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방 모 대학병원에서 임직원을 상대로 병원에서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을 설문조사했다. 설문조사 자료를 보면 각자 위치에 따라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듣기 싫은 말의 1위는 선배입장에서 “제 일이 아닙니다”와 후배입장에서 “생각 좀 하고 일하지?”였다. 반대로 듣고 싶은 말로는 선배입장 응답자 중 35.4%는 “선배는 배울 게 많은 사람입니다”로 1위였고, 다음으로 30.1%가 “제가 하겠습니다”를 택했다.
반면 후배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수고했어, 잘했어, 역시 든든해”다. 55.6%로 1위였고 “우리 함께 잘해보자(22.7%)”와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16.5%)”가 그 다음이었다. 이것은 20년 전에 한 백화점에서 실시한 조사와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과장급이하 직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한 답변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이걸 일이라고 했나?”, “혼자 튀지 마,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이거 확실한 거야? 근거 자료 가져와” 등이었고,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자네가 한 일이니 틀림없겠지”, “자네를 믿네”였다.
얼핏 보면 20년 전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선배나 상사가 부하직원이나 후배에게 대하는 말 속에서 인격을 무시하는 말이 긍정적으로 향상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과거의 설문조사에는 상사가 듣기 싫은 말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이는 사회분위기상 후배가 선배에게 또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후배로부터 “제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듣는 선배는 네 가지의 심리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일단 자신이 과거에 후배의 위치에서 경험해보지 못하고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던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다. 또 후배가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많이 변해버린 현실에 대한 충격과 더불어 지난 과거에서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에 대한 회한이 생긴다. 그 후 책임을 회피하려는 후배의 모습에서의 얄미움과 무책임함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이것이 20년 전에 후배가 지금 선배가 되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반면 과거에 비하여 인격적인 무시가 적어졌지만 후배의 위치에서는 과거에 비하여 좀 더 자존감이 무시되거나 상처를 받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번 추석 전에 조사한 설문에서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 1위로 “꼰대라고 생각 말고 어른들 말 잘 들어(22%)”였다. 이어 “만나는 사람은 있어?”, “외모관리도 좀 해야 하지 않겠니?”, “눈이 너무 높아서 취업 못하는 거 아니야?”, “대기업 들어간 친척한테 멘토링 좀 받아봐”,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야?” 순이었다. 반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용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29.5%)”였다. 다음으로 “늦지 않았어. 천천히 해 나가면 돼”,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주저 말고 해”, “다 잘 될 거야”, “명절인데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 “언제나 너를 믿어”, “너는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야” 순이었다.
이 세 가지 설문조사의 답변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자존감을 세워주는 말은 듣기 좋은 말이고 자존감에 상처주거나 무시하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을 던지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생각의 기준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의외로 적다. 충고하는 사람은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기준에 근거하여 말을 하는 반면, 듣는 사람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에 치우쳐서 이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전혀 소통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욱 나쁜 것은 충고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존감에 손상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와의 관계가 긴밀할수록 그 충격의 강도가 더욱 강하게 증가된다.
결론적으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충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충고를 하고 싶으면 칭찬을 통해야 한다. 그 방법은 스스로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비로소 존경받는 선배이고, 상사이고, 어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