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영락없는 사무장병원인데…” 서울의 한 개원의는 같은 구회에 위치한 2곳의 생협치과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의료생협의 탈을 쓰고 사무장병원으로 운영되는 정황이 분명하지만, 그 내부까지 파헤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행법상 의료생협은 50% 범위 내에서 비조합원 진료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응급환자 및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진료를 가능케 허용하고 있어 외부에서 그 불법성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근거로 설립되는 의료생협은 비의료인이 개설할 수 있는 특수한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상부상조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의 자주·자립·자치적인 생활협동조합활동을 촉진함으로써…’로 명시돼 있는 법 취지와 달리 조합원뿐 아니라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돈벌이로 전락할 수 있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환자유인, 수가덤핑 행위 등으로 인해 인근 개원가의 피해가 막대한 것은 물론, 합법적인 사무장병원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지난달 29일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김세영),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 대한한의사협회(회장 김필건) 등 3개 단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전한 의료질서 확립을 위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정 건의’안을 전달했다.
3개 단체는 “협동조합 제도의 기본 취지는 원칙적으로 조합원의 상호부조라는 이념에 부합한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이며 비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제공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할 것이나 현재 의료생협은 비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 명시적으로 가능하고 그 수준 또한 과도하여 조합원의 상호부조라는 본래 취지의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비의료인의 사무장병원 개설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를 기반으로 “건전한 보건의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시일 내에 의료생협 개설 개수 제한, 개설 요건 강화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 추진해 줄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공정위와 복지부, 지자체, 심평원이 공동으로 3개 의료생협을 지도점검한 결과 허위청구, 불법 환자유인, 무자격자에 의한 의료행위 등 탈법적인 운영실태가 적발됐으며, 소위 사무장병원의 창구로 악용되는 정황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이 같은 충격적인 조사결과에 따라 기획재정부에서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입법하며 의료생협의 인가요건을 강화하고 비조합원의 이용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 대응책을 내놨지만 아직 관련 법 개정은 이루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