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사자성어 유시유종(有始有終)은 논어 자장(子張)편 “시작과 끝이 있는 사람은 성인뿐(有始有卒者, 其惟聖人)”에 수록된 말이다. 유시유종은 일반 삶 속에서는 참에 가까운 지혜이지만 과학이나 수학적으로 보면 참 명제는 아니다. 수학에서 시작과 끝이 없는 원과 뫼비우스 띠가 있다. 과학에서 우주는 시작과 끝을 논하기 어렵게 광활하다. 반면 인간은 유한 시간을 지닌 존재여서 유시유종이 반드시 해당되는 참이고 지혜다.
3년간 지속돼오던 코로나19가 이제 끝자락이 보인다. 최근 일일 확진자 수가 4,000명 내외다. 정부가 이번 주부터 마스크 의무 착용을 해제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모든 세상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니, 코로나19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란 글을 쓴지 2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코로나19가 끝이라는 기사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코로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난 3년이란 시간은 세상에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줌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는 당연시되었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구매가 대세로 바뀌었으며, 배달주문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원격 근무, 원격 교육에 이어 일시적인 원격 진료도 허용되었다. 대면 모임 자제로 인하여 가족관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적 관계가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전화로 대화하는 것보다 문자로 대화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심지어 젊은 세대들에서 육성 대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경제적으로 가계 빚이 증가되는 등 많은 사회적 변화를 남기고 이제 코로나19가 끝났다. 하지만 세상사에서 끝은 끝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마치 전쟁이 끝난 뒤 황폐한 폐허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
새로운 시작은 새 시대에 대한 희망도 있으나 변화된 세상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국가는 코로나 시대에 엄청나게 많은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란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이제 양적 축소를 위한 금리 인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올해 미국 최종 금리가 5.75~6%까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최근 금리 인상으로 인해 미국에서 SVB가 파산하며 양상이 바뀌었다. SVB 파산은 과거 리먼파산과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리먼은 무리한 부동산 파생상품에 의한 은행과실이라면 SVB는 가장 안전자산인 채권투자로 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금융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룰도 바꾸어 버렸으며 앞으로 금융시장 전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SVB같은 은행이 계속 망할 것이고 올리지 않으면 양적 완화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지속될 것이다.
코로나는 전 세계 경제에 선택하기 어려운 숙제를 던지고 떠났다.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여도 결국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로 갈 수밖에는 없다. 실질금리가 10%에 육박하는 고금리 환경은 후진국과 개도국을 경험한 60대 이상 세대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또한 코로나가 주고간 새롭게 변화된 세상이고 적응해야 할 환경이다.
새로움은 도전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적응이라는 시련도 동반한다. 부적응 시에는 손해를 감수하거나 도태되기도 한다. 끝은 또 결산의 의미도 지닌다. 노력한 정도에 따라 이익 혹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코로나19는 자체가 고통이었기 때문에 끝나는 것만으로도 행복지수가 매우 높아지지만, 기간이 길었던 탓에 변해버린 환경에 대한 적응도 요구한다. 얇아진 인간관계도 회복시켜야 하고 멈추었던 운동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지난 뒤 언젠가는 과거를 돌아보며, 한때 미니스커트 길이와 장발을 단속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 이해하기 어렵듯이 ‘그때엔 마스크를 안 쓰면 지하철을 탈 수 없었다’고 회상하는 날도 올 것이다. 끝과 시작이 어우러진 혼돈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를 품기를 바란다. 시작엔 끝이 있고 끝은 새로운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