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햇살 좋은 날, 문방구에서 구입한 돋보기를 가지고 신문지에 대고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신문지에 불이 붙는 것을 신기해하곤 하였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그냥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태양에너지를 돋보기라는 도구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 비춘 단순한 결과일 뿐이다. 말 그대로 그냥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의 방향을 원하는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일상적으로 의지(will power) 혹은 목적(purpos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서비스의 에너지 방향인 서비스의 목적은 무엇일까?
당연히 고객만족이라고 이야기 한다. 병원이든, 학교든, 기업이든 모든 곳에서 표면적으로는 고객만족을 추구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즉,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고객만족에 에너지의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불만해소에 에너지의 방향이 향하고 있다.
그 증거로 서비스는 엄연히 규정에 근거하여 제공되어야 하나 실상은 큰소리를 내거나 불평을 하는 고객들에게 더 신속하고 적극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는 것을 들 수 있다. 오히려 묵묵히 기다리거나 불편을 감수하는 착한 고객들은 등한시 되는 현상을 서비스 현장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서비스 교육 중에서 가장 인기 있고 관심 있는 교육과정이 ‘고객 불만 응대교육’이다. ‘화난 고객 다스리는 방법’이라는 표현들은 서비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서비스의 목적이 고객만족이라고 하면서 실상은 불만고객, 화난 고객들에게 초점을 둔다는 것이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이 없어지면 그것이 만족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서비스 고객만족지수(CSI)를 산출하는 방법이 ‘만족점수-불만점수’로 계산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타당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영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쁨, 즐거움, 행복 등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적 감정의 영역을 통틀어서 ‘만족’이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화남, 실망, 불행 등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적 감정의 영역을 엮어서 ‘불만’이라고 표현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만족과 불만의 감정들은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이 감정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러한 만족과 불만 이외에 또 다른 영역의 감정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긍정적인 정서적 감정도 아니고 부정적인 정서적 감정도 아닌 중립적 정서적 감정인 ‘無 불만’ 이라는 것이다.
‘無 불만’이라는 것은 경험을 하였지만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다. 지금까지 들렀던 식당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식당들은 좋은 경험을 통해 만족스러웠던 곳이거나, 반대로 불쾌한 경험으로 불만스러웠던 곳이다. 그렇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 식당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러한 경우가 바로 ‘無 불만’인 상태인 것이다. 내가 열심히 제공한 서비스를 고객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허탈하고 허무할 것이다. 서비스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힘들어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불만고객이 아니라 ‘無 불만’ 고객들 때문이다.
하루 중 만나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無 불만’인 상태로 돌아가서 애써 제공한 자신의 노력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니 얼마나 허탈하고 허무한가? 사람들은 불만이 없으면 만족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가정에 불만이 없다고 행복하다고 치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병이 없다고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서비스 현장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만족이라고 표방하면서 에너지의 방향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부정적인 정서적 감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앤다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긍정적인 감정인 만족은 그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할 때 얻게 되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서로 다투지 않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려는 가정과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면서 살아가려는 가정은 분명 다를 것이다. 서비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객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려는 병원과 반대로 불평불만을 듣지 않으려고 애쓰는 병원은 다를 것이다.
병원을 찾아오는 고객에게 서비스라는 돋보기를 만족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에너지의 방향을 모은다면 고객만족, 나아가서는 고객감동이라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될 것이다. 당신의 병원에는 어떤 에너지방향의 법칙을 적용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글 / 손정필
평택대학교 교수
한국서비스문화학 회장
관계심리연구소 대표