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을 맞이한 경희대 캠퍼스는 파릇파릇한 청춘의 낭만으로 여전히 아름답다. 매일 보는 캠퍼스 풍경 이지만 계절마다 바뀌는 자태에 저절로 흥얼흥얼 흥이 차오른다. 카메라를 갖고 온 날이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한 자락을 찰칵 찍기도 하고, 하모니카를 들고 오는 날에는 캠퍼스 어디 든 즉석 연주회장이 되기도 한다.
서글서글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편안한 첫 인상만큼이나 목소리도 좋은 홍정표 교수는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구강내과 교수이면서 등산, 하모니카, 사진 등에 전문가 못지않은 조예를 갖춘 재능보유자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 하다보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등산과 사진에도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하모니카는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힐링의 악기, 하모니카. 그 인연의 시작은...
하모니카와 그의 인연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쩌다 하모니카가 그에게 소중한 동반자가 되었을까?
시작은 단순했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학창시절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비싼 악기는 엄두를 못내던 때라 하모니카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운명이랄까? 당시의 하모니카반을 ‘한국 하모니카의 전설’로 불리는 고 최영진 선생이 지도해주었다. 자연스레 하모니카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선후배들과 연습도 하고 연주회도 열면서 점점 하모니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흔히 하모니카라고 하면 한 뼘 크기정도의 네모난 그것을 떠올리죠. 그런데 하모니카 종류가 의외로 많아요. 크기도 제각각, 음 색도 차이가 있죠. 아마 150여 가지가 넘을 거에요. 그래서 하모니카로도 오케스트라 구성이 가능하답니다.”
알고 나서 보면 하모니카의 세계도 무궁무진하다. 어른 팔뚝 길이를 능가하는 코드 하모니카부터 호른, 크로메틱, 베이스, 다이아 토닉, 트레몰로 등등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쉽게 접하게 되는 하모니카는 트레몰로(복음)라고 하는데 멜로디 연주에 가장 많이 쓰여요. 위아래 구멍으로 동시에 숨을 불어 넣거나 들이마셔야 소리가 제대로 나죠. 다이아토닉(단음)은 숨을 불 때 마실 때의 소리가 다른 게 특징이구요.”
그가 하모니카의 매력을 주변 지인들에게도 널리 알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저 추억의 악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모니카는 의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건강에 매우 좋은 악기다. 들숨 날숨이 기본인 악기라서 반복해서 불다 보면 폐활량이 커지면서 기관지도 넓어진다. 한마디로 말해 호흡장애 치료에 효과적이다. 수면 무호흡증이나 코골이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 응용하면 도움이 된다. 구강내과 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조 치료 요법이 하모니카 연주다.
“구강내과 질환의 원인 중 대부분은 스트레스에 기인합니다. 심인성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입안 침이 마르면서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요. 우리나라 사람 들이 태생적이랄까 심리적으로 억제 기제가 많은 편이에요. 감정을 억제하는 걸 먼저 배우죠.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스트레스를 제때 풀지 못하고 쌓아 두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간다든지 딱딱거리면서 치아에 고통을 안겨요. 사실 여기까지 오신 환자 분들이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떨 때는 펑펑 울고 가세요. 진료 테이블에 휴지가 있는 이유가 그거에요.”
그는 치과 진료에 앞서 진료실을 찾는 많은 환자들에게서 구강 질환의 원인 중 하나가 심리적 요인에 있는 것을 보면서 40대 후반에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실제 치과진료과정에서도 충분히 녹아 들어가 있다. 환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의사로서 턱관절 장애나 구강질환 치료에 있어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명성을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심리치료와 병행하는 보조 치료 요법이 바로 하모니카 연주입니다. 하모니카는 입주변 근육과 혀를 움직이도록 해서 구강 치료에도 도움을 주거든요.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적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죠. 저와 함께 치료를 위해 노력해 주시는 환자 분들이 차츰차츰 증세가 호전되는 걸 보면 의사로서 보람도 커요.”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가서 하모니카를 불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상쾌해지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여행도 자주 권하곤 한다. 실제 그 역시 산과 여행, 사진을 좋아하고 이를 통해 마음의 힐링을 충분히 얻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과 사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남자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초빙으로 일본 구주산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지금 보다 젊은 시절에는 해발 8,000m급 히말라야 정복에 세 번이나 팀을 꾸려 도전장을 내기도 할 정도로 산을 사랑했던 산악가였기에 여러 매체에서 등산과 관련된 문의가 종종 들어오곤 한다. 등산을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까지 시작하면서 현대사진가회 주최 사진 공모전 전국 대상을 수상한 사진작가로 치과병원 4층 벽면에 그의 사진으로 꾸려진 미니 갤러리가 있을 정도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 촬영도 취미가 되었죠. 피사체도 다양해요. 어느 날은 시골 5일장도 되었다가 어느 날은 오래된 단청이 되기도 하죠. 시간, 있는 그대로가 묻어 있는 사진을 좋아해요. 등산도 마찬가지에요. 산이 주는 세월의 흐름, 별 생각 없이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분명 산에도 시간은 흐르죠. 그런 여행이 좋아요. 그리고 하모니카를 꺼내어 불죠. 그러다 가만히 쉬기도 하고. 여행을 가서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역시 스트레스예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즐기다 보면 내재된 스트레스도 자연스레 없어질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예전부터 명상, 음악, 미술 등을 접목한 특화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의 치료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그만의 자세다.
“하모니카 연주도 마찬가지에요. 뭔가 난 특별한 걸 연주해야 해! 이것 또한 스트레스죠. 저 역시 평상시에는 단순한 곡조의 가요나 동요를 주로 불어요. 정통 클래식도 연주해보는데 의외의 맛이 있어요. 그리고 훌쩍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떠나죠. 그저 머무르며 쉬는 시간을 즐겨요. 그게 제 일상이 늘 힘나는 이유입니다.”
최근 그는 대한심신치의학회 발족을 통해 보다 더 세밀한 치과 치료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거기에 대학산악연맹 지도교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대학생 남북 산악문화교류 및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합동등반을 추진 중이다. 그의 이런 행보는 단순히 취미에 그치지 않고 사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얼마나 스스로를 발전케 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는 머무르며 힐링하는 그이지만, 전문 분야에 있어서는 머무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