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세종의 하태헌, 이정은 변호사입니다.
병역법 제70조 제3항은 국외여행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허가기간에 귀국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25세가 되기 전에 출국한 사람은 25세가 되는 해의 1월 15일까지 병무청장의 기간연장허가 또는 국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제94조에서 위 허가를 받지 않고 정당한 사유 없이 허가된 기간 내에 귀국하지 않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이하 ‘이 사건 처벌조항’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병역법상의 국외여행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에서 장기간 불법체류 상태로 지내다가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연령을 넘어 귀국하면 어떤 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이와 같은 사안이 문제가 된 최근 대법원 판결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 관계법령
병역법
제94조(국외여행허가 의무 위반) ①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제70조제1항 또는 제3항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출국한 사람 또는 국외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제83조제2항제10호에 따른 귀국명령을 위반하여 귀국하지 아니한 사람을 포함한다)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제70조제1항 또는 제3항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출국한 사람, 국외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 또는 정당한 사유 없이 허가된 기간에 귀국하지 아니한 사람(제83조제2항제10호에 따른 귀국명령을 위반하여 귀국하지 아니한 사람을 포함한다)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70조(국외여행의 허가 및 취소) ① 병역의무자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국외여행을 하려면 병무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 25세 이상인 병역준비역, 보충역 또는 대체역으로서 소집되지 아니한 사람 2. 승선근무예비역, 보충역 또는 대체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사람 ③ 국외여행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허가기간에 귀국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25세가 되기 전에 출국한 사람은 25세가 되는 해의 1월 15일까지 병무청장의 기간연장허가 또는 국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253조(시효의 정지와 효력) ③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
■ 사실관계
피고인은 14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체류하면서 18세가 되어 병역법에 따라 병무청장으로부터 국외여행허가 및 기간연장 허가를 받아오던 중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2002. 12. 31.) 만료 15일 전까지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에서 장기간 불법체류 상태로 지냈습니다. 이후 피고인은 입영의무 등이 면제되는 연령을 넘어 41세가 되는 해인 2017. 4. 18. 귀국하였고, 결국 국외여행허가의무에 관한 병역법위반죄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피고인에 대하여 제1심은 유죄판결을 하면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피고인의 최종 국외여행허가기간 만료일인 2002. 12. 31.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되므로, 재판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그 범죄 혐의자의 도피 등으로 인하여 검사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 또는 형벌권이 소멸됩니다. 이러한 기간을 ‘공소시효’라 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이러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다시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이와 같은 이 사건 처벌조항의 내용과 구 병역법 제94조의 입법 목적, 규정 체계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처벌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외여행허가의무 위반으로 인한 병역법위반죄는 국외여행의 허가를 받은 병역의무자가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정당한 사유 없이 허가된 기간 내에 귀국하지 않은 때에 성립함과 동시에 완성되는 이른바 즉시범으로서, 그 이후에 귀국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더라도 위 규정이 정한 범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범죄의 공소시효는 범행종료일인 국외여행허가기간 만료일부터 진행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의 입법 취지는 “범인이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체류기간 동안 공소시효 진행을 저지하여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위 규정이 정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인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이러한 목적이 범인이 가지는 여러 국외 체류 목적 중에 포함되어 있으면 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것이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위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과 양립할 수 없는 범인의 주관적 의사가 명백히 드러나는 객관적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외 체류 기간 동안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계속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8도4101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서 보면, 피고인은 14세에 미국으로 출국하여 체류하던 중 18세가 되어 제1국민역에 편입됨에 따라 당시 시행중이던 병역법에 의하여 병무청장으로부터 국외여가허가를 받은 다음 4차례에 걸쳐 기간연장허가를 받아온 점, 그렇다면 피고인은 국외에 계속 체류하기 위해서는 병무청장으로부터 기간연장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정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최종 국외여행허가기간 만료일인 2002. 12. 31. 이후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계속 미국에 체류한 점, 광주ㆍ전남지방병무청장은 피고인에 대한 국외여행허가기간 만료 후인 2003. 1. 10.과 같은 해 2. 10.에 피고인에 대한 귀국보증인들(피고인의 외조부와 외조부의 지인)에게 각 국외여행 미귀국통지서를 송부한 점, 피고인은 2005년경 비자기간이 만료된 후 학업을 중단하여 비자기간연장을 받지 못하게 되자 불법체류 상태로 입영의무 등이 면제되는 연령인 36세에 이르는 날(2012. 11. 15.)을 넘어 2017. 4. 18. 귀국할 때까지 장기간 미국에서 체류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국외 체류 목적 중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을 인정할 여지가 있고, 달리 이와 양립할 수 없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범죄의 공소시효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정지되어 있었으므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아 처벌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 시사점
병역기피자 등 병역의무 위반자를 ‘병무사범’이라고 하는데, 현재 병역법은 이러한 병무사범 처벌 및 제재 수단으로, 병역법 위반에 따른 벌칙 부과는 물론이고, 취업·관허업 제한, 출국금지, 국외여행허가·여권발급 제한 조치 등을 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병역법 위반으로 인한 공소시효는 통상 5년이므로, 해외로 출국하여 병역입영의무 등이 면제되는 연령까지 체류한다면, 일견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을 수 있어 보이지만, 위 사례와 같이 대법원은 피고인의 국외 체류 목적 중에 병역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도 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면 공소시효가 정지되어 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법의 엄중함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