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모 지검장의 음란성 행위는 한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였지만, 개인이 정신적인 치료를 받겠다는 말과 그의 행동을 성도착증이라고 대중매체에서 결론을 지으면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몇 가지 오류와 사회문화적인 중요성이 있다. 우선 도착증과는 조금 다르다. 성도착증은 미국 정신의학회 분류(DSM-V)에서 정한 정신질환이다. 성도착증에는 노출증, 관음증, 소아기호증, 가학증과 피학증, 마찰도착증, 복장도착적, 물품음란증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성도착증의 특성은 18세 이전에 발병하여 20대 중반에 나타나다가 그 이후로 감소된다는 점이다. 노출증도 40대 이후에는 상태가 완화된다. 제주의 모 지검장 나이는 53세였다. 그의 나이와 일련의 행동을 종합하여 판단하여 보면 성도착증이라기보다는 성 중독증이라고 조심스럽게 판단하여 본다. 한국 심리학회에서의 성 중독(sexual addict)은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심한 고독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성적 모험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증세를 말한다. 성(섹스)중독증이란 용어는 1983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Patric Kerons가 처음 사용하였으나 아직 의학적으로는 정립되지 않은 용어이
얼마 전 교정치료를 위하여 중학교 2학년 여학생에게 상·하악 악간 고무줄을 견치부위에 걸라고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진료를 위하여 입안을 보니 고무줄이 없어, 걸어보라고 하니 걸지를 못하고 허둥거린다. 평소에 어머니가 고무줄을 걸어주어서 자신은 걸 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엄마들의 과잉보호와 과잉참견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엄마가 없으면 교정 고무줄 한 개를 걸 수 없다고 말하는 중2 여학생을 눈앞에서 보는 현실은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이었다. 대학생의 수강신청을 엄마가 해주고 회사에 결근하게 되면 엄마가 전화한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필자의 눈에서 목도하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수많은 생각과 걱정이 되는 것을 보니 필자의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 얼마나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작은 일의 성취만족도는 자아 존중감을 증진시키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엄마들이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들의 심리적 발달을 위한 행동과 행위를 차단하여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심리적인 면역성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이다. 마치 너무 청결한
오늘 201회 글을 쓰니 처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에 숫자의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시작과 끝이라는 인간적 관념의 가치를 부여해본다.100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도에서 시작한 10진법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인간의 손가락 개수가 10개라서 10진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이외에도 인간은 많은 진법을 사용한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에는 12진법을 사용한다.12진법은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연필 한 다스라는 다스를 사용하였다. 다스는 하루를 나타내는 시간의 단위로, 하루는 2다스의 시간으로, 1시간은 5다스의 분으로, 1분은 5다스의 초로 나타내었다. 또 길이로 12인치, 무게로 12온스를 사용하고 음악에도 마디나 음을 반이 아니라 3등분 할 때의 개념이 12진법이다. 그래서 2박자, 3박자, 4박자, 6박자는 전부 12의 약수이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컴퓨터의 키보드의 맨 위에 위치한 키는 F1에서 F12까지 12개의 키도 12를 좋아하는 유럽인들 때문에 탄생된 것이다. 초와 분은 60진법을 사용하며, 이는 지구의 공전주기와 원의 360도의 1/6에 해당된다.이에 동양의 역서인 만세력은 60갑자를
구강외과 수련시절이었다. 30대 초반의 남자가 턱골절로 내원하였다. 원인을 물어보니 생후 6개월 된 갓난아기를 누워서 들고 놀다가 발에 차여서 턱이 골절되었단다. 혹시 환자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되어 여러모로 조사해보니 사실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인간의 신체 허약함에 놀랐다. 또 한 번은 응급실에 턱이 빠진 환자가 내원하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턱을 정상으로 정위시켜 놓으면 2~3분 후에 저절로 입이 벌어지면서 턱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십여 차례하고는 처음 접하는 현상으로 병원의 모든 과가 다 모여 상의하였다. 결론적으로 파상풍에 의한 원인을 저작근의 비정상적인 수축이라고 잠정 판단하고 의료진이 모두 모여서 환자의 전신에서 상처받은 부위를 찾았다. 발톱을 깎다가 다친 흔적을 발견하고 파상풍 치료 후에 턱이 연속적으로 빠지는 것을 해결한 사건으로, 필자에게 신체는 경우에 따라서는 유리잔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인간 생명의 강인함도 보았다. 여섯 살 여자아이가 교통사고로 하악골 복합골절을 포함하여 다발성 전신골절 상태로 응급실로 들어왔었다. 인투베이션을 위하여 하악골을 우선 고정시켜주었다. 신경외과가 수술하는 동안 나머지
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내린 처분이 옳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또 다시 법이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이 최고의 선임을 확인하게 한다. 법의 판단 기준에 선악보다 사회가 가야할 방향의 제시라는 대전제가 있음을 실감하는 부분이다.이미 한국사회는 의료를 공공의 이익 실현이라는 전제하에 의사의 자유권을 박탈하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강제 계약체결 조항은 의료사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 정부의 입장에서 문제의 모네트워크의 진료수가 파괴는 고마울 뿐이다. 그들은 향후 그것이 2차적으로 몰고 올 의료의 질적 저하, 의료의 상술화, 과잉진료, 정상 의료체계의 붕괴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치인은 국민 건강이라는 미래의 대상보다는 현실에 직접 나타나는 포퓰리즘의 과시적 실적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결국 의료를 상품으로 보았다. 인간이 인간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의 심리적인 영향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였다. 치료하는 의사의 심리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의사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잘못되는 것은 모두 의사의 소양 부족이거나 의사의 파렴치함 때문인 것으로 몰려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듯하다. 자본이 최고인
드디어 취업자 100명 중 37명이 50세 이상이 되었다. 취업률에서 60대가 20대를 앞지르고 50대가 30대를 추월하였다. 올해 2분기에 40대(26.00%), 50대(22.79%), 30대(22.18%), 60세 이상(14.13%), 20대(14.01%) 순이었다. 이것은 10년 전인 2003년의 30대(27.94%), 40대(27.24%). 20대(19.58%), 50대(14.34%), 60세 이상(9.68%)과도 확연히 다르고, 30년 전인 1983년의 20대(27.49%), 30대(25.49%), 40대(23.01%), 50대(13.35%), 60세 이상(5.67%) 순과 비교하면 더 많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해가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서 50대 이상으로 이동된 것이다. 취업자가 고령화 되었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이며 이것을 겪어야하는 모든 세대는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여야 한다.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20대와 50대는 가장 큰 갈등을 겪어야한다. 우선 20대는 취업의 문이 적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취직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자리가 없는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후보자들이 또다시 줄줄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사유들이 언론에 발표되었다. 여당은 대통령과 거리를 둔 사람이 당대표를 맡았다. 치과계에서는 처음으로 치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이 언론에 노출되었고, 그 동안의 관행이던 석·박사 논문 실습비와 지도비가 비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일간지에 실렸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군비 축소와 일본의 군사력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일념하에 주변국의 소리를 무시하고 일본의 군국주의로의 회귀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일련의 모든 현시대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각자의 이익에 따른 불통’이다. 이런 사회든 개인이든 불통의 시대에 절실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소통’이다. 소통(疏通)은 ‘트일 소(疏)’와 ‘통할 통(通)’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소(疏)자는 疋(짝 필)자와 흐를 유(流)가 합성된 것이다. 疋(짝 필)자는 인체에서 무릎 밑의 다리를 의미한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정강이로 막힌 둑을 트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무릎으로 기어야만 소통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심리학은 예전에 철학의 한 부분이었다. 아니 모든 학문이 철학이었
“선배님, 말씀 낮추십시오”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이다. 이제 쉰이 넘은 나이가 되고 보니 오랜만에 만나거나 전화 통화하는 후배들도 나이가 쉰 근처에 머무른다. 또 서로가 바쁘거나 생활공간이 다르다보면 10여년을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10여년의 공간을 넘어서 동문회에서 만났다고 말을 바로 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각별하게 친했던 사이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단지 시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후배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했다면 사석에서는 평어를 써도 공석에서는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존대어는 상대를 높이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는 문제도 있다. 필자가 아이를 낳고 기르던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필자에게 존대어를 쓰시기 시작하셨다. 반면 필자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평어와 존대어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나이든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 평어를 사용한다. 예전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부부간에는 꼭 경어를 사용했다. 이렇듯이 존대어는 실제적으로 상하 서열의 관계를 의미하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더 강하다. 어머니가 유치원 아이에게 존대어를 쓰는 것은 교
얼마 전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 속에서 96%가 욕을 포함한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어려서부터 약간의 비어나 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모나 어른들이 무심하게 간과하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학교나 학원 등의 모임에서 어떤 상대적 우월성을 지키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친구’같은 조폭영화에서 멋있다고 느끼고 흉내를 내면서 시작되었지만 사회적이나 가정적으로 저항을 받지 못하고 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부모나 사회가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발생한 매우 중대한 사회적인 오류이며 개개인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대다수가 언어를 단순하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과 철학에서는 언어에 대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언어의 발달과 인지적 능력의 발달을 같이 연구하고, kelly는 언어적 구성개념과 전언어적 구성개념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대철학에서는 더 큰 비중을 언어에 두고 있다. 20세기 실존주의철학의 거두인 하이데거는 대표적 저서인 ‘언어로의 도상에서’에서
시간은 역시나 세월호를 넘어 월드컵으로 왔다. 시간은 망각이라는 동반자와 같이 다닌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요즘은 TV를 켜면 온통 월드컵 이야기뿐이다. 필자 또한 시대에 편승하여 저녁과 아침에 월드컵을 시청하다보니 낮에는 졸기도 한다. 누군가가 세상사의 아픔이란 것이 단지 시간의 길이 차이라고 한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월드컵 최고의 빅 매치인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기 위하여 졸음을 참으며 기다렸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기 드믄 장면이 연출되었다. 포르투갈의 공격수 페페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넘어져 앉아 있는 독일 선수를 머리로 박치기를 하고는 퇴장을 당하였다. 이 후에 포르투갈은 급격히 무너지고 큰 점수 차이로 경기에 패배하였다. 더불어 세기의 최고 공격수인 호나우드의 기량도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페페의 과거 경력을 보면 그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고 생각된다. 31살인 남자가 20억의 인구가 지켜보는 그라운드에서 상대편에게 박치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심한 성격장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출생이 브라질이고 국적이 포르투갈인 것을 보면 어려서 성장기에 내부적인 분노가 많이 잠재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날씨가 더워지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니 대학원 수업도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대학원 수업이 끝난 후 과대표의 보고사항은 여러 가지 생각을 남겼다. 수업의 진행은 각자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고 그 주제로 토론을 하는 형태인데 마지막 발표자가 부인이 아기를 낳을지 몰라서 발표하지 못할 수 있다는 통보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몇 년 전 필자의 병원에서도 남자 치과의사 선생이 아이를 출산하고 출근을 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요즘은 남편에게도 5일 범위에서 3일 이상의 유급휴가를 주어야하고 위반 시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이 있다. 병원은 직장이고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정한 일이니 상관할 수 없지만, 자신이 발표할 수업에서 발표를 안 하겠다는 것은 여러 생각을 남긴다. 출산휴가는 법으로 정한 것이니 권리이다. 그러나 수업의 발표는 모두가 협의한 약속이므로 의무이다. 그런데 그 30대 예비 아빠는 수업에서의 발표도 일과 동등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중요한 사항이 있으니 타인에게 끼칠 약간의 손해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풀잎은 가장 연약함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하지만 장자는 태풍이 불면 뿌리가 뽑히는 존재가 큰 나무이고 풀잎은 바람에 순응하여 살아남는다고 하였다. 요즘 우리들의 마음속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쌓여온 수많은 비리와 사건들을 ‘세월호’라는 태풍으로 한번에 날려 보내고 있다. 우리 한국 사회가 그 태풍 속에서 사회적, 심리적으로 심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각자 개개인들은 노란 리본을 묶으며 반성이라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태풍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부정, 부패, 비리와 같은 고질적인 사회병폐를 모두 쓸어버렸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더불어 태풍 앞에 풀잎 같은 우리 개개인들도 태풍이 지난 후에 좀 더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삶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풀잎처럼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다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주기를 바란다. ‘풀잎’이란 단어는 지나온 한민족의 역사와 애환과 같은 단어이다. 굳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단어가 주는 의미는 이미 우리의 피와 정서 속에 있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풀잎을 이야기하였다. 필자가 힐링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부처님 오신 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누님과 함께 계룡산에 있는 성혜사로 향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차 막힘도 없이 도착하여 여유롭게 행사에 참관할 수 있었다. 법문 도중에 세 잎 클로버를 코팅지에 넣어서 나눠주시며 우리들이 너무 네 잎 클로버에 집착하며 살았으니 이제는 세 잎 클로버로 만족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그동안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욕심이 탄생하였으니 세 잎 클로버로 행운과 요행을 바라지 말고, 주어진 만큼만 얻고, 행한 만큼만 받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린다면 만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법문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연휴가 끝나는 날이라서 1번 국도를 따라 올라왔다. 모처럼 1번 국도를 지나니 옛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하여, 장사를 하기 위하여 한양을 향하여가던 선조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천안삼거리에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전라도와 경상도 선비들이 서로 처음 모였을 것을 생각해본다. 그 시절 걸어서 3일이 걸리던 한양을 이제 2시간에 가도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 지금 우리들의 삶을 돌아다본다. 3일을 2시간으로 줄였는데, 줄여서 남은 3일은 행복하고 여유롭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어제는 여수행 KTX에 몸을 실었다. 요즘 화요일이면 전북대치전원 학생지도를 위하여 전주에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반찬을 이것저것 준비하여 배낭가방을 꾸릴 땐 초등학생이 소풍을 가듯이 마음이 설렌다. 어려서 살던 이태원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택시로 용산역을 가는 길의 풍경은 초중고 시절과 모습이 변하지 않아서 좋다. 용산은 미군부대의 영향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오산중학교를 지날 때면 중학교 2학년시절 수업시간에 창밖을 내다보면 잠수교 공사가 진행되던 일이 기억난다. 또 친구들과 무슨 다리가 수면에 저렇게 가까울까하고 이야기하던 일도 생각난다. 용산역에 도착하면 카페라테 한잔을 사들고 기차에 올라 좌석에 앉으면 여행의 설렘과 2시간 10분이라는 나만의 시간이라는 여유가 행복을 준다. 기차에서 제공되는 종이신문을 보면 웬일인지 반갑다. 인터넷으로만 검색하다보니 종이신문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 탓일 것이다. 신문을 보고 가져간 책을 잠깐보다 시장기가 돌면 12시가 조금 지난다. 아침에 준비해온 보온병과 도시락을 열어서 반찬을 테이블 위에 배열시키면 꽉 찬 테이블이 마치 한정식집의 한상차림과 같이 뿌듯함을 준다. 점심을 마치고
요즘 출근하면 제일 먼저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 놓는다. 그리고는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듣는다. 하루 종일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일주일이 넘도록 너무 오랫동안 상처받은 마음들을 회복시켜줄 방법은 생각하다 찾은 것이 비발디의 사계였다. 그리고 필자를 위해서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같이 마신다. 더불어 심적으로 화가 올라올 때에 먹으려고 항상 가득히 비치해 놓은 냉동실 속의 초콜릿도 먹는다. 감정 조절을 위하여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현대 철학자 가다머에 의하면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고 하였다. 따라서 요즘은 농담도 하기 싫은 마음이라서 가급적이면 언어의 표현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가라앉고 침잠하려는 마음을 복원시키려고 노력한다.한국 사람의 피 속에는 융이 이야기하던 민족적 집단의 원형인 강력한 공통 심리가 있다. 필자는 그것이 한(恨)이라고 생각한다. 반만년을 유지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정서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의 충격은 또 한스러운 사건으로 한민족의 공통적인 한이라는 공감대를 자극하고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