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둘째 딸이 아내에게 “아빠는 에겐남이야?”라고 묻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에겐남’이라는 단어가 낯설었지만, 지금은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 MBTI만큼이나 M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테토녀’와 ‘에겐남’이다. 테토와 에겐은 각각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을 줄인 말이다. 단순히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좀 더 정확히는 테토 성향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유형을, 에겐 성향은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깊은 유형을 지칭한다. 언뜻 재미있는 유행어 정도로 보일 수 있으나, 이 말이 사회 전반에서 유행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성 역할의 경계가 흐려지고, 소통방식과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치과 진료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원장님이 알아서 잘 치료해주세요”라고 하던, 소위 ‘오마카세’식 진료를 선호하는 환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치료 방식을 선택하며, 의료인의 설명과 배려를 당연한 권
“신이시여, 노여움을 노래하소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이렇게 시작된다.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쓰였지만,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 읽히고 있다. 누구에게나 숙명의 숙제 같은 책이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작품들이다. 단순히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철학적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기에 항상 엄두가 안 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중 ‘일리아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서사시다. 유럽 문명 최초의 고전 문학이자 ‘오디세이아’와 함께 고대 그리스와 이후 서양 문명의 문학, 예술,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 호메로스가 저자라고 전해지지만,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지던 이야기를 편집했다고 여겨지며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를 시기에 문자로 기록된 그야말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일리아스’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트로이아 전쟁 중 51일간의 이야기다. 트로이아의 왕자 헥토르와 그리스 연합군의 전사 아킬레우스, 이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한과 복수,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할지언정 명예로운 삶과 죽음
기억하기로 연세치의학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 것이 10여 년 전이었고, 지난해 서울대치과대학이 100주년을, 또 서울대치과병원이 지난 10월 14일 ‘서울대치과병원 100주년, 특수법인 20주년 기념식’을 열고 새 비전과 미션을 선포했다.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수립한 미션은 ‘서울대치과병원은 치의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든다’로 선포했다. 비전은 △따뜻한 인성과 최고의 실력을 겸비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 △임상의 연구성과로 세계 치의학의 지평을 넓힌다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장 신뢰받는 치과병원이 된다 △사회적 포용을 실천해 건강한 변화를 이끈다 △사람 중심의 조직문화로 열린 소통과 협력 문화를 공유한다 등이었다. 병원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새로운 100년을 위해 서울대치과병원이 나가야 할 방향성을 함께 수립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올해는 대한치과의사협회와 서울시치과의사회 100주년의 역사를 성대하게 기념했다. 현재 국내에는 면허취득자 3만7,000명, 활동치과의사 3만여 명, 그리고 전국 치과의원 1만9,000개소 등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동시에 세계 치과의료기기 점유율 15%의 치과의료강국으로 발돋움하고
“당선될 수만 있다면 과장된 공약을 남발해도 괜찮다. 유권자는 공약에 박수를 보낼 뿐, 얼마나 지켰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정치 현실을 꼬집는 듯하지만, 사실은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이 1895년 출간한 ‘군중심리’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흑색선전으로 상대를 공격하되,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그의 분석은 13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할 때, 고립되거나 비난받지 않으려 동조하는 심리를 말한다.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어떤 여론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반대하지 않으려는 것, 신호등이 빨간불이어도 한 명이 무단횡단하면 줄줄이 건너는 것, 커피숍에서 일행 모두가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원래는 라떼가 먹고 싶어도 따라가는 것 등이 그렇다. 르 봉은 프랑스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군의관으로 보불전쟁에 참전했다. 그 과정에서 ‘9월 대학살’과 같은 비이성적인 집단행동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집필한 ‘군중심리’는 학술논문이 아닌 에세이 형식이었고, 처칠·레닌·스탈린 그리고 드골 같은 각국의 정치 지도자와 각계 인사들이 애독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군중에 관한 연구
2025년 6월 12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지난 23년 치러진 제33대 치협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박태근 외 3인에 대한 당선무효를 선고하였다. 60여 페이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치협 규정을 위반한 수차례의 문자메시지 발송과 신문광고를 게재한 행위, 치과계 전문지 기자와 공모해 2만여 회원 정보를 무단 이용, 수차례에 걸쳐 선거운동 이메일을 발송한 행위, 선거일 직전 ‘의료인 면허취소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선거일에 임박해 의료인 면허취소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될 것이라는 등의 허위 사실을 SNS에 게재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한 행위 외에 당시 서울시치과의사회(이하 서울지부) 회장인 “원고 김민겸의 낙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원고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서울지부에 대한 감사위원회 감사결과를 발표했다”면서 이와 관련한 행위가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하며 당선무효를 선고하였다. 이 중 2만여명의 회원 정보를 무단 이용하여 이메일을 보낸 행위는 서울서부지검의 치협 압수수색 후에 담당 이사 등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서울지부에
입추(立秋)가 지나니 삼복염천 무더위도 한풀 꺾이며 가을 문턱에 들어선 듯 하다. 절기상 입추 이후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있지만 밤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을을 서서히 준비한다. 무더위에는 엄두도 못 내던 독서를 다시 시작하려 ‘치과의사의 서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서울시치과의사회 전자도서관을 열어보니, 보유 도서가 크게 늘어 있었다. 올 가을은 다양한 책과 함께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요즈음 손에 잡히는 책은 주로 심리학, 그중에서도 사회심리학 분야다. 사회심리학은 개인 간 상호 작용과 사회적 환경 속 인간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학과 심리학의 중간이고, 두 분야를 결합해 연구하는 종합 과학이기도 하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어쩌다 어른’ 등 여러 방송에서 교수들이 ‘한국인의 특징’을 주제로 사회심리학 강의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정말 한국인을 정확하게 정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웠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관계주의적 문화’를 갖고 있으며, 조직 내에서나 타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관계주의적 문화를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개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마다 의료개혁을 외쳤지만 제대로 된 개혁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전국민건강보험제도 도입이나 의약분업 등 시대적 요청에 의한 대규모 개혁은 지금도 회자되기는 하지만 보다 세밀한 정책도입 등만 더디게 개선되어 가고 있을 뿐 의료개혁이라는 테마를 가질만한 개선은 기억에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의료개혁을 매 정부마다 숙제처럼 들고나온다. 의료에 대한 욕구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만 가는 국민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료개혁은 칼로 무 자르듯이 해결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이렇다 할 만한 대책을 만들기 어렵다 보니 매번 개혁의 주요과제로 남게 된다. 그만큼 의료개혁은 다각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볼 상황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에서 느닷없이 의사를 매년 2,000명씩 증원하겠다는 개혁안을 들고 나왔을 때, 의료계는 물론 국민조차 충격을 받았다. 파격적이다 못해 무모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의료인 양성이 국가가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국민 소득수준·인구 증감에 대한 변화 등을 예측해 적정 수의 의료인을 매년 어느 정도씩 증감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격하게 의견수렴과정도 생략한 채 밀어붙였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풀린 지 1주일 만에 소상공인 매출은 늘었다고 한다. 한국신용데이터(KCD)에 따르면 소상공인 사업장 38만여 곳의 카드 매출 중 안경원 업종이 56.8% 급등하며 가장 높았다. 패션, 의류, 외식업종도 20%대 증가율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 시행 직후부터 소상공인 매출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평가하며, 유통, 외식, 미용 분야 등 생활 밀착 업종에서 뚜렷한 매출 상승이 일어난 만큼 더 많은 골목상권 회복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치과의원은 상황이 다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혜택은커녕 “코빼기도 못 봤다” 반응이 대다수다. 물론 불볕더위와 휴가철이 겹친 시기라 서비스업 전반에 효과가 고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13조 9,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7월 22일부터 전 국민의 90%가 신청했고, 이미 8조 2,371억원 규모의 소비쿠폰이 지급된 현실을 감안할 때 치과계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치과계 전반적으로 경기가 불황인 이 시기에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치과 매출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지난 1~4월 경기 광명시에
치과의사는 설명하는 사람일까? 의료행위의 핵심은 치과의사가 설명하는 것에 있을까? 의료분쟁에서 환자의 주장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설명의무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설명의무는 의료행위에서 치과의사가 환자에게 진단 결과, 치료 방법, 예후, 부작용 등을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중재원 감정 사건 중 절반에서 설명의무 위반 여부가 보상 결정에 주요 쟁점으로 작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치과의사의 설명의무의 범위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는 일관된다. 환자에게 해줘야 하는 설명은 “환자에게 자기결정에 의한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과거 의료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게시글이 있다. “아프다는 설명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환자가 치료비 납부를 거부했다”는 글이었다. 환자는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않았으니, 치료비를 낼 수 없다”고 했다. 아플 수 있는 처치를 하면, 사전에 아프다는 설명과 함께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는 이유였다. 최근 소비자 권리가 높아지고 배달플랫폼이나 택시승차플랫폼 등이 발달하면서 불만에 대한 처리나 환불이 많아지는 등 소비자의 갑
삼복염천(三伏炎天)이라더니 날씨가 정말 ‘이글이글’하다. 초복과 중복을 지나 말복을 앞두고 있으니 무더위의 절정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은 ‘엎드릴 복(伏)’으로, ‘엎드리다’, ‘숨는다’는 뜻도 있고 삼복(三伏)을 통칭해 말하기도 한다. 복(伏)을 풀어보면 뜨거운 더위에 사람이 개처럼 납작 엎드린 형상을 뜻한다. 단순히 더위에 지친 몸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겸손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단어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을 시절 선조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냈을 터이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삼복(三伏)은 진나라 덕공(德公) 2년에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조정에서는 신하들에게 고기를 하사했고, 민간에서는 떨어진 기력을 보양하기 위해 육류나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이러한 문화는 농경사회 문화권인 우리나라에도 절기에 맞춰 보양식을 나눠 먹는 풍습으로 전승됐다. 서양에도 대개 7월 초에서 8월 초의 무더운 여름을 ‘도그 데이즈(dog days)’라고 한다. 이 시기는 시리우스(큰개자리 알파별)가 떠오르는 때로, 고대 헬레니즘 점성술에서는 이를 열사병과 가뭄 등 기후 이상이 나타나는 가장 덥고
한 시대가 보여주는 여러 문화(정치, 경제, 교육, 의료, 대중 등)의 다양한 모습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최근 한국 대중문화가 비춰주는 것은 과도한 자기애(自己愛)와 자극의 미학이다. 수많은 미디어가 거친 막말과 무분별한 자극 속에 혐오와 조롱을 담아내며 그것을 ‘용기’라 이름하고, 정의와 공감, 연대와 화합 등과 같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신중한 수위조절로 논하면 ‘꼰대’요, ‘쫄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선 넘지 말고’는 재미없고, ‘누가 더 멀리 넘느냐’의 게임이며, ‘무엇이 옳은가’보다는 ‘무엇이 더 잘 팔리는가’가 콘텐츠의 핵심이 되었다. 공급은 수요가 있기 때문인데 이미 이 게임에 길들여진 대중은 미화된 욕망에 열광하고 이를 ‘핫 콘텐츠’라 공유하며 조회수를 높여주는 강력한 수요로 기능한다. 모두가 재미있어하니 통제할 수도 없고,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선을 넘다 보니, 선은 희미해졌고 다음은 누가 더 자극적이냐만 남는다. 결과는 중심의 실종이고 기준의 상실이다. 서로 비판할 수도, 스스로 반성할 수도 없게 된 상황이 지금의 정확한 모습이다. 치과계 역시 시대정신의 위태로운 소용돌이에 들어와
2024년 8월 도입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시행 초기의 기대와 달리, 현재 사용자와 고용인 모두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 제도는 저출산 해소와 해외 인력 수급의 대안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실효성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용자들은 일반 가정에서 일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구하기조차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으며, 도우미 역시 낮은 임금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명분은 맞벌이 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 저출산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기대는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하겠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안착하지 못하면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지금에야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처우 개선과 다양한 지원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 인력을 선택했다. 농어업과 건설, 서비스 분야뿐 아니라 돌봄 영역까지 외국인 저임금 노동자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 22만명이던 가사·육아도우미 수는 2023년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약 1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그중 95% 이상이 50대 이상이다. 반
어느 한 날(一) 저녁(夕)에 비수(匕)가 날아들어 죽듯이(死), 의료사고는 예고하지 않고 순식간에 찾아온다. 작년 여름이었다. 80대의 처이모부 상악구치 크라운을 세팅 중이었다. 평소 달력에 써놓는 자가훈계가 ‘삼·떨·미(환자가 삼키고, 기구 떨어뜨리고, 미끄러짐 주의)’인데, 그날따라 교만했는지 늘 하듯 물 적신 솜으로 목구멍을 막지 않고 45도 눕힌 상태에서 시적 중이었다. 실수로 크라운을 떨어뜨렸는데, 바로 기도로 들어갔다. 환자 안색이 급변하고 학학거렸다. 자세를 바로 세우고 등을 쳤으나 무위였다. 안아 일으켜 세워서 뒤에서 끌어 앉고 두 손으로 명치 아래를 세게 압박했다(하이덴 헬렌버그 포지션). 7~8차례 시도 끝에 나왔다. 식은땀이 났다. 개원 이래 의료사고(의료분쟁)에 관심이 많았다. 스스로 대소 사고를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치과 건물 재건축으로 향후 진로를 모색 중에 치과신문에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감정위원 채용 응시광고를 발견했다. 이제 선수보다는 도우미 역할이 기질에 맞아서 관련 공부를 하고 국회의원, 변호사 등 주변 지인들에게 알아봤다. 기대하는 답은 없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현직 감정위원(치과)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자주 쓰인다. 특히 우리 한국인은 타인의 일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이 옳다고 믿는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굳이 고치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원래 ‘오지랖’이란 웃옷이나 윗도리의 앞자락을 뜻하는 단어다. 겉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덮는 것처럼, 굳이 간섭할 필요 없는 일에 주제넘게 참견하는 태도를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말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오지랖이 넓다는 건 남을 감싸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물론 배려심이 크다는 것은 미덕이다. 다만 그 배려가 지나쳐 상대에게 부담이 되거나 불편하게 만들 때 이를 경계하는 의미로 ‘오지랖’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요즘 우리 치과계는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좁아서 문제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면 무관심한 태도가 만연해 있다. 마찬가지로 치과계에서도 공동의 문제에 외면하거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더 아이러니한 것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공부를 한다.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화날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깜빡이도 안 넣고 갑자기 끼어든 옆 차 때문에 운전 중 화들짝 놀란다. 연관성도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불평을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줘야 한다. 때로는 기한을 넘긴 고지서를 발견하고 연체료를 물 생각에 자책하곤한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꽤 많은 교육을 받고, 나이가 들어 무수한 사회경험을 하며 살아왔지만, 순간순간마다 일어나는 우연한사건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기는 녹록지 않다. ‘일체유심조’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단다. 세속에 속한 인간인지라 마음을 조절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베트남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팃낫한은 ‘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같은 긍정적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좌절,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소위 화를 다스리는 ‘스트레스 관리법’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좋아하는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