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고마운 비가 내리고 있다. 전국이 산불로 여러 날 고생하고 있었는데 한 번에 모두 정리해 주니 고마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근래 산불만 아니라 좋은 뉴스가 거의 없고 부정적인 내용뿐이었다.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 사건까지 발생하였고 정치인들은 변함없이 싸운다. 신라 말 최치원이 세이암(洗耳岩)에서 세속의 비루한 말을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귀를 씻었듯이 매일 귀를 씻고 싶은 심정이다.
험한 뉴스로 탁해진 정서를 순화하고자 위로와 위안을 주는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잠깐이라도 세속을 떠날 수 있어 좋다. 불광스님의 시집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의 시 한 편만 보아도 세상일이 그리 대단한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냥 그런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려고 애쓰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애쓰고
불편한 것을 못 참아 애쓰고 살지만
때로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또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사는 것이 참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애써 더 많이 더 좋게를
찾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없이 살고, 부족하게 살고,
불편하게 사는 것이 미덕입니다.
자꾸만 꽉 채우고 살려고 하지 말고
반쯤 비운 채로 살아볼 수도
있어야겠습니다.
온전히 텅 비울 수 없다면
그저 어느 정도 비워진 여백을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꾸 채우려고 하니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을
못 느껴 봐서 그렇지
없이 살고, 부족한 대로,
불편한 대로 살면
그 속에 더 큰 행복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처럼 살 수 있다면 몸은 비록 속세에 있어도 마음은 거미줄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세속에 엮이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게다. 애써 행복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의 바다가 고요하고 평화로워 그 자체가 행복이다. 부족한 것을 수용하고 채우려 노력하지 않으니 이미 그 마음은 욕심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고통받는 일은 없다. 일부러 애써 비우려는 노력도 욕심이기에 굳이 모두를 비우려고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옛 선지식들은 이런 것을 한마디로 ‘중도中道’라 하였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아서 무난하고 무리하지 않기에 중도다. 인위적으로 채우려고도 비우려고도 하지 않으면 욕심을 벗어나니 인연 따라 주어진 것을 수용하게 된다. 욕심 없이 수용하면 자연과 동화되고 일부가 되어 평화로워진다. 들판에 핀 꽃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햇살을 받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스스로 환경을 선택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기에 자연이라 부른다. 주어진 환경을 욕심 없이 수용하면 들꽃처럼 자연의 일부가 된다.
욕심이 없어지면 화를 낼 일도 없다. 화를 내지 않으면 마음의 바다에 폭풍이 칠 일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화(성냄)가 올라온다.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여 화가 나는 것도 결국은 존중받거나 대접받고자 하는 욕심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성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스스로 분을 못 이겨서 고통받거나 화를 누르려고 마음이 지치는 일도 없다. 분노를 억누르며 화를 참으면 스트레스가 되어 자신의 몸을 공격하여 스스로 아파지는 신체화 증상이 나타난다. 턱관절 환자 중에도 적지 않은 케이스에서 신체화 증상을 본다.
욕심이든 화든 채우지 못하여 밖으로 표출되면 폭력이나 짜증 혹은 성냄으로 나타나고, 내면으로 들어가면 마음의 평화를 깨고 결국엔 우울이 된다. 우울은 다시 몸에 영향을 주어 신체화 증상을 유발시키며 악순환을 하게 된다. 최근 우울이 뇌졸중을 유발시키는 인자라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 최근 마음이 몸과 연관되어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모든 병의 중심에 스트레스가 차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시처럼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살 수 있다면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