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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논단]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권영희 논설위원

몇 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정의 열풍을 이끌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정의로운(?) 사람과 읽지 않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 보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고 이 책을 쓴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인터넷 강의를 찾아 듣는 사람도 생겼다. 책의 내용도 훌륭하고 정의를 정의하려는 저자의 문필도 뛰어나 필자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필자 또한 정의가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됐는데 스스로가 딱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정의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나마 정의롭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정의에 대한 정의는 점점 더 멀어지고 필자 생각에 정의로운 행위가 과연 다른 이에게는 정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하는 회의가 들면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행동을 조금 더 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는 됐다.

 

그런데 요즈음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 혼란스러운 정의라는 관점에서 봐도 너무나도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과 돈을 가지기 위해 또는 가지고 있는 권력과 돈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그 과정에 다른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입히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요즈음 한창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보면 돈이나 권력을 가진 이들의 후안무치함을 극명히 느낄 수 있어 참담하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왕관의 무게는 무겁고, 무거운 만큼 자신을 연마하지 않으면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자는 왕관을 쓰면 안 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왕관은 바로 돈과 권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이 멈출 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것뿐만 아니라 남녀로 나뉘어 혐오 싸움을 하는 이들을 보면 진정 서로의 인권을 위해 노력을 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개인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남과 여라는 진영을 이용하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가 자웅동체도 아니고 두 성이 공존해야만 인류가 생존해갈 수 있는데 마치 적을 대하듯 서로를 공격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라 볼 수 없다. 한편으로 헤겔의 변증법에 따라 지금까지의 억눌림에 대한 반의 과정을 지나고 언젠가는 합의 과정이 오리라 믿고 싶지만 계속 이렇게 서로에 대한 날카로운 창을 겨누면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제라도 서로를 공격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성에 따른 보편성과 인간 개개인의 특이성을 인정하자는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에 따른 아주 기본적인 차이는 인정하고 그 외의 부분에서는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서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면 된다.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에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통하고 정의롭지는 못할망정 타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타인에 대한 예의는 그렇게 어려운 의미가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는 도덕만 잘 지켜도 다른 이에 대한 무례함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내가 당하기 싫은 행동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으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이렇게 쉬운 일이 어려운 현실이 슬프지만 조금씩 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버리고 싶지 않다.



[치과신문 논단]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몇 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정의 열풍을 이끌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정의로운(?) 사람과 읽지 않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 보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고 이 책을 쓴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인터넷 강의를 찾아 듣는 사람도 생겼다. 책의 내용도 훌륭하고 정의를 정의하려는 저자의 문필도 뛰어나 필자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필자 또한 정의가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됐는데 스스로가 딱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정의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나마 정의롭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정의에 대한 정의는 점점 더 멀어지고 필자 생각에 정의로운 행위가 과연 다른 이에게는 정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하는 회의가 들면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행동을 조금 더 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는 됐다. 그런데 요즈음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 혼란스러운 정의라는 관점에서 봐도 너무나도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과 돈을 가지기 위해 또는 가지고 있는 권력과 돈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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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은 너에게…
요즘 TV에서 유명한 심리학자 이호선 교수가 강연시간 마지막에 강조하는 말이 “힘든 일은 너에게…”이다. 얼핏 들으면 이기적인 듯한 뉘앙스의 문구이지만,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구이기도 하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에서 작가가 이야기한 타인의 눈에서 벗어난 자존감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녀는 강연에서 마음이 힘든 사람들 다수가 슈퍼맨처럼 주변 사람들의 모든 일을 떠안고 해결해야하는 의무감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떨치고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이 힘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산다.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을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이 “힘든 일은 너에게”이다. 우리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자신의 일 외에도 가족이나 동료 일을 선의로 돕든지 강요당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능력이나 체력을 넘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스트레스는 내면으로 들어가고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심리적으로 소화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 스트레스는 씹지 않고 삼킨 음식물 덩어리처럼 마음에 짐이 되어 표면적으로 잊을 수는 있지만 내면에서 저절로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다.
치과경영지원 10년차, 김부장이 전하는 치과생활 리얼 스토리 - 마지막회
가정이든 직장생활 속에서든 누구나 힘든 일은 있습니다. 특히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직장생활 잘하는 법은 누구에게나 고민일 것입니다. 2014년에 방영되었던 직장인의 교과서 ‘미생’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이 전부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사람이라고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만들 줄 아는 사람.” ‘회사 간다’라는 건 내 ‘상사’를 만나러 가는 거죠. 상사가 곧 회사죠. 상사가 좋으면 회사가 천국. 상사가 좋지 않으면 회사가 지옥. 직장생활에서의 힘듦은 8할이 인간관계의 힘듦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는 좋아하는 찌개도, 좋아하는 음료도, 좋아하는 동물도, 좋아하는 최애(最愛)도 다른,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늘 즐겁게 지낼 수는 없겠죠. 직장생활의 인간관계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경험했던 인간관계와는 굉장히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인간관계입니다. 이해관계로 얽힌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때문에 친해졌다면 술이 없으면 깨지는 인연, 돈 때문에 맺어졌다면 돈이 없으면 깨지는 인연. 이해관계로 맺어진 인연이라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