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후에 대학생들 술자리의 대화가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인터넷기사와 대선에서 진 이유가 노인 투표 때문이라서 그 책임을 물어 지하철에 있는 경로석을 폐지해야 한다는 일부 젊은 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이러한 생각이나 행동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으나 간단하게 단순화시키면, 이기고 지는 흑백의 논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닌 다양한 견해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거는 이기고 지고의 형태로 결론지어진다.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찍을 수 있는 선택의 다양성은 배제된다. 따라서 선거 후에 승리 아닌 승리에 대한 해석오류로 인해 승리자들이 매번 실수를 범한다. 이에 필자는 선거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흑백논리에 대한 불만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선택권의 제한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A 혹은 B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A에 대한 선택의 이유가 너무도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결론은 단순하게 A를 좋아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A를 좋아한 선택이 최선일 것이지만 그 외에도 B가 싫어서, A가 싫지 않아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으나 흑백의 논리는 그것을 ‘좋아서’라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효과를 지닌다
과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모습이나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고 희망마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살리고자 자신의 목숨마저 희생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을 떠나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살던 보릿고개 시절의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어머니들은 한결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아이를 부잣집으로 양자를 보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아이를 기르기 어려운 엄마들은 아이를 부잣집 문 앞에 놓고 가거나 입양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근대까지도 미혼모와 같이 아이를 기르기에 경제적이나 상황적으로 어려울 때에도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모성애와 사랑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발생하는 사건들은 너무도 상식 밖의 일들이어서 차마 입에 담기에도 불편한 내용들이 많다. 얼마 전 다섯 살 된 아이를 친엄마가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일은 이 시대를 같이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유가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엄마는 자기처럼 힘들고 구질구질하게 아이도 살아갈 것이 싫
‘워킹맘’이란 직장을 다니며, 가정에서는 엄마의 역할을 해야 하는 여성을 말한다. 유독 치과는 워킹 우먼이 많은 직종 중의 하나다. 특히 원장이 여성인 경우에는 직장 내 모든 구성원이 여성인 경우도 있다. 혹은 남성 원장 한 명에 모든 직원이 모든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워킹 우먼이란 말 속에 워킹맘도 포함은 되지만 엄밀하게 워킹맘이란 표현 속에는 직장노동은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가사노동이 중과됨을 포함한다. 따라서 요즘과 같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는 워킹맘들의 마음고생이 더욱 증가될 수밖에 없고 이런 스트레스의 증가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거나 신경질, 충동구매 등의 이상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이런 반응이 다시 아이들에게 반영돼 아이들의 정서와 정신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워킹맘들의 아이들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본인의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녹초가 된 경우에는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 따라서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잠깐을 같이 하더라도 짜증과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이들을 부모님 집에 의탁하고 주말에만 만나는 형태는 아이들과 같이 해주지 못한 미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부정교합으로 상담을 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이 몰래 조그만 소리로 아이에게 몇 살인지 절대로 물어보지도 말고 말도 꺼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어머니에게 이유를 물으니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비해 키가 작은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원인이 6개월 학교를 빨리 입학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원망한다고, 절대로 나이나 학년 혹은 키에 대해 묻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이에 필자도 조심스럽게 아이와 엄마를 관찰했다. 엄마는 소심하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갓난아기 대하듯 조심히 대한다. 아이 또한 행동이나 대화법이 그 정도 수준이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아이의 행동이나 사고가 어린 시절 한 순간에서 멈춘 것이다.아이의 자율성이 엄마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성장하지 못하고 잘못된 상태로 고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이나 과잉보호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다.자신이 살아왔던 어린 시절에 대한 대리 만족이나 싫었던 환경에 대한 반발, 혹은 측은지심일 수도 있다. 며칠 전 3살 된 아이를 엄마가 살해해 가방에 넣어서 저수지에 버린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그 엄마는 아이
얼마 전 대학원에서 심리학 강의를 듣는 중에 세대 간의 생각의 차이를 논의하게 됐다. 20대 중반의 한 여학생이 집에 강아지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이 벅차오르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거렸다. 반면 50대 초반인 필자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에 어떠한 감동도 감정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것이 30년간의 우리 사회의 세대차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수업이 마무리됐다. 물론 필자가 50대의 대표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필자 세대는 적어도 형제가 4~5명이였다. 개발도상국 시절을 지나오며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초등학교에서는 혼식, 분식 장려운동을 해서 하얀 쌀밥을 도시락으로 가져가면 엉덩이에 매를 맞던 시절이었다. 선생님들이 잘못을 행하는 아이에게도 매를 들지 못하는 지금의 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니 어찌 30년간의 세대 간에 이해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필자는 아직도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에 감정의 움직임이 없다.반면 동물 보호가이신 대학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을 땐 감정의 움직임이 있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예쁘신 선생님이시다. 그분은 동물에게 애정을 지니고 동물보호운동에 참여하며, 따라서 동물가죽으로 만든 옷이
요즘 치과의사 모임에 가면 수원 사건 이후부터 Black comsumer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다수의 치과의사가 한 두 번쯤 경험이 있거나 진행 중에 있었다. 더불어 각자의 경험은 다양했다. 스케일링하고 나서 이가 깨졌다는 등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일로 우기는 흔한 경우는 물론, 자신의 불만을 벽보에 써서 동네에 붙이는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국세청에 고발한다고 돈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치과의 불평 고객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별다른 의도 없이 예민한 환자다. 이들에게는 자세한 설명과 세심한 배려로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다. 두 번째가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 BC)이다. 세 번째가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다. 따라서 불만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어느 유형인가에 따라서 그 대응 방법도 달라져야 할게다. 우선 경영학에 의하면 BC는 구매한 상품의 하자를 문제 삼아 기업을 상대로 과도한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거나 거짓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을 말한다. 상품을 구입해 한 동안 사용한 후 상품의 하자를 주장하며 제품교환 또는 환불을 요구하는 유형에서부터 상품으로 인한 근거 없는 신체적·정신적
두 단어의 공통점은 영화제목이라는 것이다. ‘라푼젤’은 2009년에 디즈니사에서 만든 만화영화이고 ‘프레셔스’는 2010년에 미국에서 만든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이다. 라푼젤의 신분은 18세의 꿈 많은 예쁜 공주이고, 프레셔스의 신분은 딸 둘을 낳은 16세의 몹시 뚱뚱하고 못생긴 불행한 미국 슬럼가의 흑인 여자아이다. 이 두 영화는 볼수록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특히 삶이 힘들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이 들거나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다면 볼만한 영화들이다. 라푼젤은 한 생명의 꽃을 기르는 여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어느 날 그 나라 왕비가 병이 들고 왕비는 그 꽃을 강탈한 뒤 병이 나아 공주를 출산한다. 꽃을 빼앗긴 여인은 노파가 되었으며, 젊음을 다시 찾기 위하여 공주를 납치하고는 숲속의 성에 가두고 딸로 키운다. 가짜엄마의 욕심으로 인해 과잉보호 아래 자라온 공주인 라푼젤은 세상은 무섭고 위험한 곳이라는 세뇌 속에 탑 안에 갇혀 18년 동안이나 바깥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온 왕자가 아닌 도둑 신분의 남자를 따라 탑을 탈출하고 자신의 진정한 신분인 공주를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즉, 허구로 무장된 마음
인터넷 동영상, 공중파 방송에서 치과의사 폭행사건이 다뤄진 한주가 지났다. 같은 치과의사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서 동영상을 접하는 순간 뭐라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심리적인 변화를 느꼈다.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하는 마음과 그래도 심하다는 마음과 더불어 20여년 환자에게 상처받는 필자의 과거 기억이 오버랩핑돼 약간의 카타르시스 같은 느낌마저 있는 것에 놀랐다. 물론 30대 선생님으로서 참기 어려울 만한 모욕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먼저 환자를 접해 왔던 선배로서 필자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폭력은 사회적으로 금하는 불법이다. 불법이기에 이유가 무엇이든 행동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이런 문제가 발생될 수 있기에 필자가 그 동안 ‘의사나 치과의사들이 심리적으로 보호 받아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2년여 심리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었기에 필자의 마음은 더욱 안타깝다. 사실 필자가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계기 또한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이지 위 사건의 선생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심리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던 어느 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날이 있었다. 그리고 정신적 상
상악 중절치를 야구공에 맞은 5학년 남자아이가 내원하였으나 큰 문제가 없어 관찰하기로 하고 돌려보냈다. 재진 때 어떤지 물어보니 이상 없다고 하였다. 다른 치료를 하고 나간 5분 뒤에 실장이 들어와서 다친 곳을 보아주었냐고 엄마가 묻는다고 했다. 이에 필자가 대기실로 가보니 엄마 옆에 아이가 있고 엄마가 재차 물어보아서, 진료 시에 아이에게 물어보았고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는 동안 아이는 아무 반응도 답변도 없었다. 무응답의 아이도 이상했지만 이상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엄마도 이상했다. ‘아랑사또전’이라는 TV드라마가 끝났다. 전설로 전해오던 아랑귀신 이야기를 현대적 시각으로 다시 조명한 내용으로 ‘아랑’이란 귀신이 부임사또 앞에 나타나서는 자기의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하려 하지만 귀신을 본 사또들은 기절하고 바로 죽었는데 한 사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극에서는 아랑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모습이 나온다. 또 사또는 정의를 위하여 악마에 지배당하는 어머니를 죽인다는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아랑은 사랑을 위하여 희생을 하고 사또는 정의를 위하여
요즘 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힐링’이라 할 수 있다. 힐링이란, 영어로 ‘healing’이며 사전적 의미는 ‘몸과 마음의 치유’이다. 특히 의학에서 질병이 치유되며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힐링의 전제 조건으로는 상처를 받거나 질환에 이환돼있어야 한다. 결국 이 시대에는 힐링이 절실할 만큼 상처받고 지치고 아픈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학에서 힐링되어 가는 과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원상태로 회복되는(reversible) 과정과 원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irreversible) 과정이다. 즉, 감기나 복통 등은 치유되면 원상태로 회복되지만 깊은 상처나 암절제수술 등은 원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그에 따른 상흔(Scar)을 남긴다. 그리고 마음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두 가지의 힐링 과정이 있다. 심하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금방 잊혀지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는 상흔(Scar)을 남긴다. 더불어 상처가 조금의 자극에도 심하게 고통스럽듯이 마음의 상처도 약간의 자극에도 깊은 아픔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은 지속적인 자극에 적응하지만
요즘 운전을 하다보면 달리는 차 옆으로 굉음을 내며 종횡무진 무법으로 질주하는 폭주족을 많이 본다. 어제도 퇴근길에 3~4명의 청소년이 헬멧도 쓰지 않고 굉음을 내며 위태롭게, 뒷좌석에는 여자를 전리품처럼 보란 듯이 태우고 자랑스럽게 달리는 것을 봤다. 가끔 서울 근교 국도를 가다보면 40~60대 정도의 중노년 층 10여명이 가죽옷을 입고 할리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한다. 필자가 아는 회장님 중에도 몇 분이 휴일이면 할리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선다고 하신다. 이렇듯 오토바이를 타는 나이는 대략 10대와 40~60대의 장·노년기,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장·노년층은 가죽옷을 입으면 폼도 나고 젊어진 느낌에 속도를 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한다. 10대들은 또 조금 다르다. 얼마 전 어떤 방송에서 폭주족 뒤에 탄 여자아이와 인터뷰를 하였다. 그 여자아이는 자신이 원조교제로 돈을 벌어서 폭주족인 남자친구에게 바이크를 사주었고 그의 등 뒤에서 달릴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서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렇듯이 장년층은 본인의 스트레스라든가 내부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원인인 반면, 10대 청소년들은 내부적인 갈등보다는
천국은 예쁜 사람, 행복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열심히 일한 개미는 손도 꺼칠하고 투박하고 굳은살이 박히고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새까맣고 자외선에 노출되어 나이에 비해 더욱 늙어 보이고 광택 또한 없다. 또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어 웃을 일이 적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개미는 정서적 스트레스에 잠을 못 잔다. 반면 놀고먹는 베짱이는 햇볕에서 일을 안 하니 얼굴이 곱고 동안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지 않으니 정신적 스트레스도 없다. 결국 천국의 컨셉에서 보면 열심히 노동한 개미는 맞지 않고 베짱이의 얼굴이 맞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는 아마도 베짱이가 천국에 갈 것이다. 4살짜리를 강간한 성추행범에게는 최고형을 15년 밖에 못주는데 잠재적 성범죄자를 가려내기 위한 법은 구직을 원하는 모든 의료인을 경찰서에 보낸다. 그냥 간단하게 성추행자를 면허정지 시키면 될 것을 모든 의료인을 잠정적 범죄자로 본다. 결국 개미는 천국에 못가고 베짱이가 천국에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금만 생각해보자. 강간범을 처벌하는 법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는데 아직도 수정하거나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과거 60~70년대 법이다.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요즘 대선 탓에 정치인들의 모습을 자주 TV에서 대한다.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거짓말’이다. ‘인간은 10분에 3번 거짓말을 한다’는 책도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말을 하는 이상 뗄 수 없는 현상인가 보다. 여기에 또 ‘하얀 거짓말’이라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포함시키면 하루에 1~2번의 거짓말도 안하고 지나기 힘들 듯 싶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끊임없이 만나는 사회 속에서 거짓말이라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남에게 못되게 하는 거짓말은 ‘사기’라는 범죄행위가 될 것이다. 아마도 치열한 무한경쟁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경쟁의 한 형태로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은 존재할 것이다. 지난 일요일 모처럼 큰맘 먹고 등산복을 입고 삼각산을 찾았다.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것인 줄은 잘 알고 있지만 좀처럼 하기 싫은 것이, 아니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이 지속적인 운동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30년째 운동하시는 어머니께서도 정말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운동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피곤할 때 운동을 선택하기보다는 누워서 쉬면서 TV 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삼각산은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서울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
모 방송사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남자가 여자 분장을 하고 상품 판매 매장에 가서는 말도 되지 않는 생트집, 즉 일명 ‘진상’ 행동을 하는, 백화점이라든지 화장품 매장 등 사회 많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풍자한 코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그 내용 중에 진상녀인 정여사는 강아지 인형을 하나 가지고 다닌다. 그 인형의 이름이 ‘브라우니’다. 정여사는 본인이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브라우니를 내밀며 “브라우니 물어!”하고 외친다. 그러면 나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고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그런 역할의 브라우니 인형이 지금 인기 연예인 만큼이나 유명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말도 못하는 소품 중의 하나인 강아지 인형이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며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절박하고도 외로운 마음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브라우니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잘못 속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는 절대적인 믿음자이고,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 또한 말을 하지 않는다. 더불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해준다. 생각하지 않는다. 전에 어떤 유명한 원로배우의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란 대사가 유명해진
평소 통증에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던 30대 여성 환자가 3달 만에 내원해서는 치료가 끝나고 나자 “내가 예민한데 아프지 않을까요? 교정치료를 시작하고부터 소화가 되지 않아서 위궤양이 생겼어요, 치료받고 그 동안 많이 아팠는데 또 아프면 어떡하죠? 혀가 안으로 밀리는 느낌이고 혀의 놓임이 불편해요”라고 말을 시작하더니 끊임없이 불편과 불만을 쏟아낸다. 이야기를 들으며 말 속의 내용들과 진위를 생각해 보았다. 일단 만약에 치료를 받고 계속 아팠다면 3달 만에 내원하지 않고 더 빨리 내원했을 것이기에 항상 존재하는 통증은 아니고 어떤 상황에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정치료를 하고부터 소화가 되지 않고 위궤양이 생겼다는 것은 교정치료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미이고, 단순히 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그동안 받고 있던 스트레스가 교정치료를 통해 추가되며 폭발되어 고통의 레벨까지 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구치부에 크라운을 하나 해주었는데 끊임없이 높다고 느껴 계속 교합 조정을 하고, 심지어는 교합이 닿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높다고 호소하는 환자들과 비슷한 상황이다. 뭉쳐있던 스트레스와 불만 등이 치과치료라는 불안과 합류하면서 심리적 돌파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