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선행학습과 관련된 질문이다.
“우리 애가 이번에 성적이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선행학습을 좀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애 친구가 지금 고3 내용까지 수학을 다 끝내고 다시 복습을 하고 있다는데 우리 애가 너무 뒤처지는 건 아닐까요?”와 같은 질문이다.
사교육 시장이 보편화되면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이 당연시되고, 선행시기가 점점 당겨지고 있다. 일단 이렇게 선행학습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원인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선행학습을 어떤 시기에 얼마나 해야 효율적이고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 둘째는 일부 학원들의 보여주기식 선행학습과 진도경쟁, 셋째는 학부모들의 수학 선행학습에 대한 욕심, 이 3가지에 의해 점점 수학은 선행학습이 중요하다는 관념이 자리 잡고 굳어지게 된 것이라 본다. 이렇다 보니 주변 친구들보다 진도가 느린 학생은 내가 너무 느린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그렇게 필수적인 것이며, 과연 생각하는 것만큼 수학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일까? 결론을 얘기하자면 ‘개개인마다 정답이 다르다’이다. 예를 들어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에게는 수학 선행학습은 필수적일 것이다. 과학고나 외고의 경우 내신 자체가 일반 교과과정을 뛰어넘는 심화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가 굉장히 좋은 학생이라 한두 번 정도 수업을 듣고 문제를 풀었을 때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선행학습은 굉장히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봤을 때, 본인의 능력에 맞춘 것이 아닌 남들 진도에 맞춰서 선행학습을 하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며, 오히려 학생에게 수학이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흥미를 잃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 경우도 있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재 내신수학의 교과과정은 어느 정도 단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어 고1과정에서 배운 내용이 고2수학 문제에 적용되고 응용되어 나오며 이는 고3수학까지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나 학생들은 고2수학을 선행하게 되면 고1수학 내용 복습이나 심화문제 풀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2 때 배우게 되는 로그나 수열, 미적분 같은 내용들은 고1수학 문제를 푸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고1과정의 내용들이 완벽히 정리되고 숙지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고2수학 선행은 오히려 개념에 혼동을 가져오게 되고, 고1과정과 고2과정을 둘 다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히려 선행학습을 하는 시간에 현행단계의 내용 이해와 공식 숙지를 완벽히 한 후 해당 심화문제를 많이 접하고 반복하는 쪽이 내신성적 관리에 효과적일 것이다.
고등수학(상)을 예로 들자면 이는 고등수학의 시작점이며 고1-1학기 과정으로 편성되어 있는 내용으로 고등수학에서 다루는 다항식연산, 방정식, 부등식, 도형 등 일반적인 내용들이 종합되어 있는 고등수학의 기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양도 방대하고 고2, 고3수학의 모든 내용, 문제풀이에 적용되는 내용들을 다루기 때문에 최소 6개월은 투자를 해야 여기서 나오는 내용들의 정확한 이해와 공식 숙지, 다른 문제에의 적용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학생을 대상으로 고등수학 선행을 하는 학원 거의 모두가 수학(상)을 2개월에 끝내고, 그것도 한 번 끝낸 상태로 2학기 과정인 수학(하)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선행학습을 빠른 속도로 끝낸 후에 학생들의 숙지도에 따라 다시 복습을 하든가, 계속 선행을 진행하든가 하게 되는데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상)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질문해보거나, 중간 난이도 정도의 문제로 테스트를 보면 30%도 제대로 숙지 못한 학생이 대부분이다. 2개월 만에 빠른 속도로 진도를 돌리고 다시 돌아와서 복습을 한다고 해도 개념정리를 정확히 하지 못하고 문제풀이만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또 복습을 하게 되면 한 번 공부했던 부분을 다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착각이 들어 더더욱 꼼꼼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실제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수학(상)을 다시 공부하게 되면 거의 처음 공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백지상태로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이렇듯 무분별한 선행학습은 확실히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선행학습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정답이 다르다. 즉, 선행학습을 고려하는 학부모나 학생들은 우선 수학의 기본습득 능력이나 기본기, 투자시간 등을 잘 고려해서 학생이 진도의 속도에 치중하지 않고 꼼꼼히 공부할 수 있으며, 한 번 습득한 내용을 나중까지 잘 가지고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드는 경우에만 선행학습을 권장한다. 그 외 거의 대다수 학생들의 경우 보여주기식 선행학습보다는 현행학습이 훨씬 중요하며, 특히 반복적인 문제풀이식 학습보다는 꼼꼼한 내용 이해와 수준별 문제풀이를 통해 현행단계의 실력을 내실 있게 탄탄히 다지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상 수학 선행학습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마치며, 현재 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선행학습을 많이 하면 우수한 학생이다’는 생각보다는, ‘본인에게 맞는 정도, 그리고 꼼꼼한 내용이해를 동반한 선행학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글 사진
지형욱 팀장
은평하이스트 고등부 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