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에는 ‘개근거지’란 말이 있다.
체험학습을 가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를 다닌 아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체험학습을 가지 못한 이유가 여행을 갈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비하의 의미가 깔려있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끼리는 해외여행을 어디로 다녀왔나, 비행기는 무엇을 탔나 등이 자랑거리다 보니 체험학습을 가지 않은 아이를 거지라 비하한 것이다. 여행도 국내여행은 여전히 비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해외로 가야 한다고 한다. 체험학습이란 학교에서 단체적으로 해줄 수 없는 현장 경험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모에게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해준 것이다. 그런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제도가 아이들에게 부모 재산 척도로 나타났다.
1982년 교복 자율화 이전엔 학생들은 교복을 입었다. 교복이 일본 문화의 잔재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잘 사는 아이와 못 사는 아이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교육적인 개념이 깔려있었다. 그 후로 교복 부활과 자율화가 반복된 이유도 빈부에 따른 차별을 감소시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근거지와 사복이 아이들의 빈부의 차이를 규정하는 척도가 되는 것에서는 같아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결코 같지 않다.
잘 사는 아이가 비싼 명품 옷을 입고 와서 자랑을 하면, 가난한 아이는 부러워하면 끝이다. 그런데 개근거지는 다르다. 유럽을 비즈니스를 타고 여행을 다녀와서 자랑을 하면 부러워하는 것은 똑같은데, 문제는 ‘개근’이다. 개근이란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을 의미하며 존중받아야 할 덕목인 ‘성실성’의 객관적인 지표다. 성실성보다 부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는 문제를 지니기 때문에 교육적 차원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근면·성실이 과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덕목이었고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재택근무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성실하지 않아도 코인으로,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유튜버로 일확천금을 벌 수도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꿈이 유튜버에 유명 인플루언서인 시대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모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 치대를 지원하는 학생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연예인의 경쟁률은 수백 만 명에 한 명인데 반해 치과의사는 1년에 천명은 뽑으니 경쟁률이 낮다는 답변을 들었다.
구독자가 100만명이 넘는 유튜버가 되는 것도 인기 연예인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근면·성실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만 유용한 덕목은 아니다. 근면·성실은 인간만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을 근본으로 한 자연계 동물이 지닌 절대적 생존 가치기 때문이다.
과거 초등학교 건물에는 어디를 가도 똑같이 ‘근면·성실·반공·방첩’이란 표어가 붙어 있었다. 여기서 반공·방첩은 사상적 문제로 인간들이 정한 것이다. 반면 근면·성실은 인간이 만든 덕목이 아니고 자연계가 지구상 동물에게 부여한 숙명이다. 정확히 생각하면 반대적 개념이다. 태양과 지구환경이 만들어지고, 동물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고 진화된 생존 본능이다.
고등동물일수록 어미로부터 사냥하는 방법과 먹이를 찾은 방법을 교육을 통해 배운다. 고등동물 최상위인 인간은 더욱 그렇다. 교육을 통해 평생 살아갈 방법을 배워야 하며 그중 가장 기본이 근면·성실이다. 과거 교육에서 우등상과 같이 개근상을 주었던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만큼 근면·성실이 중요한 교육적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교육계에서 스스로 규칙을 파괴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요즘 언제 방학을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 재량 학습제(재량휴업일)를 시작하면서 선생님들 입맛에 맞게 1년 학습을 재단했다. 때가 되면 싫어도 해야 하는 자연계의 규칙을 가르쳐야 할 학교가 스스로 규칙을 깼다. 교육에서 규칙성이 깨지면서 무너진다. 규칙이 있어야 어려움과 바람이 생기고, 규칙을 지키라고 말하는 선생님들 가치도 올라간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자연계 덕목인 성실이 ‘개근거지’로 비하되면, 머지않은 미래에 자연계에서 도태되는 것 또한 자연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