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치과를 떠나 치과의사가 아닌, 치대 교수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일상을 보내면서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
지난 19일 정년퇴임식을 마치고, 오늘(31일) 32년 6개월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박창서 교수. 평소 그의 성격과 성향처럼 정년퇴임 후 삶에 대해 “소박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살아가겠다”는 계획을 말한다.
박창서 교수를 만나기 위해 그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마침 박 교수는 남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구강악안면방사선학 관련 전공서적,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치의학 서적들이다. 그리고 그의 책상에는 아직 뜯지 않은,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선물로 받은 듯한 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박 교수는 조용히 교수실 조교를 불러 선물로 받은 책을 넘겨주었다. “자네가 더 좋아할 것 같아 뜯지 않았네”라며 조교에게 건네준 그 책은 다름 아닌 성경책.
박 교수는 “이제 어지간한 짐은 다 정리했고, 오늘 책 정리를 하려고 날을 잡았는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정리할 책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며 “비록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이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일을 봐주었던, 평소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조교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박 교수는 공직에 들어서기 전 1년간 개원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기간은 교수가 되기 위해 준비한 기간이었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상능력이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수련해야 하지만, 애초 임상보다 영상치의학 분야에서 후학을 길러내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난 1975년 연세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모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당시만 해도 치과계에 구강악안면방사선 관련 전공을 한 치과의사가 매우 드물었다”며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있었지만, 모교에서 공직교수로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에 1년간 개원을 하면서까지 기회가 나기를 기다렸다”고.
그렇게 그는 그토록 원하던 모교에서의 교수생활을 32년간 별 탈 없이 수행했다. 하지만 그도 조금은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여전히 구강악안면방사선학을 전공하려는 후배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 그는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정부차원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으로 영상치의학 분야 또한 매우 빠르게 발전했지만, 제한적인 치과의사전문의제도 문제 등으로 의과에 비해 영상치의학 분야는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박 교수가 공직치과의사회 회장으로 취임했던 지난 2008년은 첫 전문의가 배출된 시기로, 당시 소수전문의 배출 실패의 주범이라는 오명으로 치협 대의원총회에 공직지부 해체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박 교수는 당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까지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제 학교를 떠나 그리고 치과의사로서의 삶도 미련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며 “하지만 다양한 현안 문제로 많은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지난 정년퇴임식을 통해 모교발전기금으로 2,000만원을 학교 측에 전달해 후배들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데 위안을 삼고 있다.
신종학 기자 sjh@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