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활협동조합이 사무장병원으로 변질되는 등 부작용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에서 비영리법인이 의료인을 고용해 의료기관을 개설 및 운영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최초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그동안 사무장병원과 네트워크병원에 대한 판결은 존재했지만, 비영리법인에 대한 위법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반정우)는 최근 의사 A씨와 B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B씨는 지난 2008년 6월 5일부터 2009년 7월 30일까지, A씨는 2011년 11월 10일부터 2013년 8월 31일까지 C재단 대표자 소유 건물에서 노인전문병원을 개설했다. 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2월 21일 A씨와 B씨에게 각각 21억9,270만원과 15억3,340만원의 요양급여를 환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회복지법인인 C재단에 명의를 대여함으로써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1항을 어겼다는 판단에서였다.
두 의사는 공단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했다. 명의를 대여한 사실이 없고, 자신들이 직접 병원을 운영했다는 주장이다. 설사 C재단에 고용됐다고 하더라도 해당 법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사무장병원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병원을 실제 운영한 주체는 재단일 뿐만 아니라 해당 법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원고를 포함한 의사 7명이 병원 개설 명의자였는데, 서로 대가를 주고받지 않고 병원을 양도·양수했다”며 “원고는 재단으로부터 매달 500만원 가량을 받고 환자를 진료했을 뿐 병원 재무와 인사를 관리한 것은 C재단 대표였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C재단은 서울특별시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병원을 열어 올해 8월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의료법 제33조 제4항에 따르면 비영리법인이 병원을 개설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재단이 운영하는 사업의 종류에 의료업이 포함되지 않아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관악구청은 2005년 9월 21일 기본 재산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관 변경 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재판부는 “비영리법인이 의사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을 허용하면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위험이 있고,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의미없게 될 우려가 있다”며 “원고의 청구는 무효”라고 판시했다. 판결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비영리법인이 사무장병원 형식을 취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에 철퇴를 가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