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다녀오신 분들께서는 모두 느끼셨겠지만 그 곳의 지하철 개찰구는 거의 철문이 열렸다 닫히는 수준이다. 표를 넣지 않고는 절대 플랫폼으로 진입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표를 넣고도 정해진 시간에 지나가지 못하면 몸이나 가방이 끼는 일도 왕왕 일어난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나 독일에 발을 딛는 순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개찰구의 존재를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형태의 검표기가 넓은 통로에 띄엄띄엄 세워져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플랫폼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손에는 어김없이 티켓이 쥐어져 있다. 동일한 경우에 적용되는 아주 상반된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아마도 내적 규제와 외적 규제의 차이에서 빚어진 문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작년 한 해 치과계는 마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치과의사 국가면허를 가진 하나의 집단 내의 균열처럼 보였을 수도 있으며, 양심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 간의 투쟁과 같이 보였을 수도 있다. 혹자에게는 국민의료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 또는 의사들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문득 그러한 현상들이 마치 파리의 지하철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는 법과 도덕, 윤리를 유린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지하고 단속하기 위해 엄청난 물질적인 투자를 감수함은 물론이요, 국가적인 위신을 실추시키면서까지 철문을 매달아야만 하는 파리의 지하철같이 치과계의 작년 한 해는 큰 도둑과 작은 도둑을 모두 잡고자 하는 일념으로 파리 지하철 개찰구의 철문과 같은 외부규제를 세우기 위해 애쓴 한 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 번 결정된 외적 규제는 다시 내적 규제로 환원되기 힘들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로 인해 근본적인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 질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치과계는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개찰구가 아니라 왜 프랑스 파리의 개찰구와 닮아 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누구나 당연하게 표를 사야하고 검사를 하든 안 하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치과의사들에게는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동료에게 상처와 손해를 주는 일, 나아가서는 치과의사 전체의 권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얼마나 많은 손실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자면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또 다른 측면 하나는 보편타당성의 부재인 것 같다. 원칙과 보편성을 아전인수하여 ‘오로지 내가 옳고 나는 그래도 된다’는 식의 자기중심의 비논리성이 팽배하는 현실은 너무도 위험해 보인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보편타당성을 인정하고 따르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혼란을 만든 것은 아닐까? 안타깝지만 특정의 한 집단이나 한 사람의 잘못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적 규제의 부재 혹은 부족에도 치과계 혼란의 책임 있을지도 모른다.
각종 규제 규약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치과계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대두된 문제들이 정리되고 청산될 것이라는 기대 이면에는 인간의 삶이 점점 루소가 예견한 것처럼 더 많은 그리고 더 강력한 쇠사슬로 묶이게 될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2012년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내적 규제에 대해 고민해보며 시작하려 한다. 앞으로의 치과계가 오스트리아의 개찰구의 그것과 같은 단단한 내부규제를 통해 거듭나길 고대한다.
박 창 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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