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치과의사 록밴드 ‘모노크롬(MONOKROM)’이 다음달 11일 홍대 드림홀에서 정기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모노크롬은 경희치대 밴드 ‘Molars’ 출신 선후배들이 모여 지난 2013년 6월 결성한 록밴드로, 매년 정기 단독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모노크롬은 우홍균 원장(예인치과)이 보컬을 맡고, 리드기타 이수옥 원장(청담네오플란트치과), 키보드 김민실 원장(고운이라인치과), 드럼 곽호정 원장(테라스치과), 베이스기타 정성욱 원장(정성욱치과) 등으로 멤버가 구성돼 있다. 이수옥 원장은 “모노크롬은 전자사운드와 락사운드가 융합된 하이브리드 록을 지향 한다”며 “멤버들 모두 40대지만 90년대 이후 뉴메탈, 신스팝, 프로그레시브락부터 60년대 아트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섭렵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노크롬 사운드 완성도는 꽤 높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옥 원장은 “연주의 기술만 연마하기보다 한 곡 한 곡 소리의 빈틈을 없애려 노력한 흔적이 보일 정도로 모노크롬은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않고 평생 음악을 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에는 개그맨 정종철이 이끄는 비트박스 크루 ‘비트파이터’의 특별 찬조출연도 예정돼
한국치아은행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엄인웅 원장(서울인치과)이 지난달 24일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회장 이종호·이하 구강외과) 학술대회에서 학술지 공로상 금상을 수상했다. 구강외과학회는 매년 정기총회에서 구강외과학회지 국제화에 공헌한 연구자 2명을 선정해 학술지 공로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번에 금상을 수여한 엄인웅 원장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자가치아뼈이식재(AutoBT)’의 임상데이터를 지난 6년간 축적, 해외 SCI(E)급 논문 총 13편을 발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엄 원장이 발표한 논문은 ‘다양한 골 이식에 사용되는 자가치아뼈이식재의 안전성과 효능 및 골형성단백질(rhBMP-2)을 전달체로 사용한 Dentin matrix의 효과’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엄 원장의 논문은 △Journal of Hard Tissue Biology △Oral Surg Oral Med Oral Pathol Oral Radiol △Journal of Periodontal Implant SCI △Journal of Oral Implantology 등에 게재됐다. 엄 원장은 논문들은 한국치아은행의 ‘자가치아뼈이식재’가 지난해 보건
김수관 교수(조선치대 구강악안면외과학교실)가 지난 7일 열린 대한인공치아골유착학회(회장 정문환·이하 KAO) 평의원회의에서 제1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에 김수관 교수는 지난 16일부터 앞으로 1년간 KAO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김수관 신임회장은 “조선대학교 구강생물학연구소장 및 편집장직을 수행하면서 교내 연구소지를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지로 선정되도록 한 경험을 바탕으로 KAO 학회지의 수준을 끌어올려 임플란트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신임회장은 지난 1996년부터 조선치대에 재직하면서 제9대 대한레이저치의학회장, 제7대 대한국제임플란트학회(ICOI Ko- rea)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대한턱관절협회장 △대한치과감염학회 차기회장 △세계초음파악안면수술학회(WAUPS) 부회장 △대한스포츠치의학회 부회장 △치과용정밀장비 및 부품기술혁신센터장 △(사)한국RIC협회 광주지역협회장 △(사)자평 이사장 △대한치과의사협회 수련고시이사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신종학 기자/sjh@sda.or.kr
치과위생사로서는 처음으로 국무총리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지난 7일 열린 제44회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는 국민건강 향상을 위해 애쓴 유공자들에 대한 각종 시상이 진행됐다. 특히 이날 시상식에서는 치과위생사로서는 처음으로 황윤숙 교수(한양여대 치위생과)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황 교수는 국민구강보건 향상을 위해 구강보건 교육시스템 개발 및 각종 산학협동사업을 펼쳐 구강보건 역량 강화의 공을 인정받아 이번 국무총리상 수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윤숙 교수는 공중보건에 관심을 갖고 방문보건, 국가자문활동, 보건인력개발원 우수강사 등 국민구강보건 관련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종학 기자 sjh@sda.or.kr
“김종범 원장님 사진은 없는데요.” 김종범 원장의 진료봉사 사진을 요청했을 때, 서초구 보건소 관계자가 한 대답이다. 김종범 원장의 사진이 없는 이유는 사진을 촬영할 경황이 없다는 것. 거부반응이 심한 중증장애인을 전담해서 치료하는 김종범 원장이기에 사진을 촬영할 시간조차 없어 그간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17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봉사서초구 보건소 장애인치과는 1996년 개설됐다. 故 기창덕 박사의 건의로 서초구 보건소에 장애인치과가 설립됐고, 김종범 원장은 개설된 1996년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 달에 두 번씩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대학에서 소아치과를 전공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장애인도 치료를 많이 했었죠. 지금은 돌아가신 기창덕 박사님의 권유로 장애인치과에서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1995년 개원을 했던 터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대학교에서부터 장애인들을 치료한 경험이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10년만 해보자는 마음에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는 김종범 원장. 하지만 10년을 훌쩍 넘겨 17년째 봉사를 하고 있다. 김종범 원장은 이제는 20년을 목표로 봉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원이라는 곳이 있다.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새터민(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하나원에서는 새터민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하나의료원을 운영하고 있고, 기세호 원장은 매달 한 번씩 경기도 화천에 있는 제2 하나원에서 새터민들을 돌보고 있다. 최근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통일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봉사의 시작 ‘배운 지식 베풀자’“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린치과봉사회(회장 김성문·이하 열치) 활동을 하면서 시작하게 됐죠. 사실 열치가 처음부터 봉사단체는 아니었습니다. 마음 맞는 치과의사들이 모인 일종의 친목단체였는데, 인원도 점차 늘어나면서 뜻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친목모임에서 발전한 봉사회. 기세호 원장을 비롯한 열치 회원들은 인천 남동공단 무료진료봉사를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본격적으로 봉사를 하게 된 것은 당시 문래동에 위치한 자유의 집에서 노숙자들을 진료해주는 것이었다. 문래동 자유의 집은 장안동으로 옮기면서 비전트레이닝센터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곳에서도 열치의 봉사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배운 지식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 때문일까? 의료봉사를 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주지훈 원장은 다르다. 봉사를 위해서라면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더 많은 의료인의 참여를 유도한다. 봉사에 대한 주지훈 원장의 생각, 계획, 자세는 소위 말하는 ‘전투적’이다. 스케일도 남다르다. “뜻 깊은 일을 할 테니 지원해 달라.” 국내의 한 대기업으로부터 이동 진료가 가능한 5억 원 상당의 버스까지 지원받았다. 치과의사가 ‘도둑놈’이라고?“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치과의사에 대한 국민 인식을 바꿔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국민의 구강건강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수입을 거둔다는 이유로 ‘도둑놈’으로 취급받기 일쑤였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치과의사들이 모여 뜻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치과의사들의 선행이 언론을 통해 아무리 알려져도, 국민들의 인식은 ‘도둑놈’이었다. 주지훈 원장에게는 적지 않은 시련이었고, 충격이었다. 인식 개선을 위해 주지훈 원장이 선택한 길은 비수익사업과 수익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었다. 비수익사업이란 인술을 펼치는
나에게 찾아온 우연한 기회대학시절부터 최재호 원장은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업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됐다. 개원의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봉사’에 대한 열망은 마음속 한구석에 있을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해야하는 것도 많고 신경 쓸 일이 많다는 핑계도 한몫했다. 그렇게 평범한 개원의 생활을 하던 최재호 원장에게 봉사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본인 스스로 ‘큰사고’를 당하면서 예기치않게 다가왔다.“그때는 너무 크게 다쳐서 진료를 못하게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큰 후유증 없이 잘 나았고 치과의사가 되고 진료를 하는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회복된 이후 최재호 원장은 가장 가까이 있는 성가복지병원을 찾았다. 성가복지병원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한 병원’을 모토로 어려운 이웃에게 정부보조금 없이 후원금과 봉사자의 도움으로만 운영되는 무료병원이다. 최 원장은 성가복지병원을 정기적으로 찾아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 시작했다.봉사의 멘토를 만나다봉사활동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가족이었다. 사고를 당했을 때 봉사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부
이형란 원장의 치과에는 겉모습이 조금 다른 아이들이 자주 찾는다. 베들레헴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다. 살레시오수녀회가 운영하는 베들레헴 어린이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25명. 이 중 국제결혼을 한 가정의 자녀들은 15명가량이다. 공통점이라면 한국인 남편에게서 도망쳐 나온 외국인 엄마 혹은 맞벌이 이주노동자 부부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점. 이 아이들은 토요일에 집에 돌아가 일요일에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돌아오니 일주일에 단 하루만 엄마 얼굴을 볼 수 있다. 이형란 원장은 성북구에 자리를 잡은 이후 베들레헴 아이들의 치과주치의는 물론 엄마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다.봉사는 생활의 일부분가톨릭 신자였던 이형란 원장은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함께 봉사를 다니면서 봉사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치대 본과에 진학하면서 가입한 봉사동아리 ‘뉴맨’을 통해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했다. 뉴맨은 ‘사회 정의와 좋은 사회를 구연하는 하나의 씨앗이 되자’는 이념을 가진 봉사동아리로 치대생이었던 이형란 원장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진료 중심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뉴맨의 한 동기가 자신의 몸도 불편하면서 어르신 목욕봉사를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희망을 제공하고, 꿈을 담아주고, 사랑을 돌려주자는 치과가 있다. 치과와 치과의사는 주변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받은 것을 나눠주기에 바쁜 치과의사. 휴가나 휴무는 지역에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떠난다는 권지용 원장은 지역사회 소외계층,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부터 환경연합활동, 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는 일까지 쉴 틈 없이 봉사를 다니고 있다. 오늘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잰걸음을 옮기는 권지용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권지용 원장은 치과의사는 사회로 받은 것이 많고 받은 것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개원과 동시에 어려운 곳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처음에 찾은 곳은 장안종합사회복지관이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무료검진과 진료를 진행했다. 한동안 봉사를 진행하던 권 원장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양한 방법을 찾았다. 이후 복지관은 물론 지역 내 절, 성당, 교회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추천하는 이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도움을 받는 어려운 이들은 다른 환자들과 자신들이 다르다는 생각에 치과를 방문해서 진료받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그들
매년 시월이 되면 수원여자치과의사회 앞으로 수많은 서류가 날아든다. 수원지역 인문계 고등학교 36곳에서 보내오는 장학금 수혜자 추천서가 바로 그것이다. 10여명의 고등학생들에게 1년간의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는 수원여자치과의사회는 고등학생 대상 장학단체로는 지급 규모나 기간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수원여자치과의사회 장학회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 들어봤다.마음을 나누는 모임에서, 마음을 전하는 나눔으로수원여자치과의사회(이하 수여치)는 1988년 김현순 원장이 수원에 개원하면서 태동했다. 수원의 48번째 개원의면서 소수의 여자치과의사 중 한명이었던 김현순 원장은 여자치과의사들의 구심점이 되어줄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수원지역에 개원한 여자치과의사들이 함께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면서 끈끈한 동료애를 나눠갔다.참여하는 여자치과의사가 늘어나고 구성원간의 우애가 돈독해질 무렵,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닌 더 의미 있는 모임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 함께하며 얻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나누어주기 위해 고민을 하던 중 우리사회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자는 데 의지가 모아졌다. 가정에서 아이
시흥에서 개원의로 생활하고 있는 김선 원장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원장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다양한 봉사와 남북치의학교류협회 활동을 통해 직접 북한을 방문해 북한주민들에게도 진료봉사를 펼쳐왔다. 또 스마일재단 운영위원으로 장애인 진료에도 힘쓰는 등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모아네트워크를 통해 양질의 진료경험과 경영기법 공유는 물론 따뜻한 봉사의 정신을 확산시키고 있는 김선 원장을 만났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어디든 간다시흥 외국인복지센터, 시흥뉴스 편집실, 스마일재단,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지역사회모임 등 치과를 비롯해 일주일에 김선 원장이 들르는 곳은 방방곡곡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할 일이 있는 곳이면 마다 않고 가다보니 직함도 여러 개다.“저야 그냥 평범한 개원의죠. 한 지역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제 도움이 필요하다며 이곳저곳에서 불러주고 그곳에 가서 힘을 보태다가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봉사와 나눔은 특별한 것이 아닌 제 생활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김선 원장의 다이어리에는 그렇게 봉사일정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 외국인복지센터를 찾아 지역 외국인노동자의 구강건강을 돌보
지난 2일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로비에 마음 깊은 곳까지 포근하게 감싸주는 클라리넷 연주가 울려 퍼졌다. 여러 명이 연주하는 클라리넷이 하나의 화음을 만들고, 따뜻한 힐링 음악이 돼 장애인치과병원의 환자들과 의료진을 다독여주었다. 장애인치과병원은 물론 요양원, 나눔 콘서트 등 음악으로 행복을 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클라리넷 하우스 앙상블’. 단장을 맡고 있는 정해산 원장을 만났다.취미로 시작한 음악이 나눔의 매개로“학창시절에 따로 악기를 배운 적도, 배우려는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치과대학을 다니며 힘들고 지칠 때 클래식을 즐기는 정도였죠. 졸업 후 평범한 개원생활을 이어가다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요. 치과 운영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생각보다 큰 부담이더라고요. 이때 다시 클래식을 즐겨 듣기 시작했어요. 클래식은 저에게 정말인지 큰 힘이 됐습니다.” 박사과정을 마친 정해산 원장은 곧바로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두 차례 받던 레슨에 아쉬움을 느낀 정해산 원장은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연습실을 찾게 됐다. “연습하던 동료들과 정기적인 연주회를 갖곤 했습니다
2003년 인천시 계산동에 위치한 한 장애인 단체에서 시작된 인천장애인치과진료봉사회(이하 봉사회)의 활동이 어느덧 10년을 맞았다. 인천광역시치과의사회(회장 이상호·이하 인천지부) 소속 임원들과 회원들로 구성된 봉사회의 활약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돼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6,000여명의 장애인들이 봉사회의 따스한 손길을 거쳐 갔다. 그 중심에는 봉사활동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김건일 회장이 있었다. 10년 전 시작된 봉사의 씨앗“장애인들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 원인은 영양결핍입니다. 치아가 좋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거죠. 이런 장애인들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장애인 치과진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봉사회는 현재 인천지부 사무실 한 편에 어엿한 진료센터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매우 초라했다. 장애인 치과진료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2003년.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위치한 한 장애인 단체로부터 장소를, 은퇴한 선배로부터 체어 등 진료에 필요한 장비를 기증받아 진료를 시작하게 됐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장애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