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집착’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집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다. 불교 용어로는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이다. 그런데 영어표현으로 집착에 딱 맞는 용어가 없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Attachment는 애착이고 Fixation은 고착이라 번역한다. Obsession은 강박이고 Paranoia는 편집증이다. 따라서 집착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용어를 찾기가 어렵다. 일부 사람들은 애착과 집착이 유사한 유형인데 결과가 긍정적이면 애착이라 하고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면 집착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적 개념에서의 집착은 애착도 포함한 광범위한 개념이다. 아마도 집착이란 단어가 ‘건달, 이판사판, 아수라판’ 등과 같이 불교적 개념을 지니고 장착한 탓인 듯싶다. 이런 심리를 강도에 따라 분류해보면 ‘애착<집착<고착<강박<편집’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애착에 대한 연구는 2차 세계대전 때 시작됐다. 적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피한 아이들이 부모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여 연구가 시작됐다. 애착이나 집착이나 분리불안이나 욕구가 좌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이런 마음이 애착을 넘어 집착에 이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사회에서는 이를 이익에 따라서 해석하는 데에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즉 집착과 강박의 경계에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남녀 간에서 집착이 스토커로 발전한 경우는 모두가 인식하여 발견하기 쉽다. 하지만 군인이 전쟁의 승리에 집착하면 충성으로 해석되어 병적인 집착이 가려질수 있다. 이런 병적인 집착이 가려질 때에 나중에 심한 후유증 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학생이 1등에 집착하면 우등생이라 판단될 수 있지만 나중에 2등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집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것의 영향은 광범위하다. 심리학에서 애착과 집착의 시작은 엄마이다. 어린 아이에게 엄마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엄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 보호를 받기위한 욕구충족의 의미이다. 반면 엄마의 부재는 극심한 두려움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엄마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공급받은 아이와 애정부족의 두려움에 있었던 아이의 마음은 차이가 발생한다. 후자의 경우에서 자신이 못난 행동을 하면 엄마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으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되고 그것은 무의식속에 기록되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집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집착의 종류는 너무도 많다.
특정 물건에 대한 집착,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집착,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 자기 생각에 대한 집착, 착한 행동에 대한 집착, 여성에 대한 집착, 성취에 대한 집착, 습관에 대한 집착 등등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집착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집착의 단계를 넘은 강박의 단계라고 불수 있다. 이미 강박 단계에서는 이론이나 논리, 철학에 의하여 컨트롤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의 단계이다. 상담으로 해결 가능성이 있으면 심리학의 영역이고 약물 등의 치료가 요구되면 정신학이다. 집착은 심리학과 정신학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 그것이 더 심해지면 치료가 요구되는 강박이나 편집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행동이 강박을 넘어 편집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애착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로인하여 상담이나 치료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호전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안타까운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누군가 객관적인 사실도 부정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이 지닌 집착의 원인을 생각하면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