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의료분쟁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원장 박국수·이하 조정중재원)의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이어졌다. 법원,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의뢰하는 수탁감정으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환자단체의 입장과 수탁감정보다는 환자와 의료기관 간의 분쟁 조정 등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정면충돌했다.
조정중재원은 지난 15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의료분쟁 해결을 위한 감정의 역할’을 주제로 의료분쟁조정제도 시행 3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의료중재원 감정제도의 현황 및 발전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김성수 변호사(조정중재원 비상임감정위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4월 9일부터 2015년 2월 28일까지 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조정신청 현황은 모두 4,016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정형외과가 20.9%에 이르는 83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내과(658건, 16.4%), 신경외과(403건, 10%) 순이었다. 치과도 8.3%에 해당하는 333건이 접수됐다. 이는 진료과목별 조정신청 현황 중 4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중 165건이 감정 처리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수탁감정의 증가였다. 조정중재원이 업무를 막 시작했던 2012년, 6건에 불과했던 수탁감정은 1년 사이 117건으로 급증했으며 지난해에도 286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법원과 검찰의 수탁감정 신청이 늘었다. 법원은 2012년 1건에서 2013년 16건, 2014년 109건으로 급증했으며, 검찰이 올해 2월까지 의뢰한 수탁감정은 87건으로 지난해 89건에 거의 육박한 상황이다.
조정중재원의 수탁감정 건수가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환자단체 측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그동안 수탁감정의 대부분은 의협과 같은 의료인단체에서 담당했지만, 최근 서울 송파경찰서는 故 신해철 사건을 의협 외에 조정중재원에도 감정 의뢰했다”며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의료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의 적극적인 수탁감정 의뢰가 필요하다”며 “조정중재원이 지난 3년간 제도의 안정적 정착에 힘을 실었다면, 이제는 수탁감정 의뢰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수탁감정보다는 의료분쟁 조정 및 중재 업무에 초점을 맞춰 환자와 의료기관의 신뢰 회복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정영훈 과장은 “조정중재원은 감정 결과를 토대로 의료분쟁을 조정하는 기관이다. 조정중재원의 업무가 감정에 치우치면 이해당사자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며 “먼저 조정·중재 쪽으로 힘을 쏟고 추후에 수탁감정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영훈 과장은 환자와 의료인간의 신뢰를 위해 감정과 조정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 과장은 “감정과 조정은 균형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기에 어느 한쪽에 우선순위를 두면 안된다”며 “조정중재원은 의료기관과 갈등을 겪은 환자를 어루만지면서 동시에 의료기관에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는 중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