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of All, It's in HONGKONG
나른한 오후 2시, 지금 여기는 홍콩 구룡반도(Kowloon Peninsula/九龍半島) 침사추이(Tsim Sha Tsui/尖沙咀)에 있는 하버시티(Harbor City) 오션터미널의 스타벅스.
낯선 현지인들과 귀에 익은 광둥어(廣東語)의 시끌벅적함에 파묻혀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노트를 편다. 펜까지 꺼내들면 이제 오롯한 나만의 휴식 둥지에 안착한 상태가 된다. 많고 많은 도시들 중 이곳에 무엇이 있길래 두세 달이 멀다 하고 한 번씩 홍콩행 비행기를 타는지 사람들은 늘 궁금해 한다.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거냐며.... 일단,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럭셔리 휴양지에 누워서 휴식을 하는 것보다는 도심의 낯선 골목길 탐색 여행을 좋아한다. 그리고 평일에는 늘 일에 치이고 여행 일정은 주말 이용 2박 3일, 게다가 비행시간이 최대 5시간 이내 여야 하기에 가능한 곳은 동아시아 또는 동남아시아다. 게다가, 남다른 괴식력으로 - 특히 아시아 향신료와 음식에 탐닉하는 - 48시간도 안 되는 일정 중 7~8끼를 해치워야 만족을 느끼는 다식가이기도 하다.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신봉하는 필자에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도시가 바로 홍콩이다.
그뿐이랴. 중화권에서 유일하게 모든 식당에 메뉴가 영어로 병기되어 있어 소통이 편하고, 새벽 두세 시에 혼자 골목을 돌아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치안의 천국이 홍콩이다. 실제로 홍콩 거리는 24시간 사람들로 넘쳐난다. 택시는 저렴하기도 하지만 정직해서 속을 일이 없다. 대중교통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고 저렴하다. 과연 ‘혼자여행’에 최적화된 도시라 할 만하다.
몇 번 다니며 어느 정도 길을 닦아 놓으니 이젠 현지 생존 스트레스 없이 편안한 여행지가 되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 수치에 빨간 불이 켜질 때쯤 바로 스마트폰에서 티켓팅 사이트로 접속, 속옷 두 개 챙겨서 바로 떠날 수 있는 나만의 시공간 여행지를 얻게 되었다.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흔해 빠진 블로그에 수없이 도배되는 그렇고 그런 식당들은 과감히 생략해보자. 더 이상 한국 사람들끼리 줄지어 밥 먹는 대열에 끼일 필요가 없다. “어머! 이건 꼭 먹어야해!” 같은 남들의 구전도 흘려버리자. 그저 내 두 다리로 구석구석 홍콩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 사이에 슥~ 끼어앉자. 저렴하고 맛난, 동네식당 밥 한 끼 그냥 사먹어보자. “이런 재미 나말곤 아무도 모르지”라며 속으로 낄낄대며 낯선 세계의 골목을 구석구석 걷고 또 걸어보자. 그런 여행을 하다 보니 필자는 이제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구글맵 없이도 배낭하나 달랑거리며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루 15Km 이상 걷는 것은 기본이고, 그러기에 또 빠른 속도로 배도 고파져, 하루에 다섯 끼 정도는 가뿐히 먹어줄 수 있는 위장 소지자가 되었다.
물론 인맥 단절의 위험을 감수하며 필자 스타일의 여행을 강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도 맞고 위장의 크기도 맞는 여행친구를 얻기란 쉽지 않기에 이렇게 훌쩍 혼자 떠날 수 있는 여행에 익숙해지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여행은 우리 삶에 있어 나름의 비타민이 된다.
자, 이제 출발해 보자.
밤에 도착한 홍콩 공항은 밤 11시. 저렴한 공항리무진버스가 24시간 다니므로 차 끊길 걱정은 인천공항에 놔두고 오면 된다.
현지인 체험놀이의 시작은 출입국심사 때부터이다. 외국인전용심사대는 패스! 바로 무인 자동출입국심사대를 지나면 5분 만에 공항을 나선다.
모든 대중교통을 탈 수 있고, 편의점 물건구매가 가능한 옥토퍼스카드(Octopus card)를 공항에서 구매, 충전한 후 버스승차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린다.
첵랍콕(Chek Lap Kok)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에 버스로 즐길 수 있는 홍 콩 입성 3경이 있다.
1. 신기하고 재미있는 2층 버스 놀이 Tip: 반드시 2층의 맨 앞자리에 타자. 그 2층 버스가 꼬불꼬불한 길을 휘젓고 달리는 재미가 롤러코스터급이다.
2. 양편에 불쑥불쑥 펼쳐지며 시야를 덮치는 압도적인 고층아파트들의 열병식도 신기한 광경이다.
3. 구룡반도 해안에 펼쳐지는 세계 최대급의 항구와 배들. 이런 즐거움을 놓치며 비싸고 빠르기만 한 급행열차를 타는 건 바보짓이다.
2층 버스 공항리무진은 단돈 5,000~6,000원(한국에서는 1만5,000원이니 뭐 할말이...).
숙소에 도착 후 늦은 밤 현지 야식 한 끼로 입국신고식을 한다.
홍콩은 도심 어느 지역이건 주중이건 주말이건 24시간 먹거리는 지천이다.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루트. 도착 시기가 밤이라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좋다. 필자는 ‘몽콕(旺角)’의 어느 뒷골목 식당가를 거닐다가 느낌이 꽂히는 ‘아무식당’이나 들어가서 홍콩 먹방의 신고식을 치렀다. 사진의 한 끼 음식 가격은 스프와 밀크티까지 포함한 홍콩식 닭구이가 7,700원. 혼자 심야식당 2차도 한다. 족발, 야채국수가 6,500원, 심야야식 1, 2차를 단돈 1만5,000원으로 즐기고 첫날밤을 지낸다.
다음날 아침, 현지인들이 아침식사로 많이 먹는 어죽집을 찾아갔다.
중화권 사람들은 주로 아침식사에 죽을 많이 먹는다.
특히 죽에 ‘요우티아오(油)’라고 하는 꽈배기 모양의 튀긴 빵을 적셔 먹는 아침식사 문화를 갖고 있다. 광동지역인 홍콩은 바다가 인접하여 죽 중에도 어죽이죽여준다. 점심에는 드디어, 현지인들만 가는 딤섬집을 찾아갔다.
현지인 식당에서는 재미있는 그들만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이국적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홍콩은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고급식당이 아닌 이상, 식당 주인이 지정해주는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과의 합석이 기본이다. 처음 겪을 땐 당황스럽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불편했다. 그러나 이내(먹고 살아야 하니...) 적응하게 되었고, 그 장벽을 한 번 넘으니 또 다른 로컬식당의 깊고도 화려한 현지 동네 맛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여지 것 딤섬의 전부라고 알고 먹던 만두 형태의 것들은,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고 넓은 홍콩딤섬월드의 일부일 뿐이다. 딤섬 소쿠리들을 가득 실은 딤섬카트가 나오면 손님들이 각자 원하는 딤섬을 가져다 먹는 방식이다. 인기가 많은 딤섬은 먼저 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도 눈치작전으로 재빠르게 낚아채야 원하는 딤섬을 먹을 수 있다.
유의할 사항으로는, 관광객 식당이 아닌 현지인 딤섬집은 대부분 오후 5시가 넘어가면 딤섬시간이 끝나고 일반 홍콩음식 저녁식당으로 변한다. 딤섬시간 외 시간에 방문하게 되면, 입에 맞지 않는 로컬음식을 접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정말 입에 안맞을 수 있다.
현지 식당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위생. 자리 하나가 나면, 전 사람이 먹던 자리에 음식물찌꺼기 등을 행주로 스윽 한 두 번 밀어내고는 그대로 앉으라 한다. 테이블 위에 행주에서 나온 물기가 흥건히 남아 있기 일쑤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테이블 휴지나 흔한 화장지가 없다. 웬만한 현지인 식당에는 물티슈나 휴지가 비치되어 있지 않다. 갖다 달라고 해도 그냥 없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식당 문화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서 홍콩 여행 시에는 가방에 항상 물티슈와 마른 휴지를 넣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식당현장에서는 합석한 자리에서 혼자 테이블 닦고 어쩌고 하는 부산스런 깔끔을 떠는 것조차 쉽지가 않아, 비위가 약한 분들은 잘 유념해서 여행 준비를 하기 바란다. 그나마 다행히, 그런 이유에서인지 홍콩의 식문화에는 테이블 위에서 손님이 각자 자기 그릇을 닦는 문화가 있다. 그릇 닦기용 뜨거운 물을 별도로 따라준다. 이거 절대 마시면 안 되고 그릇을 닦아야 한다. 제일 큰 그릇에 내 식기류를 하나씩 넣고, 젓가락만을 사용해서 뜨거운 물에 휘휘 헹궈낸다. 필자가 보기엔 결국 이런 행위도 시늉에 불과한 것 같았으나, 그래도 문화체험 삼아 한국인 특유의 잰 손놀림으로 그릇을 닦아보는, 재미 아닌 재미도 경험해 보자.
또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필자는 고독한 미식가, 아니 고독한 대식가의 위장을 품고 현지인들의 저녁식당을 찾아 나섰다. 구룡반도의 한가운데쯤 삼수이포(Sham Shui Po)라는 지역을 찾았다. 구시가지인데, 서울의 북창동이나 옛피맛골 같은 느낌의 오래되어 칙칙한, 하지만 내공 깊은 홍콩 음식 역사들의 본산이 많은 지역이다. 특이한 것은, 길거리 포장마차 같은 식당이 많다는 것. 그럼에도 현지인들이게 높은 평가를 받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심지어 실외포차 같은 식당을 3대째 물려 받아가며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다. 컴컴한 길거리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현지인들과 어울려 먹는 홍콩음식들도 뭔가 새로운 체험에 대한 흥분을 일으켜주어, 용기 있게 자리를 잡고 옆테이블을 기웃거리며 주문을 시작한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3일째 아침.
다행히 비행기 시간이 저녁이라 아직 나에게는 두세 끼니의 기회가 더 남았다.
오늘 아침에는 저번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홍콩의 동네분식집을 찾아 서 현지인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해본다. 역시나 합석은 기본이다. 동네 분식집이라 글자 그대로 손님들은 100% 홍콩사람들로 북새통이다.
한 가족의 식사 테이블에 본의 아니게 끼어 앉게 되었지만, 씩씩하게 주문하고는 좁아터진 개인 공간을 가까스로 활용하여 빠른 속도로 빵과 밀크티를 입 속에 우겨넣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라도 이렇게 가까이 앉아 밥을 먹지는 않을 것 같을 만큼 초근접 밀착이다. 한 테이블에 현지인들과 같이 앉아 먹는다. 서로 시선충돌 방지를 위해 상하좌우로 안구운동을 하며 음식들을 흡입하듯 먹고는 간신히 몸을 빼어 식당을 빠져 나왔다. 음식 맛보다는 체험의 재미를 얻었다는 위안을 하며 부족한 식사량을 마저 채우러 다시 근처의 로컬 시장을 찾았다.
이상하리만치 중화권에서는 날씨도 더운데 어디서나 이렇게 상온에서 생육을 판매한다. 예전에는 냉장시설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현재에도 이런 형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고기가 매우 신선함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 같다.
시장 사람들은 보통 어디에 가서 밥을 먹는지 궁금해 하며 재래시장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마침 한 무리의 시장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을 발견하고 필자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나 이런 곳에까지는 영어메뉴가 없다. 최종 음식이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로, 손짓 발짓으로 주문을 하고는 그저 주는 대로 먹었다. 복불복 게임처럼 그렇게 주문해서 먹는 나름의 묘미도 즐겁다. 그렇게 두 번째 식사를 느긋하게 마치자 벌써 공항으로 향해야 하는 시간. 다음 번 홍콩여행은 홍콩 근교 섬투어로 정해볼까, 럭셔리 식당투어로 정해볼까 고민을 하며 첵랍콕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2층 버스에 다시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