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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파리 로댕미술관 정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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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작은 미술관에서 만나는 위대한 예술가 이야기
안성규 프랑스 미술관 국가 공인가이드

 

파리에서 가이드를 하면서 필자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가이드님은 파리에서 어디를 가장 좋아하세요?”다. 많은 여행객이 남들 다 아는 주요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이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한다. 아마도 그 곳에서 파리의 삶을 좀 더 가깝게 느껴보고 싶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과거에는 가이드만 알고 있는 숨겨진 맛집, 숨겨진 골목길, 핫한 매장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까페, 인스타를 비롯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런 비밀스러운 장소는 의미가 없어졌다.

 

가이드보다 더 많은 최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관광객들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로댕 미술관이 우선순위에서 빠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14년째 파리에 살고 있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인 로댕 미술관. 한적한 곳에서 잠깐의 휴식이 필요할 때, 새로운 영감이 필요할 때 필자는 로댕 미술관의 정원을 산책한다.

 

 

알록달록한 꽃들과 깔끔하게 정리된 조경, 그리고 그 속에 전시되는 조각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이 곳을 산책하다 보면, 로댕이라는 조각가의 위대함 앞에 삶의 무겁고 복잡했던 문제들은 작아지고 좀 더 여유로워진 정신 안에 영감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서양미술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로댕. 오늘은 미술관 정원에 세워진 그의 초창기부터 말년까지의 주요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가 위대한 예술가인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로댕의 위대함 #1
모든 것을 내놓고 명예만을 얻고 떠난 사람

로댕 미술관은 처음에 가발 상인의 저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는데 루이 14세의 며느리인 멘느 공작 부인(Duchesse du Maine)이 거주하면서 로코코시대 사교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그녀가 1753년 세상을 떠난 후 저택의 소유주는 프랑스 전쟁 영웅인 비롱(Biron) 장군이 되고 이때 저택 정원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 때부터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오늘날까지 이 건물의 이름은 ‘비롱 저택(hotel Biron)’이라고 불리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대중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파리에 파견된 교황의 대사 및 러시아 대사관저, 그리고 수도원 여학교 등으로 사용되다가 결국에는 예술가들에게 싼 값에 세를 주는 아틀리에가 된다. 이 곳에서 로댕도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그 중에는 윤동주 시인이 동경했던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있었으며 그는 로댕의 비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11년 프랑스 정부의 계획에 따라 비롱저택은 철거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로댕은 그것을 막고자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나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한다. 여기에는 석고상, 대리석상, 청동상, 석상, 데생, 그리고 예술가와 장인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내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골동품들이 포함된다. 나는 이 모든 소장품을 비롱저택에 전시해 이곳을 로댕 미술관으로 정하고 내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줄 것을 국가에 요청한다.” - 오귀스트 로댕

 

모든 작품을 기증한다는 로댕의 제안은 1916년이 되어서야 정부에 받아들여졌고, 1917년 그의 죽음 이후 1919년 로댕 미술관으로 개관한다.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7천여 점의 조각, 1만여 점의 데생, 이 모든 작업을 아낌없이 내놓고 명예만을 얻고 떠난 로댕이기에 미술관을 찾는 자들은 더 큰 감동을 선물로 받는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현대 세계로의 큰 전환이 이루어지는 대변혁의 시기 속에서 영원한 예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한 조각가의 위대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도 작품 감상을 통해 그 가치를 함께 지켜 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로댕의 위대함 #2
지옥의 문이 미완성이라는 사실, 그 자체

장식조각 생활을 20년이나 하며 배고픈 무명 시절을 보낸 로댕은 1875년, 그의 나이 35살에 살롱전에 입선하여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그 곳에서 미켈란젤로 조각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영감을 얻는다.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을 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사실적인 표현을 하기를 원했고, 인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나는 항상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내부의 감정을 표현하려 애쓴다” - 오귀스트 로댕

 

파리로 돌아온 이후 로댕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1880년 프랑스 정부가 새로 건립하기로 한 장식미술관의 입구를 로댕에게 의뢰한 것이다. 로댕은 자신이 평소 즐겨 읽던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하여 돋을새김으로 제작을 하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지옥의 문>은 1917년 로댕이 죽을 때까지 계획된 장소에 세워지지 못한다. 1900년도 만국박람회를 맞이하면서 장식미술관 부지에 오르세 기차역(현 오르세 미술관)이 들어서는 계획으로 수정이 되어 본래의 계획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그의 개인적인 작품이 되어 그가 죽는 날까지 미완성으로 남게 되는데 전 세계 여러 미술관에 존재하는 <지옥의 문> 청동 작품들은 모두 그의 사후에 제작된 것이다. <지옥의 문>은 우선 점토로 작게 제작된 200여개의 작은 조각상들을 다시 석고로 제작하고, 그 후 형상을 첨가하거나 떼어내는 등 끊임없는 수정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 작은 조각상들은 후에 청동이나 석고, 대리석으로 독립되어 제작되기도 했다. <생각하는 사람>, <우골리노>, <돌아온 탕자>, <세 그림자>, <키스> 등의 작품이 이 <지옥의 문>에서 시작되어 나중에 독립상으로 제작된 대표작들이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을 주제로 삼았는데, 그 내용은 단테가 고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을 방문하여 처절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는 이야기다. <지옥의 문> 속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인간 군상이 얽히고 설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각각의 요소가 신곡의 모든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지옥의 분위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들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문과 함께 녹아 흐르는 듯한 표현방식을 통해 그는 온 우주를 창조하고자 했으며 인류의 모든 감정과 정념을 나타내고자 했다.

 

 

로댕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 작품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옥의 문은 로댕에게 있어 그의 예술세계를 형성해 가는 열쇠였기 때문에 그의 변화하는 영감은 이 작품에 적용되어 조각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20년을 매달렸지만 완성시키지 못했기에 지옥의 문이라는 모태는 수많은 완성된 다른 창조물들을 낳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지옥의 문은 로댕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그의 인생이 담겨져 있는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이다. 지옥의 문이 미완성이라는 것은 그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작품 창작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미완성이라는 그 자체가 로댕의 위대함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손보다 클까 말까 한 수백점의 인물상에 인생의 모든 정념, 온갖 쾌락의 절정, 갖가지 악의 무거운 짐을 담아냈다.그는 온몸을 비벼 대며 동물처럼 바짝 달라붙어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깨물면서 한 마리의 짐승처럼 뒤엉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육체들을 창조했다. 그 육체들은 얼굴처럼 귀를 기울이고, 무언가를 집어 던지려는 팔처럼, 육체의 사슬처럼, 화환과 덩굴손처럼 뻗어 나가고 있다. 고통의 뿌리로부터 악의 즙이 솟아오르는 인간들의 군상이 거기 있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댕의 위대함 #3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낸 로댕의 사유

로댕하면 첫번째로 딱 떠오르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저 근육질의 남자는 무슨 생각을 저리도 골똘히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어린시절부터 이 작품을 떠올리면서 한 번쯤 해 보는 생각일 것이다. 사실 엉뚱한 대답을 상상하기엔 한계가 있다. <지옥의 문>을 보면 상단부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단테, 혹은 로댕 자신으로 해석되는 이 형상을 로댕은 큰 사이즈의 작품으로도 제작했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엄청난 힘을 가진 한 남자가 인간의 죽음과 운명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남긴 본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깊이 있는 감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뇌가 되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거칠면서도 꿈틀거리는 듯한 근육에서 긴장된 힘이 느껴진다. 미술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 작품 앞에서 조각의 자세를 따라하며 사진을 찍는데 막상 완벽하게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비슷하게 했다 하더라도 몸이 꼬이면서 힘겨워한다. 일반적으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편한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확실히 받았음을 보여준다. 왜곡이 있는 포즈이고 과장된 근육이지만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성질, ‘사유’를 강조하고 있다. 즉, 모든 힘을 다해 사유하는 한 남자의 온 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 근육질 안에서 꿈틀거리는 혈관의 피가 뇌가 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보다는, ‘생각이 육체로 표현된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 위대한 사유를 해낸 로댕 역시 진정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로댕의 위대함 #4
세상의 소리보다 내면의 소리에 대한
확신으로 새 시대를 여는 리더

1347년 백년전쟁 시 프랑스 북부 칼레(Calais)시는 영국군에게 완전히 정복당한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도시를 위해 대표로 희생할 여섯 명이 있다면 그들만 죽이고 나머지 시민들을 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도시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로 결정한 여섯 명의 영웅들, 그들은 모두 도시의 상위계층들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로댕이 제작한 작품이 건립 추진 위원회가 바라는 영웅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여섯 명의 사람들. 그러나 로댕의 내면의 소리가 말하는 영웅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현실성을 가진 인간들의 모습이었고, 그 공포와 절망을 딛고 한걸음 내딛는 인간들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어 로댕은 이 작품으로 인해 더욱 위대한 조각가의 반열로 올라가게 된다.

 

로댕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대작들을 보면 그것이 발표되었을 당시 큰 이슈가 되었고 때로는 스캔들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작품을 의뢰한 측과 갈등이 생겨 많은 공격을 당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조금 흘러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결국 로댕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못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발자크>상이다. 이 작품은 1891년 프랑스 문인협회의 회장이었던 에밀 졸라가 이 모임을 창설한 대문호 발자크를 기리고자 의뢰한 기념상이었다.

 

 

로댕은 이 일을 맡은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으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그는 발자크의 고향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육체와 개성을 파악해 갔으며 발자크의 작품을 탐독하며 인물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이정도의 노력을 했다면 이를 바라보는 문인협회에서는 얼마나 큰 기대를 했었을까? 그러나 마감기한을 결국 지키지 못하고 처음 살롱전에 출품된 발자크의 석고 조각은 충격 그 자체였으며 심한 혹평을 받는다. 문인협회뿐만 아니라 대중, 기자들까지 ‘상식을 벗어난, 뚱보, 괴물, 거대한 태아’ 등으로 비난을 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에 대해 로댕은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만일 진실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면 후세인들은 나의 <발자크>를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영원한 것이므로, 나는 나의 작품이 받아들여지리라 장담할 수 있다. 사람들이 비웃는 이 작품, 마음먹은 대로 부수기가 여의치 않으니까 기를 쓰고 조롱하는 이 작품은 나의 필생의 역작이며 미학적 동력이다. 이것을 창조한 날부터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 오귀스트 로댕

 

미완성같은, 소위 덜떨어지게 생긴 듯한 발자크상에 대해 쏟아지는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저 자신감 넘치는 로댕의 말은 그에게 들려오는 강력한 내면의 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작품에 대해 릴케는 아래와 같이 코멘트를 남겼다.

 

“풍성한 머리털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 열정으로 끓어오르는 얼굴, 그 얼굴은 근본적인 힘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생산적인 힘으로 넘쳐흐르는 발자크, 시대를 창조하고 숱한 운명을 쏟아 낸 사람의 얼굴이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댕을 사로잡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발자크 내면의 힘, 그의 에너지였던 것이다. 그 넘쳐나는 힘을 표현하고자 인물의 외형을 모방하지 않고 파격적인 단순화와 왜곡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19세기가 저물어가고 20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회화의 영역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빛의 순간성을 담아내며 사물의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인상주의도 무르익어갔는데 지베르니에서 활동하던 모네의 수련그림도 점점 추상에 가까운 형태를 띠어 갔다. 사과정물로 유명한 세잔은 대상을 단순화시키며 사물의 본질을 이끌어내는 시도로 피카소의 등장을 예고했다.

 

 

지금은 리노베이션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2년 전까진 오르세미술관 인상주의 전시실 마지막 공간에는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 시리즈와 로댕의 <걷는 사람>이 함께 전시가 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에서는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성당의 일부분’이, 로댕의 조각에서는 ‘얼굴 없는 사람의 모습’이 단순화되어 표현되는데 두 작품 모두 어떤 ‘형태의 일부분’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1840년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두 예술가가 조각과 회화 각각의 영역에서 현대예술의 길을 열어주는 리더가 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발자크상으로 인해 로댕이 공격을 당할 당시 모네가 로댕에게 쓴 편지를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실컷들 떠들라고 하십시오. 당신은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았으니까요.” - 클로드 모네

 

결론. 로댕의 위대함은 새로운 영감을 준다
아름다운 로댕미술관의 정원은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편안한 사유의 환경을 마련해 줌과 동시에 영감의 원천이 된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 목표를 정해 놓고 끈질지게 나아가는 집념, 깊게 생각하는 사유의 힘,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기 확신. 오늘 이야기한 이 네가지 요소뿐만 아니라 무한한 생명력, 순수함, 격정, 자유로움, 섬세함을 품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 안에서 우리는 조각가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다. 파리에 방문하면 꼭 로댕미술관에서 여유있는 산책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한다. 독자 여러분 자신이 또 한 명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파리 여행의 큰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 되리라 필자는 확신한다.

 

 

글 사진

안성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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