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상담을 하는 환자인데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치료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피해가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 필자가 치료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하게 되고 나중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 후회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아마도 오래 임상을 하신 선생님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쩐지 저 사람은 그냥 싫어!”란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맞선 본 남자가 식사 후에 치아 사이에 고춧가루가 낀 것이 싫어서 헤어졌는데 두 번째 선본 남자는 고춧가루가 낀 것이 귀여워서 결혼했다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처럼 인간에게는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본능적인 감정이 있다. 이 같은 감정은 인간이란 동물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단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을 직감적으로 판단하기 위하여 이런 감정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이 공포에서부터 발달하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공포의 감정이 분화되어서 슬픔이나 분노, 기쁨 등의 좀 더 섬세한 감정으로 발전되었을 거라고 주장을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으로부터 치과의사이자 가수인 분을 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는 TV에서 치과의사가 격투기에 참가하는 것도 보았다. 치과의사로 벤처사업을 해서 성공한 사례도 있고, 정치인도 있다. 수녀가 되신 분도 있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치과의사가 진료비를 받고 그냥 폐업해서 문제가 된 안 좋은 사례가 뉴스 방송도 되었다. 치과의사 한둘만 모이면 요즘의 화제는 불법 네트워크치과에다 덤핑치과 이야기가 내용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사회가 다변화되고 치과의사 수도 증가하며 치과계도 점점 다변화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거에도, 드물지만 배우도 있고 가수도 있었지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과거에는 대부분 치과의사를 접고 방향을 전환한 형태라면 요즘은 취미생활이 확대된 듯 한 투잡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이렇듯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다변화 사회에서 속에서 가장 힘들어할 세대는 5060세대일 것이다. 그들은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이루어낸 주역으로 혜택을 누려야 했지만 시대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더욱더 힘들어졌다.치과계를 보면, 90년대에 시작된 임플란트 초기 시절엔 수가가
신문을 읽다 어느 선생님께서 쓰신 글 속에 “사람은 공산품이 아니다”란 문구를 보았다. 그때 필자 역시 항상 공감하고 자주 쓰는 말이어서 매우 반가웠다. 다양한 환자들의 질문에 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사람은 자동차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환자들은 “정확하게 언제 치료가 끝나나요?” “완벽하게 되나요?” 등 자동차공장에 차 수리를 맡기듯, 전자제품을 수리하듯 대화를 진행한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치료하면서 어찌 자동차 수리하듯 되겠는가? 그럼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음을 환자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료하는 의료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초등학생 교정치료 환자가 치료도 성실하게 받고 치료진행도 계획대로 잘 진행되어 치료기간이 예상기간보다 4개월 정도 빨리 마무리된 적이 있었다. 필자가 기쁜 마음에 어머니에게 치료가 잘 마무리 됐다고 이야기하자 어머니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니 왜 치료기간이 짧아진 거죠?” 그 한마디 말에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너무도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로 “치료기간이 단축된 것은 대충 치료한 것이 아니냐?” 둘째로 “치료기간이 원래 짧은 건데 치
40번째 글을 쓰려니 거의 1년 가까이 글을 쓴 필자가 대견하기도 하고 마감시간에 시달리고 소재가 달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과 언젠가는 그만 쓰는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함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 40대를 지나며 50대를 맞이할 때 느끼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수련 받고 공부하던 30대 중반과 학문에 열중하고 무서울 것 없던 30대 후반을 지나, 마음을 비우면서 평안을 찾던 40대 초반, 아이들 문제로 정신없던 40대 중후반, 노후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비와 체력의 준비를 시작한 50대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것 등이 너무도 비슷한 것 같다. 여성의 마음은 남자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성들은 통상적으로 생리적인 변화가 오는 시기에 심리적인 변화를 많이 겪는다. 예를 들어 신체의 콜라겐 타입이 변하여 피부의 탄력이 없어지기 시작하는 30대 초반에는 청춘이 상실되어감을 느낀다. 또한 그때, 아이들이 유아기를 지나 학교에 들어가며서 일거리가 줄어들며 생각할 시간이 늘기도 한다. 또 40대 진입을 목전에 둔 30대 후반기에는 인생에서 젊은 시절의 마감이라는 강박감에 시달린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 여성
진료실 외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나 같은 케이스 치료한 것 좀 보여 주세요”일 것이다. 거기에다 어떤 환자는 본인의 치료 후의 결과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환자들은 치과에 내원하기 전에 수도 없는 고민을 하고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본인의 사례에 맞추어 여러 번 소설을 써보고 그리고 내원하여 최종적으로 치과의사 입에서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요즘은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여 수술 전, 수술 후 시뮬레이션을 보여줄 수도 있고 교정치료 전후의 상태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치과 홈페이지에 치료 전후의 케이스가 소개되고 있다. 그러니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알고자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결국 환자들은 치료 전에 심리적으로 위로 받고 치료 후의 결과에 대한 자신을 갖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필자가 치료한 케이스도 있지만 환자와 유사한 케이스를 교과서에서 골라서 보여 준다. 좀 더 객관화 시키고자하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실제로 있었던 사례로 한번은 미국에서 컴퓨터로 교정환자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환자에게 수술 전, 수술 후 시뮬레이션을 보여주고 프린트까지 해주고 치료를
목요일 저녁에 명리학 공부하며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지 몇 달 되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내준 글씨가 “내 탓 네 덕”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써도 가슴에 깔린 그 무엇이 사그라들지 않아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내 탓 네 덕’이라 쓰려니 글이 잘 안되는데 혹시 ‘네 탓 내 덕’ 아닙니까? 속이 확 후련해지고 감이 팍팍 오는데요!”라고 하자 선생님께서 그냥 웃으시며 “골프 칠 때 그립을 편하게 잡으면 반듯하게 안가고 불편하게 잡아야 반듯하게 가는 것 아시죠?”하고 답하셨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리 간단한가. 팔이 안으로 굽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고 얼마 전 인터넷에 화제가 된 ‘내가 배고픈 건 참아도 네가 배부른 것 못 본다’는 글귀도 있지 않은가. 결국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다양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 같은 목적으로 모인 홍대 앞 부비부비 클럽에서 부대끼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아마도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이기심으로 인해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한식 때 아버지 산소
날씨가 풀려 휴일에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나서는 길, 아직 영하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초미니를 입은 길거리 패션을 보고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다. 이에 집사람이 초미니가 유행하려는 모양이라고 대답한다. 올해는 초미니를 넘어 ‘하의 실종’ 패션이 유행할 것이란 추측들이 인터넷에 나오고 있다. ‘하의 실종 패션’이란 상의가 하의를 가려서 하의를 입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극 초미니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결국 나이든 사람들이 보기에 민망한 의상임에는 틀림없다. 과거라면 남자들의 눈요깃거리로 마냥 좋기만 한 현상일 것이나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법으로 금지된 이후부터는 녹록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성추행은 물리적인 접촉으로 성립되는 것이니 의지적인 측면이 있지만, 성희롱은 당하는 사람의 감정적인 부분까지 인정하므로 한번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희롱범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성희롱의 정의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면 성립되므로 그냥 쳐다보면 되고 느끼하게 쳐다보면 안 된다는 것으로 남성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여름이 다가오면 내원하는 여성 환자들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없어지고, 가슴 파인 옷이 늘어나
어떤 모임에서 지인으로부터 방송에서 치과보험에 대해 많이 나오는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보험이 다 그렇지 않겠어요?”라고 간단하게 답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은 참 무거웠다. 요즘 케이블 방송을 보면 가장 많은 광고가 사금융, 상조회사, 보험광고이다. 그중에서 치과와 관련된 보험광고도 적지 않다. 처음엔 치과 관련보험이라서 관심 있게 들어 보았지만 좀 황당할 것 같은 느낌에 요즘은 무시하고 있으나, 실제로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심각한 치과 이미지의 왜곡이 있다.광고 방송에서 사용하는 심리학적 기법은 대략 두 가지 정도이다. 첫째는 레몬이나 자두를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과 같은 고전적 조건부여에 의한 학습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피부 미백크림을 광고하려는 회사는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를 선택하고 장소는 피부가 상대적으로 희게 보이도록 검푸른 바다와 파란 창공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광고속의 영상은 아름다운 해변의 경치와 조화를 이루는 여배우의 매력적인 모습이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고 이를 보는 여성들은 정말 희고 아름다운 피부에 감탄하면서 본인도 되고 싶은
운전 중에 전화가가 울려서 누군가 보니, 제자에게 온 전화이다. 아끼는 제자이기에 “무슨 일?”하고 물으니 교정이 다 끝나고 Debonding한 환자가 전날까지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며 불명확한 불만을 토로하는데 왜 그러는지를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환자가 정확히 목적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고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며 목적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파악해 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즉 의식의 레벨인지 무의식의 레벨인지를 파악하자는 이야기였다.심리학에서는 ‘사람의 행동은 동기(욕구)와 목표의 가교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동기와 목표가 있어야만 사람이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이 항상 ‘동기→행동→목표’라는 공식으로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이 발견되어 연애를 하고 싶다’는 동기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복잡한 사회 속에서 성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쉬운 예로 상대방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그 동기(욕구)를 충족하기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이와 같이 목표가 장애물에 가로막혀 동기(욕구)를 이루지 못할 때에 마음에서는 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생겨나
연평도 사건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때였다.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생님들과 식사를 하다가 필자가 대학 시절에 전방입소하여 무척이나 춥고 참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자, 젊은 선생들이 “전방입소가 뭐에요?”하고 되물었다. 대학 시절 교련과목 중 필수 과정이었다고 하자, 답변은 더욱 가관이었다. “대학 때 교련도 받았어요?” 하고 다시 신기한 듯이 무슨 옛날이야기 하듯이 되물어본다. 그때 필자의 마음은 요즘 말로 ‘헐’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아!’하는 탄성과 시대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느꼈다. 또한, 필자는 요즘 대학생들이 교련과목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젊은 선생님들은 우리 시대에 1주일 동안 전방 체험을 위한, 아니 데모방지를 위한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으로 대학생들을 전방으로 보내서 혹독한 군사훈련을 시키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결국, 동시대를 살고 있으며 서로 간에 당연하다고 느끼던 것이 서로 다른 생각과 체험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time skipping’ 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비록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서로가 시간상
어느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학에서 심리검사와 성격 검사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필자도 심리를 테마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치과의사를 상대로 한 강의였는데 그때 심리 테스트를 시행한 결과에서 같은 직업이면서도 다양한 답변에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었다. 같은 사건을 보는 시야가 너무도 다양하였다. 그중에 기억나는 문구가 ‘치과의사를 선택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환자는□이다’였다. 물론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 치과의사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긍정적인 편이 많았지만 부정적인 분들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 테스트한다면 그 때와 다른 답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중에 ‘환자는□이다’라는 문구에 대한 답이 필자 자신도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면허를 따고 처음 보건지소 발령받고 첫 환자를 볼 때는 호기심과 불안감이 교차하였다. 치료를 하면서도 방으로 들어와 책을 들여다보며 하고 있는 치료가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그때의 환자는 필자에게 스승이었다. 2년차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고 자신감에 차있어서 못할 것이 없었다. 그때의 환자는 ‘진짜 환자’였다. 그러다 2년차 반
신분열증이나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들의 증상 중 한 가지가 논리의 순서가 바뀐 이야기를 하는 경우이다. 이를 일반적으로 횡설수설한다고 한다. 이는 생각의 조각들끼리 정보가 호환되지 않는 분열증 증상 때문이거나 혹은 여러 사건의 중요도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본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필자가 외래에서 상담하다 가끔 겪는 일 중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심한 상악 덧니 환자가 내원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환자에게 내원한 이유를 질문하였고 환자는 심한 덧니에 관한 이야기만을 제외한 채, 씹는 게 이상하다, 턱관절에서 소리가 난다, 이가 썩는지 봐 달라 등등 다른 이야기만을 늘어놓았다. 교정치료만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인 것을 알고 내원하였으면서도 누가 보아도 가장 명백하고 핵심적인 덧니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국 지루하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가 “덧니에 대하여 말씀이 없는데 그것은 상관 없나요?”하고 필자가 질문하였다. 이에 환자는 “당연한 건데 말해야 하나요?”라고 답변하였다. 이 경우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가능하다. 일단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의사에게
필자가 20여 년 환자를 보면서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말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중에 최고는 단연코 “씹히는 것이 이상해요”이다. 씹히는 것을 환자가 이야기할 때는 너무도 다양하고 광범위한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간단하고 단순하게 해결하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전문용어로 교합이란 표현일 것이나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씹히는 것’은 의사들이 생각하는 학문적인 교합과는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의사의 교합 속에는 환자의 생각과 감정이 없으나 환자의 ‘씹히는 것’에는 생각과 감정이 들어 있다. 결국 환자의 교합에 대한 불만 속에는 원인적인 생각과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어떤 환자 한 분이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문득 얼굴이 비대칭인 것을 발견하였다. 본인은 예전의 사진을 꺼내놓고 과거와 현재의 얼굴을 비교하면서 그 원인을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 와중에 턱의 위치를 좌우로 움직여도 보고 이런저런 모습을 보다가 보니 턱이 약간 움직이면 얼굴이 맞아 보인다. 그리고 보니 이가 물리는 것이 좌우가 다르다. 계속해보니 하면 할수록 점점 물리는 느낌이 확실하게 좌우가 다르다. 언제부터인가를
한해의 시작의 문을 야누스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흔히들 일상에서 표리가 다르거나 양면성을 지닌 경우 ‘야누스 같다’고 부정적 의미로 ‘야누스’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야누스의 동상은 항상 두 개의 얼굴로 표현돼 있으며 일명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한다. 야누스는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문의 신(god of gates)이며, 시작의 신(god of beginnings)인 동시에 끝의 신(god of endings)이다. 그래서 한해가 끝나며, 새해가 시작하는 첫 달인 1월을 그의 이름을 따라 January라고 하였다. 과거의 문을 닫고 새로운 해의 문을 연다는 의미이며, 과거의 힘들었던 모든 것을 닫아버려서 잊어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야누스는 전쟁과 평화의 신이다. 신화에서 문이 열리면 전쟁이 시작됨을 의미하고, 문이 닫히면 평화가 온다. 즉 과거의 문이 닫히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다는 의미일 것이고, 새해의 문이 열리는 것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됨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서양의 새해 의미이다. 우리 선조들은 태양력이 아닌 달의 변화에 따른 음력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음력 정월 초 하루를 한해의 시작으로 ‘설’이라 하고, 근신·조심하는 날
서애 류성용 선생은 돌아가셨을 때 장사지낼 비용이 없어서 이웃이 도와줄 정도로 청렴하기로 유명한 학자이셨다. 또한 이순신을 천거하는 등 역사 속에서 많은 일을 하신 위대한 선조이시다. 요즘 치과계 신문에서 서애 선생의 유사 호칭이 좋지 않은 의미로 자주 등장할 때마다 필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부디 신문과 관련 있는 분들이나 치과선생님들은 순서를 바꾸어 호칭에 변화를 주면 좋겠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1969년에 동일한 기종의 A자동차를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 한 대를 세워놓고 B자동차는 번호판 없이 뉴욕에 세워놓는 실험을 하였다. A자동차는 1주일 동안 무사하였지만 B자동차는 하루만에 도난당하였다. 그 후 A자동차의 뒤쪽 유리를 조금 부수어 놓았더니 불과 몇 시간 만에 차량을 도난당하였다. 이 실험을 토대로 미국의 정치학자 윌슨과 범죄학자 켈링이 “깨진 유리창 효과”를 발표했다. 이는 누군가가 건물의 유리창을 깨뜨렸을 때, 이를 즉시 수리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암묵적인 방임을 암시하게 돼 더 많은 사람들이 유리창을 파손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무질서를 조장하게 되고 무질서에 무감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