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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 칼럼 5] ‘피카소’의 모방은 새로운 창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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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70세 넘은 피카소가 다른 화가의 그림을 모방한 이유” DBR, 2014. 04

송강(松江) 송형석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SNUMBA)에서 수학하고, 삼일회계법인을 거쳐 의료기관전문회계법인인 송강회계법인을 설립했다. 현재는 (주)와이즈케어(www.wisecare.co.kr)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병원컨설팅과 의료비분납시스템인 와이즈플랜(www.wiseplan.co.kr)을 보급하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hssong@wisecare.co.kr)


스페인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가 1656년 완성한 그림인 ‘시녀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여 후배 화가들은 이 그림을 수없이 모방했다. 고야, 달리, 클림트, 마네가 ‘시녀들’을 다시 그렸고 현대에도 해밀턴, 보테로, 위트킨까지 이 그림을 재해석했다. 그러나 이 그림을 가장 사랑하고 평생 제일 많이 그린 사람은 피카소다. 피카소가 늙어서도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까닭은 영감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여든이 넘은 후에도 그는 과거의 미술에 눈을 돌려 마네, 쿠르베, 엘그레코, 들라크루아 같은 거장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모방하면 빨리 배울 수 있고, 변형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경쟁우위를 만들어 경쟁자(모방의 대상)를 넘어설 수 있다.
모방의 이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신제품 개발에 따르는 위험이나 비용이 적다. 둘째, 초기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를 저명한 경영학자인 레빗(Theodore Levitt)은 먹다 남은 사과이론(The Used Apple Policy)으로 설명했다. 사과를 꼭 먼저 먹을 필요는 없고 남들이 한 입 베어 문 것을 보고 그 사과가 쓴 지 단 지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는 비유다. 셋째, 선발자처럼 성공에 만족해서 잠복한 위험들을 과소평가하는 자만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 또한 ‘빠른 모방자 전략’을 택하라고 충고한다. 선발자의 위험과 비용은 최소화하고 너무 늦게 출발해서 갖게 되는 불이익을 피하라는 말이다. 피카소의 모방은 창조를 위한 수단이었다. 모방이 창조로 승화되기까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모방을 통해서 빨리 배울 수 있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자 그림 그리기를 그만뒀다. 그리고는 아들의 교육에 전념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 피카소를 보냈지만, 피카소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마드리드 시내를 떠돌다가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처음 접하고 배울 대상을 찾았다. 매일 미술관에 들러 하루종일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는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사람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 요령도 생기고 쉬워진다. 시간에 따라 반복하는 일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생산성이 올라간다. 이를 학습곡선이라고 한다. 모방하면 학습곡선을 따라 생산성이 향상된다. 지금 한국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전자, 반도체, 조선산업 등은 모두 일본 기업을 똑같이 베끼는 것에서 출발했다. 모방을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재빠르게 학습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산업계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

 

둘째, 모방을 하다 보면 대상을 변형하고 개선하게 된다.
이미 입체파라는 자신의 화풍을 완성한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자기 스타일로 변형해 76세 때 다시 그렸다. ‘시녀들’ 전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일부를 떼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그리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박물관에 가면 이렇게 해서 그린 피카소의 ‘시녀들’이 58점이나 전시돼 있다. 모방은 자연스레 개선으로 이어진다. 훈수 효과 때문이다. 플레이어로 활동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고쳐야 할 점이 눈에 들어온다. 가령 해외의 성공한 비즈니스 프렉티스를 모방한다고 해보자. 그런 방식은 그 나라의 제도, 문화, 국민성과 그 회사의 특유한 전통과 관행이 합쳐져 탄생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뭔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도입해서 활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닌 특징과 결합해 애초의 방식을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또 모방이 변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디어의 속성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백지에서는 나오기 힘들다. 아이디어에 불을 붙일 심지가 필요하다. 이때 남의 아이디어는 가장 좋은 도화선이 된다. 피카소가 남의 작품을 모방한 것도 백지상태에서 주제를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 하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행동하면서 깨닫는 것이다.

 

셋째, 완전한 모방을 해보면 대상의 원리와 작동방식에 대해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분석적인 지식이 아니라 종합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결국 자신만의 ‘시녀들’을 그렸듯이 수많은 문학가가 모방을 통해 스스로의 문체를 창조해왔다. 예로부터 문학을 익히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은 암송이다. 그래서 영문학과나 불문학과에서 장편의 시를 외우는 테스트를 한다. 문학이 발달한 프랑스의 국어시험에는 앞에 나와서 시를 암송하는 게 빠지지 않는다.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의 흐름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암송하면 잘 이해한 것이고, 악센트를 주어야 할 때 안 주거나 쉬어야 할 부분을 지나치면 시를 잘 모른다고 판단해 점수를 깎는다. 암기는 옛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던 학습법이다. 학동들은 천자문과 사서삼경을 소리를 내 외웠고, 다음날 서당에 오면 전날 배운 구절을 암송하는 게 공부의 시작이었다. 오래전부터 ‘learn by heart’는 영어에서 ‘암기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암기라는 말이 머리로 배우다(learn by head)가 아니라 가슴으로 배우다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머리로 배우는 것은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가슴으로 배우는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세상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로 암기며 모방이다. 그래서 모방은 부분을 분석하지 않고 전체를 보게 한다. 뛰어난 평론가 중에서 위대한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론가는 문학을 분석하는 사람이다. 나누어 분석하는 버릇이 생기면 창조할 수 없다. 가끔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확히 규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한다. 심지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때도 있다. 이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한 기업을 그대로 따라해 보면 그 과정에서 모르던 문제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 피카소가 몽마르트르 언덕에 정착한 후, 당시 미술계의 주류인 인상파를 비롯해 거장들의 작품을 흡수했다. 피카소는 20대 초반에 이미 단순모방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 시기를 ‘청색 시대’라고 하는 데 청색을 활용해서 알코올 중독자, 걸인, 장님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26세에 그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선보이며 입체파를 창시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그림을 창조한 것이다. 어떻게 모방에서 창조로 이렇게 빨리도 도약할 수 있었을까. 피카소는 신동이었다.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감탄과 놀라움 속에서 자랐다. 그가 성인이 되자 동료 화가들도 모두 그처럼 그릴 수 있게 됐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선배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모방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고 싶었다. 따라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생각이 투철했다. 애초에 창조를 위해 모방한 것이다. 결국, 그의 창조 원동력은 남과 다른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필자가 만난 많은 원장이 자기만의 방식과 철학을 지켜가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가끔은 주변의 성공케이스에 이런저런 나름의 해석을 붙여가며, 폄하하거나 자족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되더라도 새로운 경영방식이나 운영방식, 잘 나가는 병원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모방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모방을 통해 변형과 개선을 이루고 이것을 통해 완전히 자신만의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삶은 지속적인 겸손과 정진의 연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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