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수행 KTX에 몸을 실었다. 요즘 화요일이면 전북대치전원 학생지도를 위하여 전주에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반찬을 이것저것 준비하여 배낭가방을 꾸릴 땐 초등학생이 소풍을 가듯이 마음이 설렌다. 어려서 살던 이태원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택시로 용산역을 가는 길의 풍경은 초중고 시절과 모습이 변하지 않아서 좋다. 용산은 미군부대의 영향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오산중학교를 지날 때면 중학교 2학년시절 수업시간에 창밖을 내다보면 잠수교 공사가 진행되던 일이 기억난다. 또 친구들과 무슨 다리가 수면에 저렇게 가까울까하고 이야기하던 일도 생각난다. 용산역에 도착하면 카페라테 한잔을 사들고 기차에 올라 좌석에 앉으면 여행의 설렘과 2시간 10분이라는 나만의 시간이라는 여유가 행복을 준다. 기차에서 제공되는 종이신문을 보면 웬일인지 반갑다. 인터넷으로만 검색하다보니 종이신문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 탓일 것이다. 신문을 보고 가져간 책을 잠깐보다 시장기가 돌면 12시가 조금 지난다. 아침에 준비해온 보온병과 도시락을 열어서 반찬을 테이블 위에 배열시키면 꽉 찬 테이블이 마치 한정식집의 한상차림과 같이 뿌듯함을 준다. 점심을 마치고
요즘 출근하면 제일 먼저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 놓는다. 그리고는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듣는다. 하루 종일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일주일이 넘도록 너무 오랫동안 상처받은 마음들을 회복시켜줄 방법은 생각하다 찾은 것이 비발디의 사계였다. 그리고 필자를 위해서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같이 마신다. 더불어 심적으로 화가 올라올 때에 먹으려고 항상 가득히 비치해 놓은 냉동실 속의 초콜릿도 먹는다. 감정 조절을 위하여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현대 철학자 가다머에 의하면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고 하였다. 따라서 요즘은 농담도 하기 싫은 마음이라서 가급적이면 언어의 표현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가라앉고 침잠하려는 마음을 복원시키려고 노력한다.한국 사람의 피 속에는 융이 이야기하던 민족적 집단의 원형인 강력한 공통 심리가 있다. 필자는 그것이 한(恨)이라고 생각한다. 반만년을 유지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정서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의 충격은 또 한스러운 사건으로 한민족의 공통적인 한이라는 공감대를 자극하고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
살다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치과에서는 환자가 물만 마셨는데 교정용 장치가 떨어지고, 세상에서는 하루 노역이 5억원인 황제 노역이 2010년 법원에서 발생했다. 제주도의 거꾸로 올라가는 도로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포함하면 너무나도 많으니 자연현상은 제외하고 사람과 연관된 일만 생각해도 많다. 사람이 연관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은 어떤 사건이 누군가를 거치면서, 무슨 사연인가에 의하여,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발생한다. 그런 경우,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킨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하지만 종종 선과 악을 구별하기에 매우 애매한 경우가 발생한다. 1960년대에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틀러가 내린 유대인 학살의 명령을 각종 ‘탁월한’ 방식으로 이행한 최대 전범이었다. 이 때 유대인으로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한 유명한 여성 현대철학자인 한나 아랜트는 세계 최고의 악인을 보기 위하여 모든 일을 뒤로하고 이스라엘 법정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에서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고는 ‘예루살렘에서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집필하였다. 그녀는 그 책에서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는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였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지상으로 나와야하는 어린 새싹의 숙명적인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중·고등학교 현장에서도 3,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한다. 이 시기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환경이 바뀌는 때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청소년 사춘기의 심리적인 특징과 맞물려서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학교 내부에서는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시기다. 학생간의 싸움도 가장 많고 학교를 오지 않는 아이도 가장 많다. 심지어는 학교를 포기하는 아이들도 발생한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는 포기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결정이지만 말이다.그런데 이들에게서 보이는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있다. 신기하게도 5월 5일 어린이날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분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2개월 정도의 기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고 본다. 하지만 청소년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3, 4월의 혼란을 아이들이 환경 변화에 대한 부적응기간이라고 보는 것은 과거의 시각이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절대 권위가 존중받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수도이자 도하에 생긴 방송국이다. 1996년에 생긴이름도 없는 아주 작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한 지역 케이블 방송국 정도였다. 그랬던 방송국이 지금은 중동의 CNN이라고 불린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며 비행기의 테러로 무너졌다. 그리고 미국은 배후로 알카에다를 주목하고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전쟁을 시작하였으나 중동에서의 취재가 쉽지 않았다. 그런 시점에서 오사마빈 라덴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인터뷰를 알자지라 방송에서 하면서 세계적인 방송으로 떠올랐다. 이라크전쟁 당시 미국방송을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방송들은 알자지라 방송으로부터 자료를 받아서 발표할 뿐이었다. 중동 뉴스의 모든 통로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반미적 특성으로 대다수 중동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았다.그런 알자지라 방송에서 한국의 자살을 다루었다. 알자지라 더 스트림은 한국과 미국 등의 전문가를 연결하여 40여분 정도 집중적인 기획보도를 진행,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높은 자살률에 대한 원인과 대안 등을 모색하였다. 알자지라는 3가지 정도를 핵심 사항으로 분석하였다. 첫째는 한국의 젊은이들 중 절반이 자살을 생
네덜란드의 한 교과서에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된 모범 사례 국가로 실렸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랐다. 그러나 네티즌의 댓글은 다양하다. 좋다는 글도 있었지만 선진국인데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고 팍팍하냐는 이야기도 많이 보였다.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공과금만 남겨 놓고 자살한 세모녀 사건 등과 같이 일반적인 서민들의 경제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특히 중산층이 붕괴되었다는 지금의 한국 현실은 네티즌이 선진국이란 단어를 공감할 만큼 녹록하지 않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데 선진국이란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를 생각해본다. 선진국이란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다. 국민소득이 대표적인 지표가 된다. 대략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에서 4만불 이상인 국가들이다.2013년 한국은 2만6,000불이었다. 아직 3만불에는 못 미치지만 잠재성장을 감안하여 나온 이야기이다. 또 정부에서는 4만불을 목표로 매진한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1인당 2만6,000불을 4인 가족으로 계산하면 한가족당 10만불 즉 1억 정도이다. 한 가족이 한 달에 1,0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의미한다. 그 정도라면
오랜만에 둘째 누님이 구강검진을 위하여 치과에 내원하셨다. 그리고 의사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이해시켜달라고 하셨다. 동생이 치과의사라서 의료계의 소식에 관심이 많은 누님께서 의사파업의 이유를 모르신다니 대부분의 국민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치과에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원격진료와 영리법인이 지닌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원격진료는 대면진료의 반대적 의미이다. 대면진료는 사람이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즉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지식과 기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영혼을 지닌 사람(의사)이 신체나 마음에 질환을 지닌 사람(환자)을 치료하는 것이다. 치료에는 의사와 환자사이에 인간적인 신뢰와 라포 형성과 같은 정서적인 부분이 의료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원격진료는 인간이 영혼을 지닌 사람이란 부분을 무시하고 오로지 암, 당뇨 같은 질환만을 기계적으로 보고 마치 자동차를 고치듯이 치료를 생각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철저한 유물론적인 개념으로 의료에서 휴머니즘을 제외시키는 정말 극악무도한 개념이다. 결국 원격진료를 원하는
우리 치과 건물의 1층에는 얼마 전까지 꽃집이 두 곳 있었다. 한 집은 생긴지 7년 정도 되었으나 허름한 집이었고 새로이 생긴 집은 2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집은 깔끔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하였다. 그러던 중 한 달 전에 허름한 꽃집이 개인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며칠 전이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 남아있는 꽃집 유리창에 A4용지 크기의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화분에 휴지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문구였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버리면 CCTV를 공개하겠다는 내용도 첨가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CCTV 화면을 출력해 50대 아주머니가 화분에 휴지를 버리는 장면을 유리창에 붙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또 다른 메모장이 유리창에 붙었다. ‘가져가신 화분 비용을 지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문구였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밖에 내어 놓은 화분을 집어간 모양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흔히 있을 수 있는 듯 하지만 허름한 꽃집이 문을 닫기 전의 상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허름한 꽃집은 개업하고 있는 동안 내내 상가 앞에 새로 나온 꽃이랑 화분들을 내어놓고 방치하였다. 물론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혹시 누가 집어가면 어쩌
새벽까지 소치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을 본 사람들이라면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심판들의 점수 채점은 정당성을 의심받았고 수많은 의혹과 불신을 유발시키며 그녀는 은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17살 선수는 기량에 의심을 받으며 금메달을 받았다. 일련의 사건을 표면적으로 보면 은메달을 받은 김연아 선수가 억울한 피해자이고 금메달을 받은 러시아 선수가 행운아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우선 김연아 선수를 생각해보자. 김연아 선수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이다. 그녀의 기량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의미는 2연패라는 것 외에는 금메달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의미 그 이상 도 아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불공정 판정 시비에 엮이게 되어 더욱 유명해지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극단적으로 보았다.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게 하였다. 게다가 억울함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던 모습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며 더욱 감동을 주었다. 마치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하는 박지성 선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연아 선수는 금메달 이상
빅토르 안과 손기정 옹의 공통점은 한국인이지만 외국 국적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 인물이다. 두 사람의 차이라면 손기정 옹은 타의에 의하여 국적을 상실하였으나 빅토르 안은 자의에 의하여 국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빅토르 안과 유승준은 자의에 의하여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다. 그런데 빅토르 안의 국적상실은 유승준과는 많이 다르다. 빅토르 안은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반면 유승준은 국민정서에 반하여 있다. 그럼 이 세 사람을 보는 국민들의 정서가 다른 이유를 살펴보자. 빅토르 안의 한국 이름은 안현수이다. 벤쿠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많은 불합리성과 불운을 겪으면서 본인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국적을 바꾸며 러시아로 귀화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고 한국빙상연맹이 잘못했음을 소치올림픽에서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한 신문에서는 ‘빅토르 안이 러시아 국기를 달고 금메달을 딴 것은 마이클 조단이 쿠바 국기를 달고 경기하여 우승한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소치에서 비록 러시아 국기를 달고 우승하였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그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냈다. 그 이유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모여서 하나의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가장 쉬운 이치이다. ‘세상’이란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서 한자어로는 世上이라고 하여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世相이라는 한자어로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풍습 따위에서 보이는 세상의 상태나 형편’이라고 한다.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로 일명 세태라고도 하기도 한다. 필자는 한마디로 ‘다양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世上에 나타나는 일들이 世相이니 결국 세상은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 여름날에 들에 핀 수많은 들꽃을 보면 이름 모를 꽃들까지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가. 그런데 만약 한 종류의 꽃만으로 다 이루어져있다면 한 순간은 아름답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싫증나고 지루해진다. 결국 다양성이 다양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세상이 그러하듯이 사람도 다양하다. 지구 위에 어느 사람 한명도 똑같은 이가 없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외모적으로는 유사할 수 있으나 성격까지 비슷하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인간의 다양성 중에서 개개인의 성격의 다양성을 개성이
요즘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과 행보를 보면 예사롭지 않다. 정상에서 많이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독단적인 행태를 달린다. 심지어 일본 주미대사가 한 연설에서 미국에게 중국과 일본 중 양자택일을 하라는 막말까지 던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동해 표기를 일본해와 병기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미국의 어떤 주지사에게 법안을 승인하면 일본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협박 편지를 보내 외교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뒤에는 극우세력인 아베가 있다. 그럼 왜 한 동안 가장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일본이 요즘 세계의 ‘꼴통’으로 되어가는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국가의 운영도 개개 사람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기에 사람의 심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일단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던 때는 일본이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롭던 때였다. 반면 일본이 최근과 같은 안하무인적인 극단적 우익의 모습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던 때부터 시작하여 급기야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부터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해결방안이 없다보니 급기야는 두 가지 방법을 택하였다.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하여 소문을 막고 한편으로는 과거 우리나라 독재정권도 많이 사용하던 방법으로 국민의 생각을 다른
이스라엘 통곡의 벽이 유명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면 그 벽이 왜 유명하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왜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기도를 드리며 통곡하는지를 모른다. 그 벽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벽으로 아주 오래된 벽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다. 솔로몬왕은 예루살렘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으나 후에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고 헤로데스왕이 예수그리스도 시대에 재건하였다. 그런데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런 비극을 지켜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에서 유래되어 지금도 유대교의 성지인 것이다. 한편 이곳은 유대교의 성지이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이슬람 성지이기도하다. 서로 융화될 수 없는 종교의 성지여서 통곡의 벽은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류에 사랑과 구원을 전하는 세계 종교의 성지가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의 상징이기도 한 모순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이제는 ‘통곡의 벽’이 유명하다. 88올림픽 때의 공식 노래인 ‘손에 손잡고’에서 그 다음 가사가 ‘벽을 넘어서’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분쟁의 벽을 넘으라는 의미였다. 여기서 말하는 벽의 의미는 건축물의 벽
그동안 남녀 간의 차이는 수없이 이야기되어 왔다. 심지어 남녀 간의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한마디로 정리한 제목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미국 펜실베니아의 Verma는 해부학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뇌구조가 다르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즉, 여자의 뇌는 좌·우측 뇌가 소통을 하여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반면 남자는 좌·우측 뇌가 소통하지 않아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자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아이들 일에 참견을 할 수 있는 반면 남자들은 신문을 읽으면 아내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런 해부학적인 차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심리학에서는 남녀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론들이 있다.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여기에는 부모투자이론과 친자관계 가능성 이론이 있다. 부모투자이론은 여자가 남자에 비하여 부모로서의 투자를 많이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즉 여자는 임신을 통하여 자신이 낳을 수 있는 자식이 제한되는 반면 남자는 그렇지 않기
요즘 10~20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50대인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청소년을 이해하고자 청소년지도학을 석사 전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대부분의 부모들이 겪고 있는 큰 가슴앓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 10~20대 청소년들의 부모는 대개 40~50대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을 감수하고라도 해결하고 완수해야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의식이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급기야는 기러기 아빠라는 극단적인 비정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만들어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마도 지금의 10~20대의 청소년들이 성년이 되어서는 결코 기러기 아빠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게다. 그들은 40~50대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의 우선순위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공부라는 결과를 위해 가족이 떨어져 사는 어려움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라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공부라는 결과보다는 같이 살 때의 가정의 행복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일과 쉬운 일이 그들에게는 반대적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상반된 가치관의 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