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점을 경신하는 달러원 환율
원달러 환율(달러원 환율 같은 뜻이다)이 연고점을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4월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53.2원이었는데, 글을 쓰고 있는 4월 9일은 장중 1,355원까지 올랐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천정이 뚫려있는 모양새다. 외환 당국이 방어를 하던 환율 박스권도 돌파된 상황이다.
환율이나 금리 같은 경제지표의 최신 가격을 단순히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환율 상승이나 금리 인하의 이유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올바른 해석을 바탕으로 실제 투자에 적용해 수익을 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매크로 변화의 표면적인 이유를 겉핥기 하거나 뉴스에서 제공되는 뒷북 설명을 뒤따라가기도 바쁜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2023년 초부터 일관되게 원달러 환율 강세를 대비한 달러화 자산의 중요성에 대해 본 칼럼과 유튜브를 통해 강조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투자에 적용해 작년 초 미국주식, 미국채, 금, 비트코인 등 원화 약세를 헤징할 수 있는 달러화 표기 자산들을 전체 총자산의 80%까지 늘려 편입했으며, 원달러 환율 상승의 리스크 헤지는 물론 추가적인 수익까지 거두고 있다.
여기서 달러화 자산이란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 원화가 아닌 달러화를 기준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자산을 말한다. 미국 주식과 미국채, 미국 부동산 등은 달러화 자체를 기반으로 한 자산이며, 금도 국제금 시세가 달러화를 기준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달러화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투자자의 경우 금은 대체자산일 뿐이지만, 미국 외 투자자에게는 금의 대체자산 속성에 달러화 환율까지 고려된 가치로 투자가 된다는 뜻이다.
비트코인도 대표적으로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 거래되므로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러화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 6만9,000달러 부근에 도달하기 전에 원화 기준으로는 전고점 8,200만원을 넘어 1억원을 먼저 돌파한 것도 원화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원화가 강세였다면, 미국보다 국내가 비트코인 전고점 돌파가 늦어졌을 것이다.
올해 원화 기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금값도 마찬가지다. 금 가격이 달러 대비 오른 것에 더해 원화 약세까지 추가해 원화 기준으로는 더 가파른 상승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채의 경우 다른 자산과 다르게 달러 기준으로는 오른 것 없이 하락했지만, 원화 기준으로 따지면 손실 폭이 줄어들거나 중기채나 단기채의 경우 오히려 소폭의 이익을 보게 되는 것도 같은 원리라 할 수 있다.
반면, 대표적인 원화 자산인 국내 부동산의 경우 2023년 반등해 2021년 고점에서 -15% 정도 하락한 상태지만, 원달러 환율까지 고려 시 2024년 4월 달러 기준으로 -25% 이상 하락한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 부동산을 평가할 때 원화 기준이 아닌 달러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원화는 구조적인 약세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국내 경제의 잠재성장률 저하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산업경쟁력 약화, 인구문제, 사회적 갈등,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다.
최근의 원화 약세는 그런 의미에서 단기적이라기보다 구조적인 변화로 봐야한다. 위 차트는 1982년부터 2024년까지 장기간의 원달러 환율의 흐름을 보여준다. 각 색 별로 원달러 환율의 단계를 구분해봤다. 1985년 이후 이어진 3저 호황과 경제발전은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 가능하게 한 발판을 만들어줬으나, 그 과정 중에서 일어난 기업들의 채무 부실은 늘어났고 결국 IMF라는 외부 충격으로 인해 구조조정을 거치게 됐다.
1985~1997년의 환율은 평균적으로 700원에서 800원에 머물렀다. IMF로 최대 1,800원까지 2배 이상 단기적으로 상승했던 환율은 IMF를 2년만에 조기 졸업하게 한 전 국민적인 노력에 힘입어 구조조정이 성공하며 안정화됐다.
1998년 이후 추세적으로 달러화 대비 안정화되던 가격이 원화는 평균적으로 1,100원에서 1,200원 사이에서 오랫동안 유지했다. 중간에 2008년 미국 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미국이 부동산으로 인한 가계부채가 심각했던 거에 비해 한국은 1998년의 부채 구조조정으로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선진국이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중국의 경제성장에 의존하게 됐는데, 이때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에게 중간재를 공급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력 또한 정점을 찍게 됐다.
2015년 이후 중국이 주식과 부동산에 버블이 형성되더니, 2018년에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되면서 G2로 불리던 미국과 중국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코로나19를 거쳐 2024년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과정이 진행되면서 한국은 큰 피해를 받았고 차트1에서 보는 것처럼 2018년 이후 원달러 환율은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달러화의 가치가 희석되자 전세계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2021년 전후로 피크를 찍은 부동산 버블을 비롯해 가계부채가 임계점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경제의 활력도 줄어만 갔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출산율, 인공지능 등 신산업에서의 경쟁력 부재 등 내부적인 성장동력도 잃어갔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한국보다 더 빠르게 올리며 SVB, WeWork 파산 등 고강도의 구조개혁을 했던 것과 다르게, 한국은 미국 통화정책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금리를 올리고 구조조정을 늦춰왔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를 비롯해 부동산 PF 문제까지 심각한 부채를 디레버리징 하기보다 금융지원으로 파산을 막고 부동산 가격을 방어하는데 역점을 뒀다. 이는 결국 종합적으로 원화의 경쟁력을 달러 대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2021년 이후 차트1에 표기한 거처럼 붉은색 채널 안에서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과거 1998년과 다르게 원화는 전세계 통화량 중에서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기축통화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선진국 통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급격한 환율 변동성은 없을 수 있으나, 원화가 기존과 다른 추세적으로 약세화 구간에 들어섰음은 틀림없으므로 그에 기반한 투자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막연하게 ‘지난 20년 평균치보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편이니 곧 내려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자산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달러화 자산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시대로 접어드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