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급여 관리대책의 수위와 속도를 높이며 ‘비급여 진료내역 보고의무’까지 추가해 전 의료계의 단합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치과계는 제31대 협회장이 정관대로 후임 임원이 선출될 때까지의 잔여 임기도 다하지 않은 채 사퇴하여, 보궐선거를 치러 19일이면 잔여임기를 다할 협회장이 선출될 것이다.
소규모 개인치과 원장이 대다수인 치과계의 실정상 품의, 결재, 지출결의와 같은 일반적인 기업 사무영역, 계약서, 협약서 등 법무영역, 재무제표 관리를 포함하는 회계영역 등은 일반 치의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지난 기간 협회는 사무국 직원들의 협조와 도움으로 운영돼왔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노사단체협약 건으로 우리는 직원들의 도움 없이도 협회 사무를 파악하고 판단할 협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치협은 과거 대의원제도를 기반으로 소속 분회나 지부 임원, 협회 내 위원회 위원, 이사 등 차곡차곡 경력을 쌓은 인사들이 종국에는 주요 임원과 협회장으로 중책을 맡아왔다. 그간 간선제는 지적돼왔던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회장단 후보들과 대의원들이 대화와 소통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기회가 많아 후보자들의 인격과 철학을 비교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 우리의 직선제는 간선제 시절보다 더 편이 갈려 인터넷, 언론 혹은 SNS 등을 통해 후보자들의 달콤한(?) 공약을 전달하는 데 급급해 보인다. 심할 때는 ‘일단 당선이 최우선’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실현 불가능한 공약으로 변질돼 -간선제에서는 회무에 능통한 여러 대의원이 회무 능력과 철학을 직접 검증해 통하지 않았을 공약이- 선거운동 바람을 타고 회무에 익숙치 않은 일반회원들의 표심을 현혹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 때문에 직선제가 앞으로도 계속 치과계의 수장을 선출하는 데 있어 제대로 된 검증 방법인가에 대한 재평가도 이번 보궐선거를 치르는 치과계의 또 하나의 숙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협 회장 선거의 목표는 단 하나다. 치과계의 번영과 회원의 행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치협의 가치는 존재한다. 직선제의 명분과 의미도 중요하지만, 치협이 지니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실리를 생각할 때 이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적어도 회원끼리는 치과계의 이익과 발전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화합하고 하나가 돼야 하는데 직선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직선제가 회무에 능통하고 협회 및 대정부 업무에 익숙한 치과계 인재를 키워나가는 데 얼마나 역할을 했는지, 선거 후 논공행상에나 큰 역할을 한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직선제로 인한 회원 간 다툼은 치과에 쏟는 에너지 이상을 소모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시간과 비용에 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한 임원들에게 쏟아지는 고소·고발이 그 분들이 그간 치과계를 위해 일한 의미와 가치를 손상시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더욱 살펴봐야 할 것은 선거운동 기간에 발표됐던 여러 후보의 주요 공약이 변호사나 행정사들이 보기에 협회 실정상 가능한 지를 살펴보아 만약 거짓 공약이라면 다시는 회원들을 기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지난 선거 때부터 문제가 되었던 선거관리규정 역시 실제 선거업무를 진행해온 사람들과 선거 전문 행정사들의 자문으로 개정해 불법 발송 문자 및 선관위의 기능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검토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1인 1개소법이 통과되기 전 정관에 명시되었던 협회장 겸직금지 규정에 대해서도 현행 의료법과 상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정해 임기 후에 협회장 재직자가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어야 하며, 직선제 과정에서 협회 및 각 지부에 남발하였던 회비인하 안건은 특히나 직선제로 인한 폐해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할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인 치과계가 보궐선거까지 치르게 되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협회장 사퇴 직전 주요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 회원들이 노사단체협약서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쏟아냈던 실망과 절망감은 보궐선거를 치르는 아픔을 넘어섰다고 본다. 회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회원들의 기대를 직선제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