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안 행사로 모두 모인 자리에서 둘째 놈에게 20여 년간 궁금했던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렸을 때 장난감 가게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형이 고른 똑같은 장난감을 고르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다른 장난감을 고르면 서로 바꿔가며 놀 수 있어 경제적일 것 같은데 둘째 놈은 이상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그때 우리 부부의 결론은 소심한 성격 탓으로 돌리고 사 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답을 듣기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형이 산 장난감은 당연히 형 것이고 자기가 다른 것을 고른다면 그것마저도 몇 시간 뒤면 형의 차지가 되기에 안전하게 같은 것을 골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면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친구 부부와 스페인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유럽이 처음이었던 친구는 가는 곳마다 감동의 연속이었다. “유럽 사람들이 이런 왕궁을 지을 때 우리 선조들은 뭘 했을까? 왜 우리는 거대한 석조 건물로 지을 생각을 못 했을까? 그렇게 했다면 지금쯤 관광 수입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그들에 대한 부러움, 조상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 토로하고 있는 친구에게 우리의 궁궐 건축은 주위의 경치를 끌어들이는 차경문화에 있다는 등, 내 짧은 지식으로는 그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얼마 후 친구가 서울대학교 도서관장을 지내고 ‘우리 역사 바로 알기’ 강연으로 유명한 허성도 교수의 글을 읽고 그런 건축물이 있기까지에는 수많은 백성의 희생이 따랐을 것이고 우리 선조 왕들이 얼마나 백성을 위하였으며 민주적으로 나라를 이끌었나를 알 수 있었다며 급변한 논조로 열변을 토한다.
그때야 나도 이탈리아 여행 때 들은 콜로세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건축물이 세워지기까지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애환은 물론, 다 완성되고 비밀 유지를 위해 그들 모두를 죽여버렸다는 얘기도 해 줄 수 있었다. 비록 교수님의 도움이 있었지만 생각하는 관점을 바꾸어 보았더니 같은 사물도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한 것이다.
사랑하는 눈으로 본다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적 답사기’를 읽다 보면 저자의 미에 대한 탁월한 심미안보다는 같은 것이라도 아름답게 보고 표현하려는 긍정적 사고가 더 부러울 때가 있다. 그의 책을 따라 답사를 해보면 들판에 버려져 있는 하찮은 돌도 역사 속 얘깃거리를 불어넣으면 훌륭한 예술품이 된다.
허성도 교수의 강연에는 조선시대 백성이 같은 시대에 살았던 유럽 사람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음에도 그것을 믿는 국민은 없고 그것이 우리 국민성인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 왔기에 스스로 칭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자신을 표현할 때, 보다 객관적 관점에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다른 의료단체들 관점에서 부러워하고 있는 우리 협회를 스스로 비관적으로 낮춰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장기적 불황, 거친 외부압박 등으로 악화되는 개원환경일지라도 우리 스스로가 패배의식, 자존감 상실을 부추길 필요는 없다.
아직은 일반 회원보다는 많은 애정과 정보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임원들을 믿고 격려해야 하고,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할 정부나 헌재에 우리의 진솔한 향기를 입혀 설득해야 할 시점이지, 협회장 불신임안 같은 적전 자중지란을 일으킬 때는 아니라고 본다.
관점의 위치를 긍정적 사고로 조금만 바꾸면 닦고 가꿔야 할 사랑스러운 협회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