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능인 단체장들의 모습이 매스컴에 자주 보인다. 그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다. 점점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심지어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안타깝다.
정치인들이야 천박하고 조열한 모습을 오랜 세월을 보여 와서 그들에게 품위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감도 아쉬움도 없다. 하지만 직능인 단체장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속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대표하며 그들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상황이 화를 나게 만들 수도 있고 억울할 수도 있다. 방편적으로 일부러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파격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의 분노와 화를 타인에게 확실하게 전달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지만, 정작 화가 나게 된 이유와 목적을 흐리게 하는 단점이 크다. 그중 가장 큰 단점은 ‘파격’이다. 격을 깨는 것은 흐트러짐을 말한다.
사람에게는 품격(品格)과 품위(品位)가 있다. 이런 품격이 깨진다. 품격이란 주어진 자체 모습에서 흐트러지지 않음이다. 어머니가 어머니답고 아내가 아내답고, 그리고 들꽃이 들꽃다움을 품격이라 한다. 동양 철학적 개념으로 보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을 격(格)이라 칭하고 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품격이다. 이런 격이 깨지면 격조(格調)가 떨어진다. 이는 이 빠진 접시나 새로 뽑은 차에 스크래치가 생긴 것처럼 처음으로 회복되지 못한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흠집이 생기면 최종에는 그 본연의 가치마저 소멸한다. 품위에서 위(位)는 사람이 하늘을 보며 서 있는 모습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 때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성과 도덕성이 높아야 품위가 나오며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유발하게 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
품격과 품위가 있는 말 한마디의 파급효과는 천박한 천 마디 말보다도 크고 강하다. 봉윤숙 시인의 ‘벽과 담의 차이’란 시가 있다. 그녀는 지붕이 있으면 벽이고 없으면 담이라 하였다. 건축에서 담은 외부의 경계를 짓는 것이고 벽은 내부의 경계를 짓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벽을 쌓았다’고 하면 자신을 자신이 나오지 못하게 차단한 것을 의미하고, ‘마음에 담을 쌓았다’고 하면 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의미한다. 벽과 담의 차이는 이것 외에 또 있다. 담은 높이 조절로 소통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벽은 지붕과 닿아야만 하므로 완벽한 차단으로 소통이 불가능하다.
옛날 집들을 보면 기와집 담장 높이도 눈높이여서 집안 마당에서 벌어지는 것을 담 밖에서 볼 수 있었다. 소통을 위해 눈높이에 맞춘 것이다. 선조들의 마음의 여유였다. 담과 벽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문이다. 문이 없으면 담도 벽도 아닌 것이 된다.
문을 높고 크게 만든 이유는 타인이 들어올 때의 예의를 위한 것이고, 자신이 드나드는 문은 작게 만들어 늘 고개를 숙이는 것을 일상화하고 스스로 낮추는 연습을 위해서였다. 옛날 고택에 가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문을 종종 보는데 이런 이유였다. 그런데 자신이 가마를 타고 들어가기 위해 문을 높고 크게 만든 사람들은 모두 몰락하였다. 문이 존재하는 이유와 크기가 다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때 외부와 경계를 지을 담도 필요하고 아늑함을 느낄 벽도 필요하다. 하지만 외부와 소통할 문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은 타인을 위한 대문과 자신을 낮추기 위한 작은 문과 환기와 햇살을 위한 창문이 있다. 환기와 햇살을 위한 창문을 사람이 넘으면 도둑이 되고 타인을 위한 대문을 자신을 위해 만들면 소인이 된다. 문을 사용하지 않고 담을 넘으면 도적이다. 담에 문을 만들지 않으면 주인도 담을 넘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려면 타인이 쉽고 격조 있게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높고 크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반대로 자신이 다니는 문은 높고 크게 만들고, 타인이 들어오는 문은 좁고 작게 만들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게 만든다면 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에는 문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타인을 위해 높은 문을 만드는 것이 품격이고, 나를 위해 작은 문을 만드는 것이 품위다. 옛날 선비들의 품격과 품위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