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필자는 성격이 소심하고 어리석은 데다 지난 3월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회장단 선거 패배 후 진료실에 코를 박고 살아 의견을 내세울 만한 식견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치과계를 위하여 비급여 헌법소원에 앞장서다 격려는커녕 억울한 고발을 당한 뒤, 얼마 전 경찰로부터 무혐의 결정을 받았음에도, 위로가 아닌 오히려 엄중한 경고의 말을 듣게 되니 슬프고 황당하여 몇 자 적는다.
本.
1.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필자는 지난해 12월 치협 회장단 선거를 앞두고 비급여 헌법소원 법무비용 2,000만원을 떼어먹었다고 고발당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필자가 고발당한 것을 우습게 알만큼 배짱이 두둑해서가 아니라 법은 잘 모르지만, 양심에 벗어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아서다. 그때는 왜 지금처럼 고발인들에게 화해와 협력의 경고를 아무도 보내지 않았을까?
2. 무엇이 중한디?
비급여 진료비 공개 및 보고 의무화와 관련한 헌법소원이 5:4로 아깝게 합헌으로 결정된 지난 2월 2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필자는 펑펑 울었다. 앞으로 매일매일 일반 진료 내용과 진료비를 정부에 보고해야 하고, 비급여 수가를 공개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처지가 안타까워서만은 아니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코앞에 두고 변호사가 일을 했니, 안 했니 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원통하였다. 그날 치협 어느 임원은 필자를 울보라고 SNS에서 놀려먹었다.
화해와 협력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왜 그때는 나오지 않았을까? 비급여 헌법소원 결과가 치협 집행부의 체면보다 가벼워서일까?
3. 불법을 묵인하는 게 치과계 발전에 필수적인가?
어느 사회나 법과 규정이 있다. 그런데 이번 치협 회장단 선거에서 필자는 그런 규칙들이 깡그리 무시되는 악다구니판을 보았다. 임명직 부회장을 발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지지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규정 등 대부분의 약속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모 전문지 기자는 당선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치협의 현직 부회장이 하지도 않은 서울시치과의사회 감사를 하였다고 거짓말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장이었던 필자가 지부 돈 2,000만원을 떼어먹었으니,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얼마 전 경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억지 고발 및 거짓말 기자회견을 하여 명예를 실추시키고 헌법소원을 망쳐버린 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성명서를 헌법소원 소송단이 내었으나 감감무소식이다.
관용과 용서가 있으려면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떳떳하다면 원로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당당히 조사받으면 될 일이다. 치협 집행부의 일은 사법부가 알면 안 되고 그래야 치과계가 발전한다는 말은 얼마나 굴욕적인가?
4. 내로남불!
3년 전 치협 회장단 선거가 끝난 후 현 박태근 협회장은 선거 불복 소송단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치협 임원들이 존경받는 원로 선배님을 모신 모임 후 발표된 성명서에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있어 아연실색하였다. 전임 회장을 고발하고 필자를 횡령범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현 치협 임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을 쓰는 것이 치과계의 정의란 말인가?
結.
관용과 용서, 사랑과 헌신이란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억울한 고발과 거짓말 기자회견을 겪은 필자에게 진정한 사과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관용과 용서를 말한다면 단어에 대한 모독이다. 선거에 눈이 멀어 비급여 헌법소원을 망쳐버린 것에 대해서도 깊이 참회해야 한다.
지금 모든 걸 그냥 덮고 사랑과 헌신으로 서로 아름답게 감싸 안는다면 다음 치협 회장단 선거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거짓 고발과 불법이 판을 치는 아수라(阿修羅)가 펼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규정과 법을 헌신짝처럼 생각하는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역사가 되풀이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