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국회 인사청문회나 상임위원회를 보노라면 상식의 벽을 과감히 뛰어넘는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곤 한다. 예전에는 잘못한 일이 밝혀지면 양심상 찔려서 주춤하는 모양새라도 보이던데 이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오히려 적반하장식 안면철판 신종 트랜스포머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예전 자신이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면서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아랫사람들에게 잘못을 떠넘긴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극우 집단의 시각으로 무장하여 한 자리 차지하고 나선다. 임명권자의 눈에 더욱 들기 위해서.
반면 사회 곳곳에서 올바름을 위해 출세의 길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해고당하고, 좌천되고, 법적 소송에 휘말리고. 어떤 이들은 고난의 길에서 병마를 얻어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불이익을 알면서도 부하를 위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 청탁과 외압에 결연히 맞서는 사람, 회유와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사람.
우리의 독립투사 선조들이 이보다 더 결연하게 살지 않았을까? 더 결연하게 죽기를 결심하지 않았을까? 10년마다 강산이 변한다는 긴 세월을 세 번이나 겪으며 그 당시에 과연 일본이 사라진다고, 조선의 국권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안락함을 등진 채 가망성 없는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초를 겪으면서.
36년의 일제 수탈의 역사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비극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잔재와 피해가 지금까지도 흘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혜택을 누리고 동족을 핍박했던 ‘기회주의자’들이 자자손손 부와 권력을 누리고 살아왔다. 또한 교육의 최상층을 차지하며 후대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계속 심으려 했다. 그들 가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는다는 인류의 보편타당한 진리를 영화의 반전처럼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한다. 잘못을 했다면 출세길이 열리고 잘못이 가중되는 대로 그에 상응하는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일벌백계하지 않은 어설픈 화합이 지금까지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필자는 개인적인 친분이나 국제교류 면에서의 일본과 정치적·안보적 야욕을 가진 극우 일본에 대해서는 구분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현실적이고, 한편으로는 주권국이 가져야 하는 자세인 것이다.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국가의 정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무수한 공무원들을 뽑아놓고 영혼이 없는 듯 위에서 명령한 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조선이 국권을 상실했을 때를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옛날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은 마치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역사는 드라마 세트장처럼 최신식의 환경으로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세계적 관심과 찬사를 받는 K-한류를 뒤로 한 채 100여년 전 환영을 되살리려는 이들은 과연 어느 나라의 국민인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아름답지 못한 역사를 가졌다고 해도 역사는 역사이며 사실이다. 후손들에게 최소한 흑역사의 반복은 남기지 말아야 하지 않나. 희한한 광복절을 지나고 느낀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