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많은 선택을 해야 하고 일상이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지인이 본인의 인생 책이라고 추천한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 소설로 처음에는 다소 두꺼운 분량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다. 책은 자유인이라 할 수 있는 조르바가 펼치는 삶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조르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꼽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젊은 지식인 ‘나’가 크레타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60대 노인이지만 거침이 없는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친구에게 ‘책벌레’라는 조롱을 받은 후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해 크레타섬의 폐광을 빌린 ‘나’에게 조르바는 좋은 동반자가 된다. 이후 조르바와 크레타섬에서 함께한 생활이 펼쳐진다.
조르바라는 주인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렵지만 참으로 매력적이면서 기이한, 요새 말로 독보적인 캐릭터다. 보는 사람에 따라 미친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현자로 보기도 한다. 그는 거칠며, 고민 따위는 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섬세히 잘 이해하고, 이해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는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을 잘 이해하는 행동을 한다. 우리는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는 그를 보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고민이 많은 나의 곁에 조르바 같은 인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조르바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생각이 끝이 없는 ‘나’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로 인해 현재의 나의 자유가 속박당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 대해 충실할 뿐인 조르바의 삶은 산투르라는 악기에 투영된다. 그는 산투르에 빠져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랑 음악가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조르바는 자신이 죽는 최후의 순간에 ‘나’에게 산투르를 유품으로 남기며 자유에 대한 조언을 상기시킨다. 매 순간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자신처럼 진정한 자유를 느끼라는 의미일 것이다.
필자는 전형적인 등장인물인 ‘나’와 비슷한 성향이다. 항상 머릿속에 선택의 동전을 가지고 다니며, 이렇게 선택하면 손해를 볼 수 있으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성향이다. 그래서인지 조르바의 마지막 조언은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조르바 덕분에 삶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며 답답했던 일을 조르바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니, 주위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르바와 같은 성향으로 그냥 두려고 한다. 한가지 이유는 내가 말해서 고칠 거라면 진작에 고쳤을 것이고, 다른 이유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게 아니라 조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이기에 나는 자유로운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알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것 같다.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 자유는 정보와 지식을 통해 얻은 것이다. 내가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의 반대는 어리석음이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조르바의 이 말이 마지막으로 가슴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