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만 한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서부터 학교, 조직, 동호회와 같은 단계로 관계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러한 관계는 태어나면서 형성되는 부모자식과 같은 본인의 선택과 관계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관계는 본인의 선택과 연관되어져 있다.
특히 결혼이나 직장의 경우에는 본인의 선택이 더욱 절대적이다.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 선호하는 조건, 기대감 등과 같은 심리적 부분에서부터 경제적 조건 같은 현실적 상황에 대한 다양한 검토를 통하여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이나 직장생활에 대한 결정은 다른 관계보다도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요즘은 취업이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신입사원 교육을 가면 합격의 기쁨과 설렘으로 강의장 분위기가 가득하다. 더군다나 공무원인 경우에는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경쟁률이 일반기업을 뛰어넘고 학력이나 학벌의 과도한 경쟁이 대단하다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하여 접하곤 한다. 얼마 전 9급 신입공무원 연수교육과정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여타 신입교육과정처럼 기쁨과 설렘이 가득하였지만 몇몇 사람들은 교육과정 동안 불만의 표정이 가득하였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그들에게 관심 어린 질문을 하였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불만의 원인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자신들이 받게 될 연봉 즉, 월급이 너무도 박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시험 이전에도 연봉이 얼마인지 알았던 사람이 시험을 통과하고 신입공무원으로 임용되는 교육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그 개인에 대한 걱정과 불안보다도 그가 속하게 될 조직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우선 기쁨과 설렘을 갖고 시작하여도 힘든 일이 많은 것이 조직생활인데 시작부터 불만을 안고 출발하는 것은 마치 절대적으로 원치 않는 강제결혼 생활에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들 것인가’하는 생각이 아닌 온통 머리 속에는 ‘결혼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것인가’하는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할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연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알고도 시험에 응시하였고 그리고 신입연수과정에 참여하였기에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사를 그만두기 보다는 불평불만을 하면서 정년까지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선택한 조직생활을 불만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은 개인의 입장과 조직의 입장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신입사원의 시간이 지나고 대리 과장 그리고 승진하면서 입사 때의 기쁨과 설렘은 뒤로하고 불평불만이 쌓여간다. 자신이 선택한 조직생활에 불평불만이 쌓여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참여하는 태도적인 심리학적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사람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참여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속감(Being)이고 나머지 하나는 적응(Adaptation)이다. 소속감은 자신이 선택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를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는 태도이다. 소속감은 조직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조직에 기여하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자부심을 갖는다.
하지만 적응은 조직의 규범과 규율, 자신에게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려는 피동적이고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태도이다. 적응하려는 태도는 최소한의 요구인 규범과 규율 그리고 자신에게 할당된 목표를 수행할 때 월급이라는 보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직구성원의 일원이라는 마음보다도 자신에게 보상받는 월급에 많은 가치를 둔다. 소속감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하지만 적응은 생존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소속감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지만 적응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생각만 할 뿐이다. 소속감은 마음과 정신의 교류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만 적응은 의무와 같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소속감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행보이지만 적응은 단지 생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소속감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성숙된 마음 속에서 생겨나지만 적응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미성숙된 점을 추구한다. 소속감은 때로는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자발성이 생기지만 적응은 최소한의 보여지는 형식적인 행동만 할 뿐이다. 소속감은 삶의 활력이 되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지만 적응은 되풀이되는 지루함과 우울감의 근원이 된다. 소속감은 어제보다 다른 뭔가를 만들어가려는 창의성을 일깨우지만 적응은 변화를 싫어하는 정체감이 생긴다. 우리는 자신이 처해진 가정, 직장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단지 적응을 하려고 살아가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글_ 손정필 교수(평택대학교 교수 / 한국서비스문화학 회장 / 관계심리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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