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던진 “지금의 세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춘추전국시대”라고 답하였다. 지금의 시대는 정치와 지리적인 국경은 있으나 문화예술, 정신에 있어서는 국경이 없다. 대표적인 사람이 ‘싸이’다. 게다가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이다. 요즘 치과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이런 맥락에서 연유하고 있다. 수가 파괴, 네트워크치과, 사무장치과, 소송, 전문의제도 등 산재되어 있는 사건들이 무관하지 않다. 조금 넓게 사회나 정치를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일가족 5명이 동반 자살했다. 그런데 그들은 송파모녀사건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송파모녀사건은 극빈층의 자살이라면 이번 사건은 부유층이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유서를 작성하였다. 아들의 자살을 막아야할 아버지가 방조하고 같이 자살을 선택하였다는 것이 충격인 것이다. 아버지는 세파를 견디고 자식을 설득하여야 할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가 자식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정치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문화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돈의 시대라는 것을 의미
지난 연휴 기간 동안 10년 된 모임을 따라 중국 장가계를 다녀왔다. 수억만 년 전에 바다가 융기하여 산이 되고 그 산이 바람과 물에 깎여서 거대한 골짜기를 만들었다 한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 아바타를 촬영한 장소에 가보니 천애 절벽 끝에 소나무가 자라고 풀이 자란다. 캐나다의 로키산맥과는 사뭇 다르다. 북반구 위쪽에 위치한 로키 산에는 생명력이 없었다. 그저 엄청나게 큰 돌이라는 생각이었다면 장가계는 로키보다는 작지만 곳곳에 생명이 있다. 그래서인가 어떤 신령스러움마저 느꼈다. 마치 손오공이 근두운을 부르고 전우치가 도술을 부리는 그런 장소가 생각났었다. 구름을 헤치며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6일 간의 여행을 돌아보았다. 좋았던 것은 경치며 음식이며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뉴스와 인터넷이 끊긴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뉴스와 인터넷을 끊으니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졌다. 사회에 대한 불만도 사라지면서 마음의 평화가 오고 자연의 위대함에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가까운 앞집에 누가 사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경남도지사가 무엇을 하고 사는가를 알고, 총리가 언제 검찰에 출두하는지를 안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감기로 언제 병
동양사상에는 음양이 있다. 세상은 음양의 법칙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해가 있으면 달이 있다. 그렇게 옳음이 있으면 그름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음양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대세가 있다. 여름에는 양의 기운이 대세이고 겨울에는 음의 기운이 대세이다. 그리고 기운은 순환을 한다. 양이 다하면 음으로 음이 다하면 양으로 변한다. 그래서 바뀐다고 하여 역(易)이라 하였다. 인간의 마음에도 음양이 있다.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 기준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가 좋으면 옳고 내가 싫으면 그른 이기적인 기준을 갖는 동물적인 본성이 있다. 그래서 성현들은 중도를 이야기 하였다. 내가 옳다고 생각할 때 남이 옳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하지만 생존에 대해 끝없이 갈구하는 동물적인 본성에서 출발하는 자기 이기심은 중도를 지키거나 남의 옳음을 받아들이기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자기가 옳으며 자신의 이야기만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한다. 특히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강한 사람일수
2년 전에 사온 고무나무 한 그루를 기르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물을 주고 봄여름에는 베란다에 내어놓고 가을겨울이면 거실에서 키웠다. 올해도 역시 거실에서 베란다로 내놓을 날을 기다리며 기온과 날씨를 체크하던 중 잊고 지냈던 사실을 목격하였다. 고무나무가 2개월 동안 하루가 다르게 매우 빨리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빨리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가 더 잘 드는 곳으로 옮겨 놓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조건이 더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것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그때 문득 작년 가을에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한 것이 생각이 났다. 결국 고무나무는 분갈이로 넓어진 공간만큼만 성장하고 스스로 성장을 멈추었던 것이다. 식물들이 생존할 수 있는 만큼만 커지고 스스로 크기나 속도를 조절한다는 내용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예부터 나무들은 스스로 크기를 조절한다는 말이 있었다. 크기조절에 실패를 하면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하기 어렵다. 어떤 해에는 비가 많이 오는 경우도 있으나 극심한 가뭄이 오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무들은 환경 조건이 좋다고 마구 크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가물었던 해를 기준으로 전체
‘완전할 完’이란 글자는 갓머리 부수에 元(으뜸, 우두머리, 둥글다)을 사용한 글씨이다. 따라서 完의 글자적인 의미는 머리에 갓을 쓴 모양으로 완성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집을 짓고 마지막에 지붕을 올린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완성된 의미를 지녀서 집을 다 지은 경우에 완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결국 完이란 글씨의 사전적인 의미는 ‘온전하다, 결함(缺陷)이나 부족(不足)이 없다’이다. 또 완벽이란 말로 완전무결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원래 완벽이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유래에서 나온 말이다. 조나라에는 티 하나 없는 고리모양의 옥으로 된 최고의 보물인 ‘화씨의 벽(和氏之璧)’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탐낸 진나라는 15성과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거절하면 전쟁을 일으키거나 혹은 물건을 받으면 성을 안주려고 비열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것을 미리 간파한 인상여가 진나라에 들고 가서 왕에게 보여주었더니 돌려줄 생각을 안 하자, 옥에 티가 있다고 속이며 돌려받고는 부수어버리겠다고 협박하여 무사히 돌아왔다. 그이후로 완벽이란 말은 고유명사에서 완전무결함을 나타내는 용어로 바뀌었다. 또 이 같이 ‘완벽’에서 ‘옥에 티’란 말이 유래되었다. 전혀 상
어제 많이 웃었나요? 어제 푹 쉬었나요? 어제 누군가로부터 존중 받았나요? 어제 하루를 즐겁게 보냈나요? 어제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배웠나요? 이상의 다섯 가지 질문에 독자들은 어떻게 답변하셨을지 궁금하다. 지난달 20일은 UN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 그래서 미국여론조사 회사 갤럽이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각 나라에서 15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나 인터뷰를 통하여 행복한 나라를 조사하여 순위를 발표했다. 그 조사내용은 ‘긍정경험 척도’였고 ‘행복경험 척도’라고도 하며 위의 다섯 가지 질문이었다. 한국인은 조사결과에서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143개국 중 118위로 하위권이었으며, 평균 71점보다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또한 WHO의 2014년 자살예방보고서에 의하면 173개국에서 자살률은 세계 3위로 최고위였다. 한편 4월 3일은 ‘정신건강의 날’이었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국민정신건강과 행복에 대해 조사 발표했다. 서울과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하여 조사한 결과에서 성인 중 36%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으며, 전체 대상자 중 1/3은 우울, 불안, 분노같은 정서
2005년에 한국 PC산업의 대표적인 주자였던 삼보컴퓨터가 문을 닫았다. 저가 판매 전략으로 처음엔 회사가 발전하였지만 중국 후속 주자들의 저가 경쟁에서 밀리며 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결국 회사는 파산하였다. 그래서 경제에서 저가 경쟁은 정글의 법칙을 따르는 치킨게임으로 규정짓는다. 얼마전, 교정치료비를 199만원에 월 치료비 5만원으로 SNS에서 광고해 1,000명에게 완판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이 기사를 보면서 향후 전개될 상황을 심리적인 면에서 고찰해 보았다. 경제는 인간의 가장 첨예한 심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는 심리적 변화에 따른 몇 가지의 법칙들이 있다. 일반 심리는 가격이 오르면 판매가 줄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반대로 판매가 증가하는 명품의 판매에 해당되는 베블린 효과가 있다. 이와는 반대의 개념인 기펜재의 효과도 있다. 가격이 하락함에도 수요가 증가되지 않는 경우이다. 물건에는 정상재와 열등재가 있다. 정상재란 개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도 같이 증가하는 경우를 말한다(소득↑, 수요↑). 열등재란 개인의 소득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재화의 수요가 감소하는 경우를 말한다(소득↑, 수요↓). 기펜재라는 것은
의기법의 계도기간이 지나면서 이에 따른 법적인 문제에 대하여 각 치과마다 직군 간의 업무분담을 나누었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이번 의기법을 원인론적인 면에서 생각해보고 다시 결과론적에서 생각을 뒤집어 보았다. 원인론적인 것은 이미 신문지상에서 보아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결과론적인 면에서 유추해본다. 우선 의기법의 강요가 치과의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치과위생사만을 고용한 원장에게는 업무의 증가가 없으니 무관하다. 위생사와 조무사를 고용한 원장은 업무 분담을 지시만하면 되니 별문제가 없다. 조무사만 고용한 원장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다. 본인이 직접 행하거나 위생사를 고용하는 것이다.그럼 여기에서 왜 조무사만 근무하는 치과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게 4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원장이 조무사라는 직업을 너무 좋아한다. 둘째는 위생사라는 직업을 너무 싫어한다. 셋째는 위생사를 구할 수가 없다. 넷째는 일시적으로 위생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기법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장은 감정의 문제라서 상관이 없다. 세 번째의 원장은 어차피 위생사를 구할 방법이 없다. 네 번째 원장님은 빨리 고용을 서두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 아니 빠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얼마 전 강연회에서 “인류는 지난 3000년 동안 인간 중심 사회였다면 이제부터는 사물중심의 사회로 변한다”는 말을 듣고 공감한 적 있다. 그리고 사물 중심 사회라는 관점에서 요즘 사건들을 해석해보니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는 취직이 잘 안 되는 과는 폐과시키고 학과들을 취업을 기준으로 통폐합시키고 있다. 거기에 교육부장관은 한술 더 떠서 대학은 취업준비를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요즘 취업하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졸업을 연기하는 현상은 당연시되고 있다. 이미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이런 학교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철학과나 언어학과 교수들의 몸싸움이 간간히 TV화면에 잡히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적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에서는 간통죄가 위헌 결정이 났다. 사회 구성의 기본단위를 가정으로 잡았던 것에서 개인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뉴스 사회면 기사를 보면 연인이나 동거했던 사람 간에 헤어지면서 살해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극단적인 내용으로는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남편을 농약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치과계 일각에서는 새로운 환자의 풀이 형성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많다. 그런데 치과계나 우리사회는 아직 고령화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다. 심리학에서는 노인심리나 사회의 고령화에 대하여 한 파트로 정하고 있는 반면에 아직 사회는 미비한 느낌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전 아내의 치매를 10년 동안 돌보던 할아버지가 더 이상의 병수발을 포기하고 할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가슴 아픈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결국 준비되어 있지 않는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단계이다. 복지와 사회제도가 접근하여야하지만 아직 우리사회나 정치인들은 노령화보다는 육아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느낌이다. 치과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일단 치과의사들의 은퇴 시기가 늦어진다. 예전이라면 60~65세 정도에 은퇴하였다면 지금은 70세까지도 현역 활동이 가능하다. 첫 번째 이유는 치과의사가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하여 건강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삶을 같이 동반해온 동료나 진료를 받아온 환자들도
구순구개열 환자에 대한 교정치료 및 수술에 대하여 의료보험을 적용해주는 것을 검토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느낀 감정은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일본에서는 대학병원에 공동치료센터가 있어서 구순구개열 환자뿐 만 아니라 다른 기형 환자들도 모든 과가 한군데 모여서 같이 진료를 한다. 즉 환자는 센터에만 가면 그곳에서 교정과, 보철과, 구강외과, 보존과 치료를 한꺼번에 다 치료받을 수 있다. 더불어 정부기관과 각 산부인과가 연계돼 있어 구순구개열 환자가 출산되면 산부인과에서 바로 센터로 연락하며, 센터에서는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환자가 0세부터 프로그램에 의하여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형편은 센터는 고사하고 치료비도 모두 부모의 몫으로 되어있다. 또한 교정치료비 조차도 보험이 안 되는 형편이다. 게다가 역학조사에서 부모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교정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구순구개열인 경우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일부 의사들은 이를 빌미로 비급여 진료부분에서 폭리를 취한다는 이야기마저 들리는 현실에서 구순구개열 환자에 대한 보험급여의 결정은 정말 감사한 일이 아
제목이 무슨 간첩 암호 같은 느낌을 주지만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밀접한 숫자이고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725는 올해 치과의사 시험에 합격한 새내기 치과의사의 숫자이다. 751명이 응시하여 725명이 합격하였으니 96.5%의 합격률이다. 다른 숫자는 올해 전문의 치과시험을 합격한 선생의 숫자이다. 289명이 응시하여 285명이 합격하여 합격률이 98.6%이다. 그래서 새해 치과의사 합격자의 숫자와 전문의 합격자의 숫자를 비교하여보니 새로 면허를 받은 치과의사의 약 40%가 새로 합격한 치과전문의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하자면 지금 전문의를 따는 선생님들이 배출되던 시기의 총인원으로 계산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맞겠지만 사회학적으로 생각하면 올해 새로이 면허를 받는 치과의사 대비 새로 시작되는 전문의 수를 비교하여도 타당성은 있다. 결국 치과의사의 약 40%가 전문의가 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필자는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세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시대라는 문화가 따라 흐르며 세상을 만든다. 아무리 옳고 그름을 따지고 막으려하여도 도도하게 흐르는 세상은 한 두 사람이나 집단의 의지
현대의 위대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대표 저서에서 ‘두려움이 대상을 갖는 것이라면, 불안은 대상을 갖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두려움은 하이데거가 불안에 대비시키는 하나의 기분현상이었다. 두려움이 비본래적 정황성이라면, 불안은 본래적 정황성이라고 하였다. 그는 “두려움은 우리를 본래적 자기로부터 회피하게 하는 반면, 불안은 우리를 감춰졌던 본래적 자기 앞에 직면하게 한다. 그런데 두려움의 현상은 세 가지 구조계기를 갖는다. 두려움의 대상(무엇 앞에서), 두려워함 자체, 그리고 두려움의 이유(무엇 때문에)가 두려움을 통일적으로 구성한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 등의 기분이 ‘사람이 있음’으로부터 발원하고, 그 ‘있음의 뜻’이 시간의 빛 아래서만 제대로 밝혀질 수 있다면 기분 분석의 시도는 결국 ‘존재와 시간’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라고 정의하고 철학적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기분 분석을 하였다. 두려움은 하나의 감정이다. 감정은 사전적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한다. 감정에는 다양한 용어가 있다. 사전에 의하면 희로애락(喜怒哀樂)처럼 격렬하고 강하지만 폭발적으로 표현되어 오래 지속되지 않
요즘 청소년과 관련된 대형사건 두 가지가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안산 의붓딸 살해사건’과 ‘김군 터키 실종사건’이다. 얼핏 생각하면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청소년이 개입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사건에서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16세의 소녀가 있었고 다른 한 사건은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집을 떠난 18세의 소년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엄마가 이혼 후에 새로 선택한 의붓아버지가 아주 극악하여 성폭행을 당하다 급기야는 살해된 일이다. 아주 착하고 여린 아이여서 저항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사건은 교우 관계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둔 뒤 집에서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하다가 인터넷과 비밀 SNS로 대화하던 터키의 펜팔 친구를 따라 떠난 18세의 은둔형 아이였다. 이 두 사건을 보면서 필자가 슬픈 것은 순종하고 따랐던 착한 순종형 아이도,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였던 행동형 아이도 모두 이 사회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논리일 수는 있으나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처한 또 다른 형태의 모습일 수도 있다. 청소년의 문제의 발단을 찾을 때에 제일 먼저 소속된 가정의 형태와 엄마를
어제 오전 은행에 들렀다. 바로 앞 손님이 70대 노인이셨는데 한동안 불만을 토로하셔서 뒤에서 상당한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내용을 듣게 되었다. 핵심 내용은 은행카드의 포인트를 현금화시켜주지 않는 것에 있었다. 결국 노인은 화만 내고 돌아가셨다. 그 이후에 가습기를 보려고 전자상가를 갔더니 그 곳 데스크에서도 70대 노인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다보니 휴대폰 결제 비용에 대한 내역으로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필자가 상점을 나올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아침에 들른 두 장소 모두에서 노인들의 큰소리를 들으며 그날의 일진을 확인하니 기축일이었다. 동양철학적으로 설명하면 양측이 모두 옳은 날이다. 다만 내용상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주장하는 쪽에서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날이란 의미를 지녔다. 노인은 잘못된 제도에 대한 지적, 상점들은 규정에 따른 행동이라는 차이로 해석된다. 노인은 정의를 실현하려는 외침이었고 상점 입장에서는 또 한명의 Black consumer(BC)였을 것이다.조선시대 정조 임금 시절에 정약용 선생이 실학을 주장하던 때에 독일에서는 가우스가 표준정규분포를 만들었다. 필자가 표준정규분포를 처음 공부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