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글이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가득한 계절이다. 어린 시절 단풍이라는 것이 초록이 지쳐 생긴다는 시적 표현의 힘에 감동을 받았었지만 사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라는 말이 그 시절에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눈이 부신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특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 내뿜는 강한 자외선 앞에서는 눈이 부시는 것을 넘어서 오랜 시간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때도 있다. 특히 운전을 하거나 야외활동을 할 때에는 푸르고 맑은 날씨가 오히려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려고 노력한다. 이전에는 선글라스를 연예인들이나 혹은 멋쟁이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겼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대중화 된 것 같다. 아마도 눈 건강의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선글라스의 색깔은 검은색이나 갈색이 많은 것 같다. 물론 파란색이나 초록색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검정이나 갈색을 많이 선호한다. 그러나 단순한 멋을 부리기 위한 차원을 넘어서 눈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는 용도에 따라서 색상이 다르다. 자외선이 강한 날씨에는 검은색이나 갈색이 효과적이고, 운전이나 낚시와 같이 오랜 시간 한 곳에 집중을 해야 할 때에는 초록색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선글라스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어두운 밤에 선글라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란색 선글라스는 오히려 흐리고 비가 오거나 어두운 밤에 시야를 더욱 밝고 또렷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사격이나 양궁처럼 어떤 목표물을 또렷하게 보기 위해서는 붉은색의 선글라스가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제 선글라스는 단순히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른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능적 측면도 있다. 즉, 상황이나 환경에 맞는 선글라스를 착용함으로써 눈을 보호하는 것과 더불어 그 상황이나 환경에서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삶도 비슷한 것 같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씨처럼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한 순간들도 있고, 칠흑같이 어두운 날씨처럼 고통과 절망적인 시간들도 있다. ‘생사고락(生死苦樂)’이라는 말이 있듯이 삶과 죽음 그리고 고통과 즐거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무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한 순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또한 고통과 절망이 가득한 시간은 어떻게 견디고 그 속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현실이고 직면해야 하는 숙제이다. 그래서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눈이 부신 맑은 날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서 착용한 검은색 선글라스를 흐리고 캄캄한 밤길에 쓰고 다니면 오히려 장애가 된다. 또한 어두움 속에서 선명함을 위해 사용하는 노란색 선글라스를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 착용하면 눈에 해를 끼친다. 상황에 맞게 선글라스를 착용하듯이 우리도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 맞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날씨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러한 날씨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며 그 행동의 기능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하여 선글라스를 착용하듯이 우리도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을 문제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혜이다.
지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내려는 태도이다. 성공이라는 자만에 빠져서 한순간에 실패를 경험하거나 고통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모든 경우는 다 지혜가 부족해서이다. 눈이 부신 맑은 날에는 검은색 선글라스로 눈을 보호하듯이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할 때에는 절제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밝음을 보여주는 노란색 선글라스처럼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내일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우리 마음의 선글라스이다. 인생은 보는 만큼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는 것이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나 환경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맑고 또렷하게 사물을 바라보기 위하여 상황에 맞는 선글라스가 필요하듯이 우리 마음도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지혜라는 선글라스!
글_ 손정필 교수 (평택대학교 교수 / 한국서비스문화학 회장 / 관계심리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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