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사람이 서 있으면 반드시 정지해야 하는 것으로 교통법규가 바뀌었다. 한번 쉬었다 출발하면 안보이던 것도 보이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물론 급한 사람이라면 더 여유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통상은 움직임이 느려지면 마음의 폭은 열린다. 운전하다가 얄밉게 끼어드는 얌체족들이 보이면 정말 끼워주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때 브레이크 한번 밟고 넣어주면 얌체족이 혜택을 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들 때문에 흐름이 막혀서 피해를 보던 뒤차들은 혜택을 받는다.
요즘 필자는 누군가 끼어들기를 원하면 넣어준다. 뒤차들의 흐름도 빨라질 것이고 끼어드는 사람이 얌체족일 수도 있지만 빨리 가야 할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 속에서 누군가 빠르게 움직이면 한걸음 속도를 늦추어 자리를 비켜준다. 그러면 바쁜 사람은 빨리 가고 필자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가끔 드라이브를 위해 2차선 국도를 달리다 보면 뒤차가 맹렬히 달려와 차 뒤에 바짝 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필자는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세우고 뒤차를 먼저 보내고 커피 한 잔이나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었다 간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였다.물론 그의 말처럼 멈추면 좋지만, 현실 속에서 종교인이 아닌 이상 완전히 멈추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때 멈추지 않고 속도만 조금 늦추어도 마음의 폭이 열린다. 걷다가 한 걸음만 늦춰가도 주변 사람이 바뀌듯이 한 걸음을 늦추는 마음을 내면 여유가 생긴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하여도 시간이 지난 뒤에 되돌아보면 자세히 기억나는 일이 드물다. 살다 보면 한 걸음을 늦출 수 없을 만큼 급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몇십 년에 한 번 있는 일이고 대부분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걸음 늦춰져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필자는 이것을 ‘차 한 잔 마실 여유’ 혹은 ‘한 걸음 늦춰가는 여유’라 부른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며 속도를 줄이면서 답답해지고 짜증이 올라올 때가 있다. 이때 한 생각 바꾸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여유가 생긴다. 커피가 좋은 것은 맛과 향도 있지만 마실 동안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술을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신다면 그렇게 많은 술이 소비될 이유가 없다. 현대인들은 잠깐이라도 멈출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때 조금씩 속도를 늦추거나 반 박자 쉬어갈 수는 있다. 반 박자만 쉬어도 숨 한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비록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모두 다르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그 여유를 위해 담배를 피우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있다면 조용한 공간에서 잠깐이라도 명상하면 가장 좋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런 장소와 시간을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마음이라면 우선 한 템포 늦추어 속도를 조금 낮추고 가능하면 반 박자 쉬기를 권한다. 그때 마음의 폭이 조금 넓어지면서 여유가 생기고 쫓기는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개인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때에는 스스로 생각과 행동의 속도를 늦춰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한다. 조금 넓어진 마음으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준다면 자신도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브레이크 한번 밟고 한걸음 늦추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위로와 위안으로 되돌아온다. 또 다른 마음의 여유도 있다.
가끔 강연 중에 환자가 치료비용을 깎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란 질문을 받는다. 이때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준다는 정도라면 된다고 말한다. 교통비와 주차비 정도라면 금액이라기보다 존중의 표시이고 마음의 여유다. 그것을 넘으면 뇌물이거나 상업적 유혹이 되어 마음의 여유를 줄이는 역효과가 나온다. 마음의 여유는 직업과 신분과 무관하다. 돈이 많고 적은 것과도 무관하다.
마음의 여유는 스스로 폭을 넓혀야 생긴다. 만약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면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