환자를 진료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항상 머릿속에는 언젠가 병원으로 출근하지 않는 날을 생각한다. 병원으로 출근하지 않는 그때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그려본다. 어떤 조그만 시골집에서 앞마당에 텃밭을 가꾸며 지내는 생각, 조용한 바닷가 방파제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바다낚시를 하는 생각, 어떤 조그만 강의실에서 전공을 강의하는 생각, 낯선 외국에서 관광을 하다가 예쁜 길거리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는 생각, 어떤 문화관에서 서예나 그림을 그리는 생각, 전통 춤을 추는 춤꾼들과 가락에 맞추어 살풀이를 추는 생각, 소모임에서 미소 강의하는 생각, 깊은 산사 법당에 앉아 밖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를 듣는 생각,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필드에서 티를 꽂는 생각 등등 많은 또 다른 삶이 있다. 그런 또 다른 삶이 올 때를 기다리며 하루를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원장에게는 무슨 꿈이 있었기에 그런 몸으로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 사실이 슬프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 살았던 그의 모습이 도덕과 윤리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기에 슬프다.
꿈을 잃은 자는 의료인뿐 만아니라 누구라도 불행하다. 그에게 꿈이 있었다면 그리되지 않았다. 꿈을 꾸면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