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 시절 구강진단학 첫 시간의 첫 번째 슬라이드는 진단(diagnosis)의 어원이 dia=through + gnosis=knowledge라는 이야기로 시작되면서 진단이란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해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두 번째 슬라이드는 “진단(診斷)이란 정상적 구조와 기능에서 벗어난 어떤 이상상태 또는 질환을 적절한 진찰, 검사 및 판단 과정을 통해 입증해 내는 임상의의 특수한 의학적 능력이며 기술”이라고 정의된다고 강의를 들었다. 즉 진단을 하는 것은 의사의 경우 의학적 지식을 통해서 이상상태나 질환을 입증해 내는 특수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의사의 경우에는 한의학적 지식을 통해서 동일한 과정을 시행할 것이다.
다른 이야기 하나를 해 보겠다. 일반인들이 가장 이해가 어려운 글 중에 하나가 법원의 판결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한문이 너무 많아서 읽기가 어렵고 한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읽다가 중간에서 무슨 말인지 잊어버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내가 아는 단어의 ‘선의’는 그 선의가 아니고 ‘악의’도 일반적인 악의가 아니다. 한글로 써 있는 판결문을 받아보아도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다라고 말할 정도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자가 아니지만 분명 한글로 써 있음에도 이런 외계어가 따로 없고,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판례라고 찾아서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내용을 몰라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대법원에서 한의사가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 해당 의료기기의 특성과 기기 사용에 필요한 지식, 기술 수준을 고려해 볼 때 동 기기의 사용이 환자에게 위험성이 없고, 기기를 사용한 해당 의료행위가 한의학적 의료행위와 무관한 것이 명백하지 않다면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진단이라는 것은 결국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 내에서 환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의학적 지식과 한의학적 지식은 다르다. 같다면 지금과 같은 의료이원화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서로 다른 지식을 통해서 내려야 하는 진단이므로 그 과정과 해석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데 무관하지 않다면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초음파 의료기기의 사용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간단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초음파 영상은 기계만 대면 나올 수야 있고 엑스레이도 찍으면 영상이 나온다. 그런데 영상치의학에서 농담 같은 진리 중 하나는 ‘모르면 안 보인다’이다. 병소가 아무리 뚜렷하게 영상에서 보여도 모르면 전혀 보이지 않고 이상소견으로 판단되지 않아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오진을 내리게 된다.
진단을 위한 기본진찰인 시진(視診), 촉진(觸診), 타진(打診), 청진(聽診)은 가장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사항이다. 이 기본진찰이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기본진찰을 통해서 어떤 검사를 할지를 결정하고 또는 어떤 판단을 하게 되므로 기본적이지만 제일 중요한 과정이다. 위험성이 없다고 해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진찰을 해서도 안 되고, 의료인이라고해도 면허범위를 벗어나는 진찰을 해서는 안 된다.
요새 가끔 나오는 금일(今日)이 금요일(金曜日)이 아니고 사흘이 4일째가 아닌 것처럼 판결문을 받으면 읽을수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즉 글이든 영상이든 해석이 가능해야 하고 완벽하게 이해를 해야 하고 그것을 근거로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 한의사가 의료인이기 때문에 영상을 판독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한의학적 지식을 통하는 것도 아니고, 글로 비유해 보면 실제는 읽지도 못하지만 이제 겨우 읽을 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 글의 문해가 가능하다고 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아주 심각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