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 때문일까? 의료봉사를 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주지훈 원장은 다르다. 봉사를 위해서라면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더 많은 의료인의 참여를 유도한다. 봉사에 대한 주지훈 원장의 생각, 계획, 자세는 소위 말하는 ‘전투적’이다. 스케일도 남다르다. “뜻 깊은 일을 할 테니 지원해 달라.” 국내의 한 대기업으로부터 이동 진료가 가능한 5억 원 상당의 버스까지 지원받았다.
치과의사가 ‘도둑놈’이라고?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치과의사에 대한 국민 인식을 바꿔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국민의 구강건강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수입을 거둔다는 이유로 ‘도둑놈’으로 취급받기 일쑤였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치과의사들이 모여 뜻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치과의사들의 선행이 언론을 통해 아무리 알려져도, 국민들의 인식은 ‘도둑놈’이었다. 주지훈 원장에게는 적지 않은 시련이었고, 충격이었다. 인식 개선을 위해 주지훈 원장이 선택한 길은 비수익사업과 수익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었다. 비수익사업이란 인술을 펼치는 무료 진료봉사였고, 수익사업은 대규모 봉사를 위한 수익창출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제니튼이다.
“10년, 20년 묵묵히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선배님들도 물론 계시지만, 돈이 없으면 봉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해피 스마일 치과버스 운영비만 해도 연간 5,000만원에 달합니다. 결론은 수익사업도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익사업이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적자를 내고 있는데, 봉사는 해야 하고.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경영상태가 안정권에 접어들어 봉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니튼을 통해 거둔 수익은 봉사에 적극 활용된다. 수익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수익 전액을 봉사에 투입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영상태가 좋아져 기업 후원과 제니튼 수익을 50대 50 비율로 봉사에 사용하고 있다. 또 봉사에 제니튼의 수익금을 투자하는 것은 기업들의 후원을 이끌어내는데도 효과적이다.
“‘우리는 진료 봉사만 할 테니 돈은 기업에서 대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우리가 번 돈의 이만큼을 봉사에 투자하고 있으니, 기업들도 동참해야 할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할 때 기업들의 참여도 늘어납니다. 사회공헌에 대한 치과의사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다문화가정 대상, 매월 두차례 방문진료
“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치과의사 한 명이 돌볼 수 있는 환자도 한정돼 있고, 마음 맞는 치과의사들이 모여 찾아다니는 진료 봉사를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찾아가는 이동 진료. 좋은 아이템이었다. 문제는 진료가 가능한 버스였고, 돈이었다. 주지훈 원장을 비롯한 뜻을 함께 한 치과의사들은 10곳이 넘는 국내 대기업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지만, 선뜻 동참의사를 표하는 기업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대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직접 나섰습니다. 기업으로 찾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회공헌 프로젝트 중 우리의 사업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했습니다. 기업의 선별 과정을 거쳐 지원을 약속받기까지 2개월이 걸렸습니다. 실제로 버스를 지원받기까지는 1년 이상 걸렸습니다. 진료를 위한 버스 개조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기 위한 인테리어 등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버스를 지원 받은 주지훈 원장은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참여의사를 밝힌 치과의사로부터 체어를 비롯한 의료장비, 재료 등을 기증받아 진료가 가능한 환경 구축에 나선 것. 지금은 체어 2대가 설치돼 있는 어엿한 ‘이동 치과 진료소’가 됐다.
“여성가족부 산하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협조를 받아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매달 2번씩 버스를 타고 진료에 나서는데, 같은 곳으로 2번씩 갑니다. 재진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재진으로도 치료가 안되는 경우에는 치과병원으로 따로 불러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해피 스마일 치과버스의 무료 진료 스케줄은 연단위로 결정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협력을 통해 1년 동안의 스케줄을 확정한다. 지난 달에는 두 차례에 걸쳐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센터를 찾았고, 이번 달에는 금천구로 향한다. 이렇게 해피 스마일 치과버스의 혜택을 받는 아이들은 연간 500명에서 600명에 달한다.
봉사!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듯이, 봉사도 마찬가지더라고요.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가장 큰 문제는 주차공간입니다. 일반 버스가 아니라 리무진 버스다 보니 보다 넓은 장소가 필요합니다. 인근 교회, 초등학교, 아파트 등에 협조를 구하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장소를 구하지 못해 도로 상에서 진료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주 원장의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다. 도움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봉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턱 없이 부족한 봉사 인력이다.
“다문화가정이라고 해서 모두가 불우한 것은 아니더라고요. 여유롭게 사는 가족도 많습니다.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지만, 정말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측에 선별과정을 거쳐달라고 지속적으로 얘기는 하고 있지만, 민원이 제기된다는 이유로 이 또한 어려운 실정입니다.”
“부족한 봉사 인력도 문제입니다. 20여명의 치과의사들이 돌아가며 진료를 펼치고 있습니다만, 치과위생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직 홍보가 덜 돼 참여하고 싶어도 못하는 의료인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해피 스마일 치과버스를 알리는 데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문의 : 1599-8344
전영선 기자/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