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편집인이 된 지 어느덧 3년이 되어 마지막 칼럼을 쓰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원래 치과신문 사설이었던 이 칼럼은 백과사전의 ‘사설’ 정의와 같이 우리 치과신문의 주장을 실어 펼치는 논설이었다. 이전의 ‘사설’은 편집인을 중심으로 치과계 내의 활동을 비판하거나 칭찬하고 논평해왔지만, 필자의 이름이 빠져 ‘누가 어떤 주장을 펼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러한 의문에 당당하게 편집인의 이름을 걸어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 편집인칼럼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는 해에 시작하여, 치협의 기원, SIDEX 개최 당위성, 치과 개원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전문지의 중요성, 불법 병의원들에 대한 논평, 치과의사전문의제도, 의료인 면허 관련 논란, 디지털 덴티스트리, 수가협상, 보조인력 문제, 무리한 비급여의 급여화, 대의원총회의 위상, 치협 정관에 대한 준수요청, 제2차 구강보건사업 등 치과의사들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를 최전선에서 접하며, 치과의사들의 의견을 담아 주장을 펼쳐왔다.
편집인이 되기 전 치과공보의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2006년부터 젊은 치과의사들이 개원가에 진입하면서 가지는 어려움, 치과의사전문의제에 대한 기수련자들의 입장을 전달하고자 칼럼을 써왔다. 그럼에도 임기가 있는 언론인으로서 시야도 넓지 않고 아마추어라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10여년 이상 개인 칼럼을 써왔음에도 신문 전체의 생각을 담는 사설은 강한 부담감으로 다가와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매호마다 새벽까지 머리를 싸매기 일쑤였다.
첫 아이가 태어난 순간에도 신문제작을 위한 마감을 위해 자리를 지켰다는 치과신문 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진심과 진지함에 대해 의아했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 저녁 짜장면을 먹으며 애정을 다해 멋진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집국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소속 임원의 입장을 떠나 일반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봐도 멋있는 모습들의 순간이었다. 매호마다 내 곳간을 채우듯 성실하게 열심히 광고를 채우고 밥 한 끼를 먹어도 내 돈같이 아끼는 광고국의 애정에 감탄했다.
치과의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려 노력하고, 강한 주장이 담긴 광고나 어려운 측면이 있는 기사 단 한 줄에도 여러 면에서 심사숙고하는 편집국의 모습은 일반 치과의사들은 알기 어려운 소중하고 멋진 단면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3년간 편집인으로서 치과신문 편집국의 일원이 될 수 있었음에 매사 감사했다.
원장실에서 몇 안 되는 직원들과 병원 문 안에 갇혀, 환자를 기다리면서 살다 보면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인 곳이 치과계다. 지난 3년간 우리 치과의 문을 벗어난 치과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치과계 경계를 벗어난 의료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 안에서 의료계는 어떤 시각으로 보여지는지 다각적으로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 예컨대, 정부의 비급여 관리대책을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무얼 원하는지, 앞으로 수년 내에 어떤 단계를 밟아 무얼 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치과계에 기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안을 가지고 많은 생각과 시각, 그리고 예측되는 바를 담아 여론을 실제로 움직이게 해야 성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치과계 최고 편집국의 일원으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수 있었던 지난 3년의 시간이 치과의사 독자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길 바랄 따름이다.
치과신문은 원숙미를 더해가며 발전하고 있다. 신문이 담는 생각의 외연은 넓고 깊어지며 시각은 보다 더 예리하고, 이를 담은 펜 끝은 길게 써내리지 않지만 무겁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우리 편집국이 지난 시간 동안 매호 다른 표지와 다른 시각을 가지며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부족하고 모자랐던 치과신문 편집인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간 독자 여러분과 치과신문이 주신 기운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치과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세를 잃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며, 마지막 칼럼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